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대체 뭘까요?”

세연은 바닥에 파묻힌 붉은 색의 무언가를 조심히 파냈다.

“뭔가를 찾긴 찾은 것 같은데… 이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가까이 가서 확인했다.

“음…”

“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열매 같은데요.”

내 말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이게 열매라고요?”

세연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세연이 파낸 것만 놓고 보자면 열매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흐물흐물한 붉은 조각. 이건 열매 조각이었다. 나는 그것만 보고도 이게 무슨 열매인지 알았다.

‘토안이지.’

토안. 이 세계의 과일 중 하나. 지구에 있는 토마토랑 비슷한 과일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토안은 향이 좀 더 강하고, 신맛을 강하게 낸다는 특징이 있었다.

“냄새를 맡아봐요. 어때요?”

“음… 신 냄새가 확 나네요.”

“저도 냄새를 맡았어요. 색깔도 나무 조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붉고, 냄새를 풍기고. 거기다 이 알맹이를 봐요. 흐물흐물하죠? 빗물은 아니고, 이 붉은 색에서 나온 게 확실해요.”

내 말을 듣고 다들 자세히 살펴보았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럼, 이게 진짜로 열매인가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맞을 겁니다.”

내 말에 다들 표정이 밝아졌다.

“당장 찾으러 가요!”

그때부터 세연은 붉은색의 흔적을 집중해서 찾기 시작했다.

“세연 씨. 바닥을 봐요. 빗물이 한쪽으로 흐르고 있죠?”

“네.”

“경사진 곳이라서 그래요. 그 열매 조각이 떠내려왔다고 가정해보면… 저쪽에서 왔을 가능성이 커요.”

“아, 그렇네요!”

기술의 보정을 받아서일까. 무슨 흔적인지 유추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또 찾았어요! 열매가 맞나봐요!”

찾고, 또 찾고. 걸을 때마다 바닥에 보이는 열매 조각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일행은 토안 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아…”

분명 간신히 찾고, 또 찾았던 나무인데. 세 사람은 나무를 발견하고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토안 나무를 찾은 건 맞았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미 바닥에 수많은 열매가 뭉개져 있었고, 온전한 열매는 딱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가 많이 내려서, 열매가 빗물에 다 떨어져 나갔네요.”

내 말에 세 사람은 절망적인 표정을 보였다. 혹시나 바닥에 떨어진 열매 중에서 형태를 유지한 게 있나 살펴보지만, 바닥에 떨어진 건 전부 빗물에 파묻혔다. 세연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먹을 수 있을까요, 저건.”

“흙을 파먹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아요.”

세연이 가리킨 곳은 벌써 흙과 하나가 된 열매들이었다. 겉은 다 뭉개지고, 알맹이는 진흙과 하나로 뭉쳐져 있었다.

‘저건 더 이상 열매라고 볼 수 없지.’

흙에 토안을 묻혔다. 그런 표현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은 것을 먹을 수는 없었다. 나는 아직 나무에 걸린 두 개의 열매를 조심스럽게 땄다.

그나마 다행인 건 토안 나무가 작아서 쉽게 열매를 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눈에 보이는 열매는 이거 두 개가 전부네요.”

주먹만 한 과일. 이거 두 개로는 어린아이도 배부르게 먹을 수 없었다. 디저트로나 가능할까. 그래도 살기 위해서는 이거라도 나눠 먹어야 했다.

단순히 입에 넣으면 그만인데, 일행은 먹는 것도 고민이 많았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걸까요?”

자신 없어 하는 세연의 말에 다른 두 사람도 공감했다.

“음, 겉으로 봐서는 그냥 토마토인데… 뭔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토마토가 이렇게 신 냄새를 뿜어요?”

“아니. 아니지. 상했다고 볼 수도 없는데. 이렇게 탱탱하고, 빨갛게 상한 건 들어본 적이 없어.”

당연했다. 이건 토마토랑 다른 과일이고, 상한 게 아니었으니까.

“괴물이 있는 것도 그렇고, 지구와는 많이 다른 곳입니다. 여기 열매가 지구와 똑같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죠.”

“그렇긴 하지.”

“신 향을 좀 강하게 내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것 말고는 딱히 이상해 보이지 않아요.”

내 말에도 사람들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독이라도 있으면 어쩌지, 상한 걸 먹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인 듯 했다.

나는 손으로 열매를 반으로 가른 후, 혓바닥으로 알맹이만 살짝 맛봤다.

“앗!”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잠깐, 잠깐!”

어째 반응들이 내가 진짜 독을 먹었을 때 반응이었다. 이건 독이 아닌데. 그래도 나는 이 열매를 처음 맛보는 것처럼 행동했다.

“먹은 거 아닙니다. 혀만 대서 맛만 봤어요.”

“그게 무슨…”

“독이라면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켰겠죠. 쓴맛이라거나,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그런데 이건 별 느낌이 없네요.”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버섯이면 모를까, 나무에서 열리는 이런 열매는 독보다 식용이 더 많아요.”

지구에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케르피아에서 통용되는 말이었으니까. 지구에서는 아니라고 해도, 내가 잘못 알았다고 잡아떼면 그만이었다.

