넷째 날 아침이 되었다. 동굴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세연이 눈에 들어왔다.

“세연 씨. 일어나봐요.”

“콜록, 콜록! 네? 네?”

“아침이에요. 정신 차릴 수 있겠어요?”

“네, 네!”

눈이 맛이 갔다.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른 채 억지로 대답하고 있었다.

“진정해요. 어디 안 가니까.”

나는 세연을 놔두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준영을 살펴보았다.

‘다 낫지는 않았나.’

미약하게 열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내일이면 다 낫겠네.’

상태가 심한 건 아니었다. 내가 안도하고 있을 때, 준영의 잠꼬대가 들렸다.

“엄마… 아빠… 무서워요…”

10살. 부모님에게 많은 것을 의지할 나이. 우리한테 버림받을까 봐 울지도 않고, 묵묵히 있었던 아이였다.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꿈에서라도 마음껏 울부짖으라고 놔뒀다.

‘마음에 드네.’

눈치가 빠르고, 상황 판단도 빨랐다. 내가 좋아하는 유형이었다. 준영이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누군가 잘 이끌어만 주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아이였다. 나는 그 가능성을 엿봤다.

‘역시 이 녀석을 살려두기를 잘했어.’

다시 세연에게 돌아갔다.

“준영이가 깨면 어제 못 먹인 걸 먹여요. 저는 다른 식량을 찾으러 나가볼게요.”

“…태윤 아저씨는요?”

세연은 아까부터 나 혼자밖에 보이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떠났어요.”

“…아.”

긴말이 필요 없었다. 그녀도 아저씨가 왜 떠났는지 알고 있을 테니까.

‘누구라도 도망치겠지.’

혼자 살기도 힘든 이 상황에서 여자와 아이까지 챙기며 살 수는 없었다. 세연도 밤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챈 듯했다.

“…이름이 성민이라고 하셨죠. 성민 씨도… 저희를 버릴 건가요?”

세연이 내 이름을 불러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날 조금 어려워해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는데,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일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아마 내가 버릴 줄 알고 자포자기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다른 사람이었으면 살아남기 위해 여길 벗어났을 것이다.

“그랬으면 다시 안 들어왔겠죠.”

나는 헝클어져 있는 세연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에?”

“지금까지 잘 해주셨어요. 두 사람이 포기하지 않는 한, 저도 두 사람을 절대로 놓고 가지 않을 거예요.”

혹시라도 못 들었을까 봐 나는 가까이 가서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절대로요.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살려드릴게요.”

얼굴이 맞닿는 거리. 지난번과 똑같은 상황. 이번에도 그녀는 눈을 돌렸으나, 지난번과는 달리 얼굴이 많이 빨개졌다. 아직 감기가 다 낫지 않은 듯 했다.

“그…”

“오늘까지는 푹 쉬고 있어요. 저 혼자 돌아다니면서 식량을 찾아볼게요. 준영이도 오늘까지만 쉬면 일어설 수 있을 것 같고, 내일부터 다시 다 같이 돌아다녀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동굴 밖으로 나왔다.

/////

‘드디어 혼자 돌아다니는 건가.’

출발하기 전, 나는 간단히 몸을 점검했다.

‘몸 상태가 조금 엉망이긴 하네.’

몸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체력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여기 오고 나서 잠을 한숨도 자지 않았으니까 그럴 때가 됐긴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쯤에서 쓰러지겠지만, 과거 더한 고통도 느꼈던 나는 이 정도 통증이 익숙하기만 했다.

‘어차피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

이곳에서 성장한 능력은 후에 분배된다. 물론 분배되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아나, 어느 정도까지가 한계인지는 나도 잘 몰랐다. 그러니 몸이 받쳐주는 대로 최대한 버틸 생각이었다.

‘한 이틀 밤 더 새면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좋아. 이 정도면 됐고… 조금 달려볼까.’

계속 걷기만 하느라 몸이 많이 굳었다. 다들 낯선 환경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비도 오고 힘들어서 그런 걸까. 행군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맞춰줬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나는 숲속을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흔적을 찾았다.

‘이제 슬슬 뭐 하나 발견해야 할 텐데.’

본격적으로 찾으려고 들자 생각보다 쉽게 흔적을 찾아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였다.

‘확실히, 이건 초보자들이 발견하기가 쉽지 않겠어.’

땅속에 반쯤 파묻힌 양피지. 흙색과 똑같아서 그냥 지나치면 바닥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기술의 보정을 받아도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바닥에 파묻힌 종이를 조심스럽게 꺼내 읽었다.

