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입구에서 비가 쏟아져 내리는 풍경을 보며 나는 아침이 밝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둘째 날인가.’

하늘에 보이는 먹구름이 조금 밝게 빛났다. 해가 떠 있다는 뜻이고, 다시 말해 이제 움직일 시간이라는 소리였다.

나는 동굴에 들어가 일행을 깨웠다.

“다들 일어나요. 아침입니다.”

내 말에 일행은 피곤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명도 빠짐없이 바로 일어났다는 건, 그만큼 잠자리가 불편해서 잘 자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세 사람은 중간에 수십 번을 깨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벌써 아침이에요?”

“네.”

다들 몸을 떨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물기가 잘 빠지지 않는 가죽옷이라 그런지 다 마르지는 않았지만,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그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태윤 아저씨가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 네가 불침번을 서고 있었던 거야?”

아, 그게 이상했던 건가. 나는 간밤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저 다음에 세연 씨, 그다음에 준영이가 선 건 맞아요. 그런데 제가 잠을 설쳐서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뭐, 잠도 더 안 오고 준영이가 많이 피곤해하니까 대신 섰죠.”

“이런… 차라리 날 깨우지. 내가 제일 오래 쉬었는데…”

“괜찮습니다.”

꼬르륵. 준영이의 배에서 배고픈 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록 소리는 안 났지만, 다른 두 사람도 배가 많이 고플 게 분명했다. 나는 어제 했던 얘기를 다시 한번 꺼냈다.

“어제 말했던 대로, 오늘은 식량을 찾아야 합니다.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됐던 말이죠. 얼마나 돌아다닐지 모르니까 다들 단단히 준비하고 나와요.”

준비 시간은 짧았다. 챙길 거라고 해봐야 무기 하나가 전부였고, 간단하게 몸을 푸는 것 말고는 더 할 게 없었으니까.

“출발하기 전에 뭐 하나만 확인하고 가죠. 여기 오기 전에 다들 교육을 하나씩 받은 것 같은데. 무슨 교육을 받았나요?”

“생존이요.”

“전투.”

“저, 전투요.”

예상한 대로 세연은 생존. 다른 두 사람은 전투 교육을 받았다.

“저도 전투 교육을 받았습니다. 불침번을 서면서 계속 생각한 건데, 분명 여기 떨어지기 직전에 교육을 받았잖아요?”

“음? 그렇지.”

“네.”

“그렇다면 그 교육은 이곳에서 생존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전투는 뭐, 당연히 괴물들과 싸우는데 필요하고. 남은 건 생존인데… 세연 씨. 무슨 교육을 받았죠?”

내 말에 다른 남자들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말했다.

“확실히 그렇네… 맞아. 분명 오기 전에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어. 아무 의미 없이 교육하지는 않았겠지.”

“저, 저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그냥 천사가 추천해 준 걸 교육받았어요…”

“자, 잠시만요.”

세연이 크게 당황했다.

“그… 제가 교육을 받은 건 맞는데요. 그때는 너무 당황해서, 제가 제대로 배운 것 같지가…”

횡설수설. 그녀는 자신이 없어 보였고, 나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했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그 교육을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은 손에 꼽으니까.’

나는 과거, 현재 둘 다 전투를 선택해 생존 교육 내용을 직접 듣지는 못했다. 다만 과거 몇 차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생존 교육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들었다.

-뭐, 그냥 이론이죠. 전투 쪽은 허수아비라도 친다면서요? 생존은 그런 게 없어요.

-이유요? 나도 모르죠. 알려줄 게 많고, 시간이 없어서 그런가. 그냥 대충대충, 핵심만 설명해 준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 도움이 되지는 않았어요. 그냥 생존 관련 기초 기술을 얻은 게 보정 받아서 도움이 된 거지, 교육 자체는 별로였죠.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피우는 방법. 흔적을 지우거나 쫓는 법.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가리는 법. 이런 교육을 이론으로 간략하게 설명한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이런 걸 이론으로 깨우친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냥 미친놈이거나 원래 그런 쪽으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분명했다.

