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는 생각보다 튼튼했다. 아무래도 재질이 나무고 길이도 길다 보니 내구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세 사람이 동시에 내려가도 사다리는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물기 때문에 미끄러질 수도 있어요. 천천히 내려가요.”

내 말에 두 사람은 최대한 천천히 내려갔다. 나부터 시작해 모두가 다 무사히 내려오자, 나는 보물창고 입구에 있는 횃불을 들었다.

“이게 불을 밝혀주고 있었네요.”

“신기하네요. 뭐가 타오르고 있는 거죠?”

마나석.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이었다. 이 세계에서도 지구 개념의 횃불은 존재하나, 보통 그런 건 하급으로 취급했다. 상급은 마나를 사용해 영구히 불을 밝힐 수 있었다.

내가 들고 있는 횃불은 마나를 사용하는 횃불로 나무막대 끝에 마나석을 달았다. 바람에 쉽게 꺼지고, 불을 다시 붙이기가 좀 어렵다는 것만 빼면 반영구적으로 불이 유지됐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무슨 보석 같은 걸 태우고 있는 모양인데, 생각보다 잘 타올라 다행입니다.”

“…정말이지, 원래 잘 놀라지 않아요? 하나같이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인데. 왜 그렇게 태연한 거예요?”

나에게는 이제 이게 더 당연한 물건이니까. 나는 쓴웃음을 삼키면서 말했다.

“저도 당황했어요.”

“하나도 안 그래 보여서요.”

“솔직히 말해서, 바깥에는 괴물이 돌아다니는데 이런 거로 하나하나 놀라고 싶지 않아요. 이미 각오를 했으니까요.”

나는 두 사람에게 계속 무기를 들고 있으라고 말했다.

“세연 씨 말대로 이곳은 괴물들의 소굴일 수도 있어요. 주의하면서 걷죠.”

“입구는 어떡하죠?”

세연이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문을 닫기는 했는데… 우리가 파낸 흔적을 보고 오면 어쩌죠?”

“그럴 가능성은 낮아요. 흙이 다시 덮을 테니까요.”

이럴 때는 비가 온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빗물에 젖은 진흙이 우리가 파낸 흔적을 금방 덮기 때문이다.

내 말에 두 사람은 더 이상 입구 쪽을 신경 쓰지 않았다.

횃불이 하나밖에 없어서 내가 횃불을 들고 선두에 섰다. 나도 이곳은 처음 오는 입장이라 조금 주의를 가질 생각이었는데, 곧 그것이 정말로 쓸데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와. 이건 뭐 도적들이 아니라 부자들 아니야?’

보물창고 입구를 지나서 조금 걸었을 때쯤. 그때부터 내려가는 길에 일정한 간격마다 횃불이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아무리 질이 낮은 마나석을 사용했다고 해도 이렇게 수가 많으면 그 값이 상상을 초월했다.

‘괜히 보물창고라고 불리는 게 아니군.’

“동굴이라 소리도 울리고, 불도 많아서 갑자기 뭐가 튀어나와도 쉽게 반응할 수 있겠네요.”

나는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지나치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의 발걸음 소리가 시끄러운 만큼, 반대로 이곳 통로로 오는 괴물들도 엄청 시끄러울 테니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주변은 잘 살펴보고 걸어요.”

“네.”

통로에는 특별한 게 없었다. 우리 일행은 적당히 둘러보다가 넘어갔다.

“갈림길이네요.”

왼쪽. 오른쪽. 두 갈래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여기서 조금 난감했다.

‘일단 길은 왼쪽이 정답인데…’

동굴 바닥의 표면이 다른 한쪽보다 미세하게 매끈했다. 사람이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자연스럽게 돌이 깎여진 흔적이었다. 그에 비해 오른쪽 바닥은 처음 길을 만들고 몇 번 오간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일행을 왼쪽으로 이끌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갈림길이 하나가 아닌데, 계속 운에 맡길 수는 없지.’

양피지에서는 이곳을 미로라고 말했다. 즉, 이런 갈림길이 최소 여러 번은 나올 거라는 얘기였다.

나는 처음부터 이 미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곳에 미로가 있다는 사실은 과거에 들었고, 또 그 미로가 아주 쉽다는 것도 들었으니까.