-…놈이 나타났다. 괴물. 그건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는 놈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동료들, 심지어 우리 대장도 처음 보는 놈이라고 말한다. 어디서 그런 괴물이 튀어나온 것일까. 이 숲에는 분명 고블린밖에 살지 않았는데. 너무 무섭다. 살고 싶다.

‘하나만 찾아서 되는 게 아니었나.’

보물창고에 대한 단서가 찾기 어렵다는 것만 알고 있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나도 잘 몰랐다.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장 중요한 위치에 대한 단서가 없잖아.’

그래도 어떤 식의 단서인지는 확인했다. 처음 것을 찾는 시간과 비슷한 시간이 흘렀을 때, 나는 나머지 종이를 전부 다 찾아냈다.

찾아낸 종이는 모두 일곱 장. 나는 그것들을 다 이어서 쭉 읽어보았다.

-고블린들이 도망치고 있다고 한다. 고블린 왕이 숲에서 도망치다니.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믿을 수 없었다. 체력이 좋은 오크나 오우거, 트롤 같은 놈들은 어디서든 잘 살지만, 고블린같이 체력이 약한 놈들은 한 번 터를 잡으면 잘 옮기지 않았다. 서식지를 다시 짓는 게 쉽지 않으니까. 이 말은 다시 말해… 그 괴물 놈이 정말로 끔찍한 존재라는 소리다.

-숲에 사는 모든 도적이 연합했다. 최소 이백 명 가까이 모여든 것 같다. 거기서 우리들의 대장이 말했다. 그 괴물 놈만 잡으면, 우리가 이 숲을 점령할 수 있다고. 고블린도 사라진 지금이 기회라고. 다들 그 말에 열광했으나, 나는 조금 회의적이었다. 그 간사한 고블린도 도망쳤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인데, 여기 모인 사람들은 너무 쉽게 보는 것 같다.

-다 죽었다. 그건… 괴물. 괴물이다.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잘 모르겠다. 검은색의 형태. 아주 커다랗다. 그게 전부다. 보이자마자 그대로 도망쳤다. 무서웠다. 내가 겁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다 도망쳤다. 그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니다. 괴물.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는 놈이다. 나는, 그리고 살아남은 우리는 보물창고로 도망쳤다. 거기라면 안전하게 쉴 수 있다고 대장이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기를 빌었다.

-대장이 받아 적으라고 말했다. 네 번째 호수, 푸른 돌이 많은 곳. 세 개의 나무가 뭉쳐 있는 곳. 왼쪽 나무에 X자 표시. 정면으로 일곱 걸음. 그 밑에 보물창고가 있다고 한다. 거기로 도망치면 살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 녀석은 야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 번 포착한 식량은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우리는 그 괴물의 식량이고, 놈이 우리를 뒤쫓고 있다. 대장이 죽었다. 이제 희망이 없다. 보물 창고로 가는 길은 아나, 정작 중요한 보물 창고 안에 있는 미로의 길은 모른다. 그곳으로는 갈 수 없다.

-나, 나는… 살고 싶다. 나밖에… 남지 않았다. 무서워. 놈이 울부짖는다. 날 쫓아오는 것일까? 창고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러나 의미 없는 짓인 걸 안다. 나는 그 미로를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아아, 이대로 죽겠구나. 나는… 살고 싶다.

일기장 같은 건가. 총 7장의 양피지를 확인했다.

‘위치가 적혀 있는 건 하나네. 가장 큰 단서는 네 번째 호수. 이놈들이 가지고 있던 지도를 보면 어디가 몇 번 호수인지 알겠지만, 그게 없으니 호수란 호수는 다 뒤져야 하나.’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 숲에 호수가 있는 것도, 그 호수들이 다 뭉쳐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정보니까. 이제 호수를 찾고, 그 주위의 나무를 싹 다 뒤지기만 하면 됐다.

‘이건 하루면 되겠고. 이제 문제는 다른 쪽인가?’

내가 계획한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보물창고, 다른 하나는 미끼.

‘운이 좋으면 이제 슬슬 물어줘야 하는데. 역시 꽝인가.’

빠르게 숲을 돌아다니면서 지금까지 우리 일행이 지나온 길을 떠올려 보았다.

그동안 나는 일행을 이끌면서 ‘일부러’ 흔적을 만들었다. 누군가가 이 흔적을 보고 쫓아오라고 말이다.

‘지금까지 내 일행에서 빠진 사람은 두 명.’

처음 나간 이름 모를 사람 한 명. 그리고 태윤 아저씨까지 총 두 명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떠나든 말든 신경 안 쓴 이유가 여기 있었다.

‘내 목표는 처음부터 두 가지였으니까.’