‘실제로 해 보는 게 가장 중요하지.’

그런 면에서 세연이 저런 말을 하는 게 이해는 됐다. 그렇지만 나는 모른척하며 물었다.

“그래도 그쪽 교육을 받았으니까, 뭔가 떠오르는 게 있지 않을까요?”

“으음…”

“세연 씨 보고 앞장서라고 말하지는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희가 어제처럼 무의미하게 돌아다니기만 할까 봐요. 그게 걱정돼서 하는 말이었어요. 아무래도 길잡이가 있으면 좋잖아요.”

길잡이 역할이 쉽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과거 도적들의 보물창고에 갔다 온 조는 단 세 조뿐이었으니까. 십 년을 넘게, 그것도 수많은 사람이 생존 교육을 받고 숲에 들어왔을 텐데. 고작 세 명만 길잡이가 됐다는 얘기였다.

‘그만큼 재능있는 사람들이었지.’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도적들의 보물창고는 어디까지나 내가 ‘우연히’ 발견하는 거로 할 테니까.

내가 원하는 건 그전까지, 그러니까 다른 동굴이나 음식을 찾는데 그녀가 어느 정도 도움을 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게 안 되면… 또 쓸데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잖아.’

바로 찾아서, 운이 좋다고 넘어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지금은 상관없으나 나중에 케르피아에서 의심받을 수 있었다.

다른 조는 비를 피할 곳을 찾느라 돌아다니고, 또 돌아다니고. 하루 이상 굶은 조도 있는데. 우리 조는 운이 좋아 매번 음식과 휴식처를 찾았다? 이상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일단… 한 번 해볼게요.”

그녀는 자신 없는 얼굴로 숲을 둘러보았다.

‘집중하면 충분히 볼 수 있을 텐데.’

기술의 보정을 받으면 다양한 게 눈에 들어왔다. 정신없이 돌아봐도 눈에 뭔가가 자꾸 밟혔다. 감이라고나 할까. 물론 그 시간은 잠깐이고, 설사 그 흔적이 눈에 들어와도 그것이 정말 흔적인지, 그리고 무슨 흔적인지 유추할 수 있어야 완전한 보정을 받을 수 있었다.

보정 같은 게 없어도 나는 이미 흔적을 찾았다. 붉은색 열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나, 직선으로 가면 이십 분 안에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의심받지 않기 위해 다른 길로 걸었다.

이변이 생긴 건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때였다.

“잠시만요.”

앞장서서 아무 데나 걸어가고 있던 나는 뒤에서 나를 부르는 세연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놓친 흔적이 있나?’

이 근처에는 별다른 흔적이 없었다. 그런데 뭔가 발견한 것일까?

“그… 이쪽 방향으로는 충분히 간 것 같으니까, 이제 돌아가서 다른 방향으로 가요.”

“그게 무슨 소리죠?”

“동굴이요, 동굴. 오늘도 거기서 자야 하잖아요. 밤에 날씨도 춥고, 이 비가 언제 그칠지도 모르는데. 동굴에서 자는 거 아니었어요?”

“맞아, 성민아.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더 이상 가면 못 찾을 것 같으니까, 이만 돌아가자.”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린가.’

난 또 뭐라고. 혹시나 내가 눈치채지 못한 흔적을 찾은 줄 알았잖아.

“우리는 안 돌아갈 겁니다.”

“음?”

“네?”

“너무 위험하니까요.”

이걸 어떻게 말한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그대로 말하면 의심받을 수 있다 보니, 어떻게 돌려 말할지가 관건이었다.

‘동굴 같이 지정된 ‘캠프’는 매일 밤 공격을 받는다.’

이 숲에 동굴이 많은 이유였다. 한 동굴에서 버티면 버틸수록 더 자주, 더 많은 고블린들이 쳐들어오고, 나중에는 성체 고블린까지 튀어나왔다.

‘내가 어제 안전하다는 얘기는 이것 때문이지.’