-거기 미로가 있긴 한데,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쉬웠어요. 보물창고에 대한 단서를 찾는 게 어려운 거지, 막상 안에 들어가면 길은 기술 보정으로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원래 이곳은 생존 교육을 받은 사람이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지금까지는 싸울 수도 있어 내가 길잡이 역할을 했을 뿐. 이제 그만 이 자리를 양보해야겠다.

“세연 씨.”

“네?”

“혹시 어느 길이 정답인지 아시나요?”

내 말에 세연은 당황했다.

“아뇨. 당연히 모르죠. 저는 여기 처음 와보는데요?”

“저도 그래요. 제 말은, 생존 교육에서 뭔가 비슷한 걸 듣지 않았나 싶어서요. 전투 교육에서는 무식하게 싸우는 것밖에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내가 동의를 구하듯 준영을 바라보자,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나, 현재 그녀는 기술의 보정을 받고 있었다. 집중해서 살펴보면 왼쪽 길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못 찾으면 여기서도 삽질을 해야 해.’

그건 조금 곤란했다. 여기에 무슨 함정이 있는 줄 알고 그런 삽질을 한단 말인가.

“음…”

세연은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기억이 안 나요. 그런 걸 듣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럼 그냥 감으로라도 알려주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내가 간곡히 부탁하자 그녀는 마지 못해 왼쪽을 가리켰다.

“제 감으로는 왼쪽이 맞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너무 맹신하지는 마세요. 저 진짜 자신이 없거든요.”

나이스.

“어차피 둘 중 한 곳을 찍어서 갈 생각이었어요. 세연 씨를 원망하지는 않아요. 뭣하면 다시 돌아와도 되고요.”

우리 일행은 세연의 의견을 들어 왼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갈림길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세 갈래였다.

“세연 씨?”

“…중앙이요.”

이미 한 번 해봐서일까.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한 그녀는 바로 대답했다.

“오른쪽.”

“왼쪽.”

“네 번째.”

“세 번째.”

“왼쪽.”

“또 왼쪽이요.”

갈림길이 점점 더 많아졌고, 길도 최소 두 갈래에서 최대 여섯 갈래까지 늘어났다. 세연은 매번 방향을 알려주면서 조금씩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희 이러다가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죠?”

길이 매번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럴 일은 없었다.

“왼쪽. 오른쪽. 왼쪽. 네 번째. 세 번째. 왼쪽. 왼쪽. 두 번째. 오른쪽 끝. 다섯 번째. 지금까지 지나온 길은 다 외우고 있어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때 돌아가면 돼요.”

“그것도 그거지만,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봐요. 길이 너무 많잖아요. 길이 많은 만큼 이 동굴도 넓다는 소리인데, 이 넓은 곳을 어느 세월에 다 뒤져요?”

일리 있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갈림길을 벌써 열 번이나 봤으니 이 지하의 크기는 적어도 호수보다 컸다.

“그럼 지금이라도 돌아갈까요?”

“…아니요.”

다들 알고 있었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걸. 이 정도 걸었으면 이제 뭐가 됐든 끝을 보고 싶어 하는 게 사람 심리였다. 그런데도 굳이 세연이 말을 꺼낸 건, 힘들어서 작게 투정을 부리는 정도라고 생각됐다.

“잠깐 쉬죠.”

다들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 이쯤에서 휴식을 취했다.

“불이 있어서 그런가… 동굴 안이 생각보다 따듯하네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 말을 새삼 다시 한번 느꼈다. 처음에는 축축한 옷을 벗고, 어떻게든 체온을 높이려고 한 두 사람이 이제는 다소 편하게 앉아있었다.

‘확실히. 조금 아쉽네.’

보물창고를 보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 보물을 가지고 나갈 생각만 했지, 실제로 이 보물창고가 어떤 구조며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까 생각보다 안락했다.

‘마나석 횃불도 그렇고, 이런 거대한 굴을 파는 게 쉽지는 않은데. 설정이라고는 해도 대단한 도적들이잖아.’

원래 계획은 여기서 나가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계획에는 변함이 없으나, 조금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비를 맞고, 추운 곳에서 잘 버틴다고 해도 그게 좋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나 역시 가능하면 이런 따뜻한 곳에서 보내고 싶었다.

‘체력이야 이제 한계치를 찍었을 텐데. 아쉽다, 아쉬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걸어갈 때, 중간에 문을 하나 발견했다.

나는 일행에게 조용히 하라고 경고한 후 주변을 살펴보았다.

‘일단 안에는 아무도 없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벌써 보물창고인가? 미로치고는 꽤 쉽다고 생각하며 나는 일행에게 말했다.

