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갈림길에서 벗어나고 약 오 분 정도 걸었을 때, 통로에 있던 횃불의 갯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슬슬 다와가는 건가.’

내 예상이 맞았다. 마지막으로 크게 꺾인 통로를 지나자마자 거대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그곳이 미로의 끝이 아닌 줄 알았다. 내가 생각한 장소와는 많이 달랐으니까. 보물창고라고 하길래 금은보화가 가득한 방인 줄 알았는데, 이곳은 미로와 똑같이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보물창고인가요?”

“일단 그런 것 같아요.”

나도 처음 와보는 장소인 만큼 진짜로 더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식인가.’

내부는 정말로 단순했다. 중앙에는 처음 보는 구조물이 하나 있었고, 그 양옆에는 횃불이 작게 불을 비추고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음… 제가 생각한 보물과는 사뭇 다르네요. 여기 세계는 저런 걸 보물이라고 생각하나 보죠?”

세연은 저 네모난 구조물이 보물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확실히 특이하게 생기긴 했다. 처음에는 나도 저게 뭐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무슨 용도인지 알 것 같았다.

‘금고네. 쓸데없이 커서 금고일 줄은 생각도 못 했잖아.’

탑같이 생긴 구조물 한쪽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내가 처음에 저것을 구조물이라고 생각했던 건 문자가 적혀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저건 그림이었다.

장검, 단검, 방패, 창, 도끼, 망치, 활, 지팡이, 천 옷, 가죽 옷, 판금 옷, 목걸이, 귀걸이, 반지.

총 14개의 그림이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그림에 맞는 보물이 나오는 식이군.’

대충 어떤 식으로 보물을 주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밝게 빛나는 그림을 가리켰다.

“저기 그림이 있네요.”

“저도 봤어요. 어디 보자… 이건 검 모양 같은데요? 그 옆에는 방패, 창…”

“아무래도 여기 보물창고는 자기가 직접 선택해서 보물을 얻는 모양이네요.”

나는 망설임 없이 장검 모양의 그림을 눌렀다.

“자, 잠깐만요! 그냥 막 누르면…”

내가 누른 장검 모양의 그림에서 빛이 사라졌다. 잠시 후, 공동이 크게 흔들렸다.

쿠구구궁.

중앙에 있는 거대한 금고가 들썩이면서 동굴 전체가 흔들리자 두 사람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으, 으아아아!”

“대, 대체 뭘 건드린 거예요?!”

“같이 보고 있었잖아요. 전 그저 검 모양의 그림을 눌렀을 뿐이에요.”

진동은 잠깐이었다. 얼마 안가 진동이 멈추고, 금고에서 네모난 입구가 열렸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는 사이, 금고 입구에서 검이 하나 툭 튀어나왔다.

‘빙고.’

화려하게 생긴 붉은 손잡이, 붉은빛을 띠는 칼날.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검. 이 검은 내가 알고 있는 검이자 여기서 나오는 유니크 아이템이 맞았다.

-아이템 : 칼라다의 붉은 저주.

-설명 : 고대 국가 바르티온의 손꼽히는 장인 칼라다가 만든 검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칼라다는 기록되지 않은 어느 문명을 탐험하고 있을 때, ‘금지된 물질’을 만진 대가로 화염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는 저주를 풀기 위해 이 검에다 자신의 저주를 담았습니다.

-효과 : 공격 시 20% 화염 추가 데미지. 화염 저항 30% 증가. 힘 + 2, 민첩 + 1.

내가 알고 있는 검의 정보였다. 초반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말이 많던 무기라 아직까지 검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 검이 유명한 건 맞지만, 사실 효과만 놓고 보자면 나중에는 정말 하찮은 옵션이었다. 그런데도 이 무기가 처음 나왔을 당시 반응이 폭발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착용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니크 아이템은 착용 제한이 붙는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착용 제한이 없지.’

케르피아에 있는 모든 아이템은 보통 마법으로 아이템의 설명과 효과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착용 제한은 읽을 수 없었다. 따라서 희귀한 아이템을 얻으면 우선 착용 제한이 뭐가 있나 확인부터 해야 하는데, 놀랍게도 이 무기는 착용 제한이 없었다.

이게 얼마나 편리한 거냐면 내가 예전에 사용했던 단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사용했던 단검은 옵션이 좋은 대신 착용 제한도 꽤 많았다.

