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가 너무 길어서일까. 출구는 생각보다 짧았다. 공동에서 나온 지 20분 정도 지났을 때, 우리는 출구 끝에 도달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사다리가 없어요.”

“네. 그렇네요.”

출구는 입구와 똑같았다. 천장이 아주 높은 구덩이. 빛이 없어 그 위에 문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 입구와 똑같이 출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헛걸음했네요. 사다리가 없으니 못 올라가고…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다시 돌아가요.”

“잠시만요.”

나는 벽면 한쪽을 살펴보았다. 손가락, 또는 발끝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틈. 그런 틈이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쭉 이어졌다.

“처음부터 여기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게 아닌가 봐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여기를 봐요. 딱 손, 발끝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잖아요. 여긴 벽을 타고 올라가는 거예요.”

내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무리도 아니었다. 처음 입구에서부터 사다리로 한참을 내려갔고, 미로를 지나가면서 계속 내려왔으니까 이곳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 깊은 곳을 단순히 벽을 짚고 올라간다는 건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그냥 오래돼서 돌이 갈라진 거 아니에요?”

“그랬으면 이렇게 똑같이 파여있지 않겠죠? 여기 밑에서부터 저기 위까지. 전부 다 똑같이 파여있어요. 여긴 이렇게 올라가는 곳이라고 봐요.”

나는 어째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여기에도 사다리가 있다면 누군가는 보물창고의 출구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처음부터 이렇게 설계했을 것이 분명했다.

‘빛이 없으니 이게 함정인지, 아무것도 없는 구덩이인지 아무도 몰라. 밑에 뭔가 있다고 생각해도, 위에서 내려오려는 사람은 목숨을 걸고 내려올 수밖에 없지. 잘 만들었네.’

내 마음과는 반대로 두 사람은 뒷걸음질 쳤다.

“우리 그냥 돌아가요. 입구까지 길이 먼 건 아는데, 음식도 있겠다 조금 쉬면 충분히 걸을 수 있어요. 여길 올라가는 것보다 그게 훨씬 더 안전하구요.”

“혀, 형. 제 생각도 그래요.”

이 두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응?’

동굴이 조금 흔들렸다. 정말로 미세한 진동.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나는 다른 조가 보물창고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제대로 왔구나.’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나는 계획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일행을 다독였다.

“잘 들어 봐요. 이건 사다리랑 굉장히 비슷한 거예요. 차이가 있다면 다시 내려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 다행히 올라가는 건 괜찮아 보여요.”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거예요?!”

세연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저 위를 봐요!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요! 지금까지는 성민 오빠 말 다 들었는데,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굳이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갈 이유가…”

쿵. 쿵. 쿵.

세연이 말을 끊었다. 우리가 지나온 길에서 무언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죠?”

아무래도 이곳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소리가 더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세연과 준영은 자세히 못 들은 것 같지만, 나는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의 목소리다.’

아마 다른 조가 세연의 비명을 듣고,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 소리가 인간의 목소리라는 것을 아나, 굳이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기에 괴물이 있는 게 맞나봐요.”

“그럴 리가요. 분명 보물창고까지 아무것도 없었는데…”

“우리가 지나온 갈림길 한 곳에 놈들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우리가 모든 길을 다 뚫고 온 건 아니니까요.”

일리 있는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도 소리가 크게 울리지는 않아요. 상당히 멀리 있는 모양인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마 공동 전, 아직 갈림길 쪽에 있는 것 같아요.”

“아직 한참 남았네요, 그럼.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세연과 준영은 다시 벽을 보고 굳었다.

“이젠 진짜 선택지가 없어요. 빨리 움직이죠.”

처음에 입구에서 내려올 때, 위에서부터 준영, 세연, 그리고 내가 내려왔다. 혹시라도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아래 사람이 받쳐주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도 그 순서대로 올라가기로 했다.

“준영아. 형 말 잘 들어.”

나는 준영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내려올 때랑 똑같아. 밑은 보지 말고, 무조건 위만 보고 움직여. 천천히 가도 돼. 떨어지지만 않으면 되니까.”

“네, 네.”

“틈의 간격이 짧아서 너도 충분히 닿을 수 있어. 한쪽 손 먼저 가고 그다음 다리, 다시 손, 다리. 이 순서가 반복인 거야.”

다음으로 세연에게 말했다.

“세연 씨도 아시죠? 천천히 가면 돼요. 사다리랑 다를 바 없어요.”

“…중간에 놓치면 어쩌죠?”

“빗물에 적신 사다리도 잘만 타고 왔잖아요. 여길 봐요.”

나는 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긴 빗물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어요. 손을 확실히 넣기만 하면, 손가락 힘을 풀지 않는 이상 절대로 놓치지 않아요. 천천히 가면 돼요.”

우리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최소한의 식량만 놔두고, 나머지는 전부 버렸다.

“중간에 혹시라도 힘들면, 아예 그냥 풀어버려요. 식량이 중요한 건 맞지만,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으니까요.”

이것저것 준비를 끝마친 일행은 차례대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도 올라갔다. 한 5미터 정도. 거기서 나는 이 정도면 됐겠다 싶어 천천히 내려갔다.

조용히 내려간 것도 아닌데 두 사람은 내가 내려간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워낙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 듯했다. 내가 밑으로 내려와서 다시 횃불을 들었을 때, 두 사람은 그제야 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어?”

“왜, 왜 그래요, 누나?”

“성민 오빠?”

세연은 밑에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큰 소리로 말했다.

“성민 오빠아아아! 어디에요오오오!”

“나 여깄어!”

내가 횃불을 흔들면서 소리치자 두 사람은 비명을 질렀다.