“일단 안에 인기척은 없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주의해요. 괴물이 튀어나올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은 한껏 긴장하며 무기를 쥐었다.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 나는 문을 힘껏 찼다. 그러자 문이 쾅 하고 부서지며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와…”

“와…”

내부의 모습을 본 순간, 두 사람은 긴장을 버리고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나 역시 살짝 놀랐으니까.

‘아니, 진짜 보물창고에 식량이 있어?’

내가 처음에 식량 운운했던 건 반 장난식으로 말한 거였다. 그런데 진짜로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긴, 보물이 워낙 독보적이라 식량은 넘어간 건가.’

지금이야 보물보다 식량이 더 귀하지, 당장 케르피아로 넘어가면 여기서 얻은 보물로 최소 일 년 치 식량을 살 수 있었다.

“생각보다 식량을 빨리 찾아서 다행이네요.”

내가 부순 문 안쪽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방 안에는 수십 개의 포대가 쌓여있었는데, 그 포대 안에 다양한 식량이 담겨있었다.

“육포, 빵, 이건 처음 보는 거고… 눈에 익은 음식이 있는가 하면, 이상하게 생긴 음식도 있네요.”

세연은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빵에 손을 대다 화들짝 놀라서 내려놓았다.

“왜 그래요?”

“…갑자기 찜찜해서요. 육포 같은 건 유통기한이 긴 거로 알고 있는데, 빵 같은 건 아주 짧잖아요. 그런데 곰팡이도 없고, 색이 변하지도 않았고… 이거 혹시 미끼가 아닐까요?”

허겁지겁 빵을 꺼내서 먹으려던 준영은 그 말에 멈칫했다.

“독이라도 있을까 봐 걱정이에요?”

“꼭 독이라는 보장은 없죠. 수면제라던가, 근육 이완제라던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느꼈지만, 세연은 의심이 많았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었다. 멍청하게 달려드는 것보다 이렇게 의심하고 생각하는 편이 좋았다.

물론 그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그냥 귀찮은 애였다.

‘그냥 좀 처먹지. 으휴.’

나는 음식이 상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이 포대에 마법이 걸려 있으니까. 걸려 있는 건 보존 마법 하나가 전부지만, 그것만 해도 나름 쓸만했다.

‘여기서 나갈 때 포대 좀 챙겨가야겠네.’

포대는 접어서 품에 넣으면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세연을 보고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지 못했고, 처음 예상했던 대로 식량 창고도 있잖아요. 그런데도 이게 독일 거라고 생각해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정 의심되면 저부터 먹어보죠.”

“네?! 아니 잠깐만…”

나는 육포를 하나 집어서 먹었다. 향이 강하고 느끼했다. 싸구려 품질이 다 그렇듯이 고기 씹는 맛이 너무 강했다. 물론 여기서는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맛있네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지금 우리 일행을 봐요.”

나는 두 사람의 몸을 보고 말했다. 처음 왔을 때부터 그렇게 살이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으나, 며칠 못 먹었다고 홀쭉해졌다.

“의심하는 걸 뭐라 하는 건 아니에요. 다른 일행이 생각 없이 무턱대고 나아갈 때, 한 번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건 좋은 자세니까요. 그래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먹겠어요?”

자그마치 오 일이었다. 오 일을 사람이 열매 한두 개로 버텼으니까 이제는 음식을 가지고 살인이 일어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었다.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준영은 아예 포대 속으로 들어갔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걱정되면서도 말리지는 않았다.

“천천히 먹어. 물이 없으니까. 그렇게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

이미 두 사람이 먹어서일까. 세연은 한숨을 쉬고 조심스럽게 육포를 한입 물었다. 잠시 후, 오랜만에 음식의 맛을 느낀 그녀는 준영이만큼 다급하게 포대에 파묻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더 이상은 못 먹겠다고 두 사람이 주저앉을 때, 나는 포대를 등에 메고 말했다.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니까 하나씩 챙겨서 가죠. 아, 손에 들고 가는 건 안 돼요. 싸울 수도 있으니까 포대는 등에 묶어요.”

각자 등에 포대를 묶고 다시 출발했다. 짐을 메고 있어서 일행의 속도는 조금 느려졌으나, 두 사람은 처음 왔을 때보다 더 힘차게 걸었다.

다섯 번의 갈림길을 더 지나갔을 때, 우리 일행은 마침내 미로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