인간 천 명 살해, 악마 이천 마리 사냥, 저주받은 상태에서 특정 몬스터 잡기 등. 고작 무기 하나를 다루는 데 필요한 조건이 많았다.

‘하지만 이 무기는 그런 조건이 하나도 없다.’

괜히 튜토리얼 필드에서 주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 무기의 옵션은 딱 초반용에 불과하나, 반대로 말하면 초반에 한해 이 무기만큼 성능 좋은 무기도 없었다. 거기다 착용 제한도 없으니까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었다.

‘사실 나한테 맞는 거로 치면 단검이 더 좋기는 한데…’

과거의 나는 단검과 장검을 병행해서 사용했다. 보통 단검은 기습과 잠행, 치고 빠지기 등에서 사용했고, 장검은 정면에서 싸울 때 사용했다.

그중에서 나는 단검이 더 손에 맞았는데, 단순히 단검으로 쓸 기술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검은 뭐가 나올지 몰라. 여기서 도박을 할 수는 없지.’

여기서 나오는 아이템이 무조건 유니크는 아니었다. 과거 이곳을 방문한 조는 세 조나 됐지만, 여기서 풀린 유니크 아이템은 네 개밖에 되지 않았다.

‘장검, 방패, 활, 판금 갑옷. 다 착용 제한이 없고 옵션이 괜찮았지. 그래도 그중에서는 검이 제일 좋아.’

똑같은 등급이라고 했을 때, 보통 검이 제일 비쌌다.

손을 많이 안 타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혹시 또 누를 수 있나 싶어 다른 그림도 한 번 눌러보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한 사람당 한 개만 가질 수 있나 봐요.”

두 사람은 내가 들고 있는 검을 바라보았다.

“보물창고라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정말 보물 같네요.”

눈에 확 띄는 붉은색의 장검. 날이 예리하게 서 있지만 않았다면 장식품으로 불려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두 사람은 잠시 검을 보더니 이내 다른 그림을 쭉 돌아보았다.

“저희가 눌러도 나올까요? 이미 한 개가 나왔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 해봐요. 여기서 괴물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요, 뭐.”

내 말에 두 사람은 어떤 걸 선택할지 고민했다.

먼저 누른 건 준영이었다. 준영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와 같은 장검 모양의 그림을 눌렀다.

쿠구구궁.

아까와 똑같은 상황. 금고가 열리면서 검이 하나 떨어졌다.

‘유니크가 아니다.’

그제야 나는 상황을 이해했다. 처음 하나. 분명 내가 누르기 전에는 장검 그림도 빛났다. 그런데 내가 누르고 난 뒤 빛이 사라졌다. 아마도 처음 하나만 유니크를 주고, 그 이후에는 레어 등급을 주는 것 같았다.

“형 거랑… 조금 다르네요…”

나랑 같은 검을 뽑고 싶었나 보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준영이가 그럼 형 것 쓸래?”

내 말에 준영은 깜짝 놀라더니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혹시나 해서 눌러본 거예요…”

준영의 검도 나쁘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날이 예리하게 서려 있는 게 명품으로 보였다. 다만 내 검이 워낙 독보적으로 눈에 띄다 보니 차이가 굉장히 커 보였다.

‘그래도 내걸 욕심내지는 않겠지.’

지금까지 내가 더 많은 고블린을 잡았고, 더 많이 전투에 임했다. 좋은 무기가 있으면 내가 사용하는 게 맞았다. 준영이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눈치가 빠른 아이였으니까. 무기를 얻은 것에 만족하고, 더 이상 욕심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한 소리였다.

“세연 씨도 하나 골라보세요.”

세연은 한참을 고민하다 무기를 건너뛰고 옷 쪽으로 눈을 돌렸다. 기술의 보정이 없어 전투가 힘들었던 그녀는 아무래도 무기보다 방어구가 더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옷도 나쁘지 않지.’

뭔가 두꺼워 보이는, 덕지덕지 많이 붙어있는 갑옷 그림. 평범한 옷 그림. 그리고 반짝반짝 별이 빛나는 옷 그림.

첫 번째부터 판금, 가죽, 천 옷 그림이었다.

“저는… 이걸로 할게요.”

세연은 그중 제일 끝, 천 옷이 그려진 그림을 눌렀다.