“혀, 혀어어엉? 왜 거기예요오오오?”

“거기서 뭐해요오오오? 빨리 올라와요오오오!”

밑에서 들으니까 정말 이상했다. 목소리가 울려서 마치 메아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두 사람이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

“놈들이 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제가 적당히 막고 올라갈게요!”

“네에에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에요오오오?!”

“혀, 혀어어엉! 무, 무서워요오오오!”

“두 사람 다 침착해요! 천천히 올라가고 있으면 바로 뒤따라갈게요!”

내가 없어도 두 사람은 내려오지 않고 잘 올라갈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올라가는 건 쉬워도 내려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거기서 그대로 있을 수도 없고. 잘 올라가겠지.’

긴장해서 실수로 놓친다거나 하는 불상사만 없다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두 사람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가볼까.’

조금 전에 얻은 보물은 내려놓고, 원래 쓰던 무기만 들고 걸어갔다.

‘보물을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여기 통로에서 기다려야 하나.’

두 사람이 올라가고 있는 통로와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었다. 소리가 두 사람한테까지 들릴 수 있으니까. 보물창고와 출구 중간. 그쯤에서 다른 조를 기다렸다.

‘그나저나 이놈들. 굉장히 시끄러운 녀석들이네.’

놈들은 여기까지 오기도 전에 두 번이나 크게 환호성을 터트렸다. 하나는 음식을 찾았을 때고, 다른 하나는 보물창고에서 보물을 얻을 때였다.

‘빨리빨리 좀 와라.’

내가 이 통로에서 기다린 지 두 시간이나 지났을 때. 마침내 놈들이 이곳을 찾았다.

“엥?”

선두에 선 남자가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님. 저 멀리 누군가가 보이는데요?”

“야, 똥철아. 나도 눈 있거든? 이 형님이 저거 하나 못 본 줄 아냐?”

“에이.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죠, 형님. 그냥 알려준 겁니다, 헤헤.”

“야! 너! 거기 가만히 있어봐라! 뭐 하나만 물어보자!”

여덟 명의 남자로 구성된 일행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이봐, 아저씨. 저놈이 아저씨 일행 맞아?”

“예… 맞습니다…”

태윤 아저씨는 날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아저씨가 분명 세 명이라고 하지 않았어? 왜 한 명뿐인데?”

“그, 그건 저도 잘…”

“엉? 이봐, 아저씨.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야?”

“야, 덩치. 그 아저씨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 내 일행이 세 명인 건 맞거든.”

내가 대신 대답하자,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시 날 돌아보았다.

“세 명이라. 내 눈에는 한 명밖에 없는데 말이지. 나머지 두 사람은 어따 팔아먹었냐?”

“이쪽으로 쭉 가면 만날 수 있지. 왜, 만나고 싶어?”

“그래. 이 형님이 좀 만나고 싶은데 말야. 니네 일행에 꽤 예쁜 대학생 년이 하나 있다면서? 얼마나 예쁜지 한 번 보기나 하자.”

“걔 생각보다 별로 안 예뻐. 누가 그런 소리를 했대?”

“여기 있는 아저씨가 그러던데?”

“아저씨 눈이 많이 낮네.”

“푸하하!”

남자가 폭소를 터트렸다.

“와, 말대답 꼬박꼬박 하는 걸 보니까 넌 내가 별로 무섭지 않나 봐? 우리 똥철이도 사회에서 좀 굴렀다고 하던데, 내가 가볍게 손 좀 봐주니까 바로 꼬리를 내리더라. 야, 똥철아. 안 그러냐?”

“에이, 형님. 왜 그러십니까. 그냥 뭐, 이쪽에서는 인사 대신인 거죠. 헤헤.”

“그렇지. 남자라면 치고받고 하는 거지.”

남자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아가야. 넌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모양이네? 왜 그렇게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어. 진짜 뒤져볼래?”

“나 죽인다는 놈치고 나한테 상처하나 입힌 애가 손꼽았는데. 그쪽은 꽤 쓸만한가 봐?”

“말하는 싸가지를 보니까 어디 동네 건달이었나 봐? 엉?”

남자가 가슴에 있는 용 문신을 거들먹거리면서 말했다.

“너 이게 뭔지 알아?”

“몰라.”

“이게 바로 흑룡파의 상징이다. 강남의 흑룡파. 너도 이쪽에 몸담고 있으면, 한 번 쯤은 들어봤겠지?”

내가 그딴 걸 알 리가 있나.

“몰라, 인마.”

“…그것도 모르면 넌 어디 소속이냐?”

“나? 핑크 마리스.”

“푸하하! 그건 또 뭔 개 듣보잡 조직이냐?”

다른 남자들도 웃었다. 저 녀석, 핑크 어쩌구 조직이래. 계집이었냐, 그냥 미친 놈이었냐 등등.

“죽어서 지옥에 가면, 거기 악마들한테 한 번 물어봐. 핑크 마리스가 뭔지.”

아, 지금 시대에는 핑크 마리스가 나오기 전이니까 악마들도 모르려나?

“야. 장난은 됐고. 그래도 깡다구가 마음에 드는데. 너, 내 세력에 들어와라. 네 깡따구에 실력까지 좋으면 오른팔 정도는 시켜주마.”

“형님. 그럼 전 뭡니까?”

“아, 똥철이가 있었지. 넌 그럼 내 왼팔 할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말고. 내가 아주 괜찮은 제안 하나 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뭐?”

“내가 지금 기분이 아주 좋거든. 계획했던 일이 다 잘 풀려서 말이야. 지금 당장 보물을 내려놓고 도망가면, 목숨만큼은 살려줄게. 아, 참고로.”

나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이게 너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잘 선택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