하나는 일행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도적들의 보물창고를 터는 것.

여기서 내가 말한 일행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앞으로 나와 같이 돌아다닐 일행. 케르피아에서 내가 데리고 다닐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이 말은 이런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내 능력을 설명해 줄 사람.’

내가 계획하는 일이 전부 다 잘 풀린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무수히 많은 의혹에 시달릴 게 분명했다.

내 능력치가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다.

조금 뛰어나면 천재나 범인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남들과 크게 다른, 압도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아마 날 두고 여러 말이 오갈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활동할 수 없었다. 적어도 내 능력을 설명해 줄 사람이 최소 두 명. 그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 계획은 완벽하다.’

세연과 준영. 이 두 사람을 데리고 일주일간 생존한다. 환자인 두 사람은 전적으로 날 믿을 수밖에 없고, 내가 했던 일들을 자연스럽게 부풀려 말할 것이다.

저 남자는 두려움이 없고, 언제나 저희를 위해 힘썼고, 쉬지 않고 돌아다녔어요. 등등.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도 만약 우리 셋이 생존하게 되면, 내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이 숲에서 일주일간 생존해 본 기억이 있으니까. 내가 짐 덩이에 불과한 두 명을 데리고 생존했다는 것을 믿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 그것을 내가 해낸다. 한 마디로 내 능력이 입증되는 것이다.

첫 번째가 이런 이유라면, 일행의 두 번째는 순전히 나에게 보물을 바칠 버림 패들을 말했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퍼즐 하나.’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조각.

나는 일행에서 떠난 두 사람이 살기를 바랬다. 어떻게든 살아서 다른 일행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냐고?

‘아마 열에 아홉은 우리를 쫓겠지.’

과거. 내가 만난 박현섭 같은 착한 사람이 있던 조는 굉장히 드물었다. 대다수의 조는 식량난에 허덕이고, 잘 곳을 못 찾아 산을 헤맸다.

그럴 때 자기보다 약한 조를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한계에 몰린 사람들, 거기다 슬슬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본능에 충실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약탈했다. 그 와중에 폭행, 살인 등 몹쓸 짓도 많이 일어났다.

일행을 떠난 첫 번째 남자. 우리 일행의 구성을 봤을까? 못 봤어도 상관없었다. 자기가 일행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것은 말했을 테니까. 다른 조가 그 남자를 발견하면 우리 조를 추격할 것이다.

어디 가서 죽어도 상관없었다. 사람이 죽었다. 같은 조에서 서로 싸움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혹은 굶거나 체력이 다해서 죽었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우리 조가 힘들다는 상황이니 쫓아오는 사람들은 그것을 노리고 올 수 있었다.

태윤 아저씨는 말이 필요 없었다. 우리 상황을 잘 아니까 어느 조를 만나던 나에게는 득이 됐다. 우리 조의 상황을 설명하면 성인군자라도 우리 것을 빼앗으려고 달려들 테니까.

아, 우리 조에서 빼앗을 만한 거?

‘하나 있지.’

세연. 아까 말했듯이 힘든 사람들은 ‘본능’에 충실했다. 이곳에서는 주로 여자가 험한 꼴을 많이 당했다.

‘나는 그들을 전부 받아들인다.’

쉽게 말해서, 나는 도박을 했다.

처음 이곳에 같이 떨어지는 사람은 다섯 명. 여기서 내 행적을 말해줄 사람 두 명을 빼면, 내가 먹을 수 있는 보물은 내 것을 포함해 세 개밖에 되지 않았다. 내 행적을 말해줄 사람의 것까지 뺏으면 나를 안 좋게 깎아내릴 수 있으니까.

세 개. 하나는 내가 당분간 쓸 것이라고 하면 겨우 두 개밖에 팔지 못했다. 두 개라도 당분간은 쓸만한 돈을 벌겠지만, 그 정도로는 당연히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다른 조를 찾는 것이었다.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 되는 4, 5일쯤에. 너무 빠르면 아직 사람들이 도덕적인 가치관을 버리지 않을 때고, 너무 늦으면 보물창고까지 가기도 전에 끝나니까. 딱 4, 5일 쯤이 적당했다.

또 우리 조와 합쳐서는 안 되니 우리 조를 최대한 약하게 만들었다. 우리 조를 ‘먹기 좋은’ 취급으로 만들고, 우리를 쫓아오게 했다.

만약 이 작전이 성공하면 나는 그들을 유인하고, 그들이 가진 보물을 전부 습득할 생각이었다.

‘계획은 끝났다. 나머지는 미끼를 무는 행운만 있으면 돼.’

그리고 그날 오후. 나는 환하게 웃었다.

미끼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