내가 짐작한 대로 세연이 그림을 누르자 그림에서 빛이 사라졌다. 잠시 후, 금고에서 얇은 로브가 하나 떨어졌다.

“옷은 아닌 것 같고. 로브로 보이네요.”

세연은 로브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신기하네요. 비단 같기는 한데… 뭔가 굉장히 특이한 질감이 느껴져요.”

“저도 한 번 만져봐도 될까요?”

“네. 상관없어요.”

나는 옷 끝을 만져보았다.

‘최고급 실을 여러 번 꼬았네. 거기다 다른 무언가를 섞은 것 같고. 미약하지만 마나가 느껴진다.’

아무리 내가 아는 게 많다고 해도 옷의 재질까지는 알지 못했다. 단지 평범한 재질로 만든 로브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다.

새하얀 로브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옷 전체에 새겨져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법이 새겨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정교했다. 나도 그 점이 궁금해서 살펴봤으나, 마법은 아니었다. 단순히 수를 정밀하게 넣은 문양이었다.

‘명품 티를 팍팍 내는 물건이네. 정확한 효과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 쓸만할 것 같다.’

나는 손을 내려놓았다.

“지금 입고 있는 가죽옷보다는 훨씬 좋아 보이네요.”

그녀는 옷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확실히 칙칙한 가죽옷보다는 로브가 훨씬 더 아름다웠으니까.

“지금 갈아입으면 되겠네요. 가죽옷이 다 안 말라서 찝찝하잖아요.”

“네. 지금 갈아입으면… 안 되죠.”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였다.

“갈아입을 장소도 없는데, 어떻게 갈아입으라는 거예요?”

“여기서요. 어차피 속옷 차림은 계속 봤는데요, 뭐. 굳이 옷을 하나 더 들고 다닐 필요는 없잖아요? 하나는 여기다 버리고 가요.”

“…성민 오빠. 여자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는 거 아니에요?”

말은 그렇게 해도 그녀는 여기서 옷을 갈아입었다. 등에 식량을 메고 있어서 옷을 들고 다닐 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갈아입기 전에 나한테 경고했다.

“돌아보면 진짜 죽일 거예요.”

아니. 그러니까 이미 너 속옷 차림으로 자는 것까지 다 봤다니까 그러네.

‘우리 사이에 부끄러움 같은 게 아직도 있을 수 있나?’

그 얘기를 하면 또 난리를 칠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준영은 원래 쓰던 검을 버렸다. 나는 양쪽 허리춤에 두 개의 검을 찼다.

“오빠는 전에 쓰던 무기 안 버려요?”

“이건 너무 눈에 띄잖아요.”

두 사람은 내 말에 공감했다. 내 검에서 나오는 빛은 횃불의 불빛만큼 강했으니까. 이런 걸 들고 다니면 아무리 비가 많이 내리는 숲이라고 해도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음식도 얻고, 보물도 찾고. 우리 일행은 크게 만족했다.

“이제 어떡할까요. 다시 돌아가나요?”

“저쪽으로 가보죠.”

나는 우리가 들어온 쪽 반대편을 가리켰다.

“여기가 출구라고 위에 적혀 있네요.”

반대편 통로 입구. 그 위에 공용어로 출구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숲에서 겪은 일 이상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는데, 여기 오니까 또 이상한 일만 가득 일어나네요.”

“힘들었어요?”

“아뇨. 그건 아닌데… 으휴.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올 걸, 그런 생각만 드네요.”

“지금이라도 얻었으니 다행이죠. 남은 시간은 편하게 지내요.”

“그래요. 어디 숨어서, 잠도 좀 편하게 자고 싶어요.”

세연의 말에 준영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괴물들이 언제 나올 줄 알고 그런 소리에요. 식량은 해결됐지만, 끝나기 전까지 잠은 편하게 못 잘 거예요.”

“오빠가 마침 새 무기를 얻었잖아요? 그걸로 다 잡으면 되겠네요.”

“제가 괴물을 잡으면, 세연 씨는 뭘 하려고요?”

“여기까지 온 게 누구 덕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네요.”

식량 문제를 해결해서일까. 일행은 예전만큼 우울한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조금은 시끄러워진 일행과 함께 출구로 나가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뒤쪽을 쳐다보았다.

‘슬슬 와줘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보물창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그렇지만 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