처음 동굴을 습격한 날은 고블린이 쳐들어오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 동굴에서 하루 이상을 보낼 때마다, 밤사이 랜덤한 시간대에 고블린 무리가 공격해왔다.

‘사실 잘 싸우는 사람들끼리 뭉치면 일주일은 충분히 그렇게 생존할 수 있어.’

처음에야 당황해서 그렇지, 사실 한두 번 싸우다 보면 이 고블린들이 정말 허접한 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거기다 여기 있는 고블린들은 아직 어린놈들. 열 마리던, 스무 마리던 겁만 먹지 않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 일주일 연속 한 동굴에서 버티면 마지막 날에 성체 고블린이 등장했다. 그 고블린만 살짝 까다롭고, 나머지는 쉬웠다.

‘그래서 이십 대 남녀가 모인 오인 조는 나름 쉽게 깰 수 있지.’

처음에 우리 조가 안타깝다고 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우리 조는 전투력을 크게 기대할 수 없으니 매번 돌아다니면서 생존해야 했다.

이 정보를 미리 알고 있던 나는 당연히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들의 반응을 미처 고려하지 못하고 말이다.

‘흠.’

물론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철저하게 표정 관리를 하면서 일부로 그랬다는 것을 어필했다.

당황은 곧 모른다, 자신감이 없다는 뜻이고 다른 사람이 내 인도를 의심할 수 있었으니까.

“저는 처음부터 그 동굴에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유가 뭐죠?”

어제처럼 대뜸 미쳤냐고 소리칠 줄 알았던 세연은 내 말에 이유를 물었다.

“왜긴요. 거기가 괴물의 집이니까 그렇죠.”

“어제 우리가 다 처리했잖아요.”

“그게 전부라는 보장이 있어요?”

내 말에 세 사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제가 걱정하는 건 첫째. 그놈들에게 다른 동료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 숲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런 이상한 괴물 놈들이 한가득 있는지, 아니면 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는지 아는 게 없죠. 거기다 비까지 옵니다. 그 괴물 놈들이라고 비를 맞고 싶지는 않겠죠.”

나는 목소리를 조금 높이며 말했다.

“모르는 괴물이 비를 피하기 위해 찾아온다. 그것도 문제입니다. 어제 죽인 놈들의 동료가 찾아온다. 이것도 문제입니다. 어제는 체력도 없고, 다들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동굴에서 잤지만, 또 운이 좋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지만. 그런 곳에서 더 지낼 수는 없어요.”

“음…”

내 말에 세 사람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더, 정말 운이 좋아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그건 정말로 운이겠죠. 저는 제 삶을 운에 맡기고 싶지 않습니다.”

“오케이. 이해했어. 내가 생각이 짧았네.”

“…저도요. 그런 문제가 있었네요.”

“저, 저도 이해했어요, 형.”

세 사람 모두 납득이 간 모양이었다.

“확실히 성민이가 상황 판단이 빠르네. 허,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도 못했어.”

“다들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저도 처음 동굴을 봤을 때는 거기서 쉴 생각만 하고, 그 이후에 일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불침번을 서면서 겨우 생각해낸 거죠.”

“그것도 대단한 거야. 나는 뭐가 튀어나올까봐 긴장만 하고 서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괴물 놈들이 또 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비를 피할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거기까지 생각을 안 한 것 같아.”

이해했다. 포근하고, 따뜻한 곳에 있다 보면 누구나 다 나가기 싫어할 테니까.

“동굴이나 잘 곳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은 식량부터 생각하죠.”

“네.”

세연은 아까보다 더 집중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집중한 만큼 아무 단서나 흔적을 좀 포착해줬으면 하는데.

그런 내 기대에 부응했는지 얼마 안 가 세연이 큰 소리로 말했다.

‘찼았구나.’

“그… 제가 뭔가를 찾은 것 같아요!”

바닥에 있는 붉은색의 무언가. 흙 속에 파묻혀서 쉽게 보기 힘든 것을 세연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