한편, 세연은 내 말을 듣고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 오기 전에, 교육받은 내용 중에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가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단 혀만 대서 맛을 보라고.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나이스 어시스트. 나는 거기다 쐐기를 박았다.

“신 냄새가 강한 거지, 맛은 좋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거라도 먹어야 합니다. 이걸 보면 여기는 지구와 많이 다른 것 같은데, 보이는 모든 걸 지구에서 못 봤다고 안 먹을 거예요?”

내 말에 다들 대답하지 못했다.

“저희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여기 끌려온 순간부터 말이죠.”

일행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고민하고 싶어도 뱃속이 버티지 못했으니까.

우리 네 사람은 사이좋게 열매를 반씩 나눠먹고, 다른 음식을 찾기 위해 계속 걸었다.

안타깝게도 세연은 그 후 더는 열매를 발견하지 못했다.

밤이 될 때까지 온종일 돌아다녔으나, 먹을 걸 찾지 못했다.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비를 맞으며 쉰 게 두 번. 그 시간 외에는 전부 걸었는데도 말이다.

“오늘은 여기서 자죠.”

내 말에 세 사람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요?”

“네. 알아요. 너무 늦었으니까, 여기서 잘 곳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빛이 없어졌어요. 해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얘기니까 지금은 밤이라는 소립니다. 조금 있으면 다시 찬 바람이 불 수 있어요. 더 늦기 전에 여기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변에 있던 나무 중 그나마 가장 큰 나무 앞에서 멈췄다. 비가 너무 쏟아져서 나무 밑이라도 온전히 비를 피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나았다.

“주변에서 가지를 모아봐요. 준영이는 나뭇잎을 모으고.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 들어갈 만한 공간을 만드는 건 힘들지 않을까?”

태윤 아저씨는 회의적이었다.

“사람 들어갈 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에요.”

“응?”

“불이요, 불. 얼어 죽을 수는 없잖아요. 모닥불을 피울 공간만 만들 겁니다.”

내 실력이라면 크게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서바이벌 동아리 회장이라고 해도, 숲에서 네 사람이 쉴 수 있는 안락한 휴식처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불만 안 꺼질 정도면 충분해.’

나무 옆, 수풀 사이. 흙 위에 좁은 공간을 만들고, 거기다 모닥불을 피울 생각이었다. 찬 바람이 들어올 틈은 사람이 몸으로 막으면 된다.

‘하루나 이틀 정도는 이렇게 고생해 봐야지.’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다른 조와 비슷한 경험을 겪어야 나중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 것이다.

사방이 널린 게 나뭇가지라 모으는 건 쉬웠다. 나는 먼저 나뭇가지를 엮어서 지붕을 만들고, 나뭇잎을 그 위에 덮었다.

“사이 사이에 나뭇잎을 다 넣으면 돼. 쉽지?”

“네, 네 형.”

손을 벌벌 떨면서 준영이가 나뭇잎을 덮었다. 빗물이 조금 새어 나오긴 하나,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품속에서 조그마한 장작 두 개를 꺼냈다.

“그건 어디서 났어요?”

“동굴에서 나올 때 두 개 챙겼어요.”

“…그걸로 불을 피우시게요?”

“네. 무슨 문제라도?”

“제가 잘 모르지만, 젖은 나무로는 불이 안 붙을 것 같은데요.”

맞는 말이었다. 젖은 나무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나는 검으로 장작의 겉 부분을 잘라냈다. 그러자 안쪽에 마른 부분이 드러났다.

“어?”

“여기 나무들 재질이 조금 특이하더라고요. 어제 불침번 때, 모닥불에 집어넣으면서 조금 살펴봤어요. 아무래도 여기 나무는 물이 잘 안 스며드나 봐요.”

이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 했고.

동굴을 찾지 못한 대다수의 조는 이렇게 숲속 한가운데에서 야영했다. 비는 쏟아지고, 거기다 불도 없으면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여기 숲의 나무도 그렇고, 케르피아의 나무도 지구의 나무와는 차이가 많았다.

‘뭐라더라. 마나를 미약하게 품고 있어서 물이 잘 안 스며든다고 그랬나.’

나도 써먹을 줄만 알지 자세한 이유 따위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나뭇가지 중에서 그나마 큰 가지들만 골라 모았다.

“검으로 나무를 자를 수는 없으니까, 가능하면 큰 나뭇가지를 모아주세요. 되도록이면 많이요.”

“알았어.”

슬슬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다들 늦기 전에 불은 피워야겠다고 생각했는지 행동이 빨라졌다.

그사이 나는 나뭇가지를 마찰해 나온 불씨로 불을 피웠다. 화르륵. 한 번에 불이 붙자 세연이 놀라워했다.

“와. 방금 뭐한 거예요?”

“불 피운 거예요. 영화 같은 거 못 봤어요? 이런 오지에서는 다들 이렇게 피우잖아요.”

“부싯돌로 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런 방법도 있고, 이렇게 마찰만 일으키면 나뭇가지 만으로도 피울 수 있어요. 연습을 많이 해야 하지만요.”

사실 이것도 정말 힘든 기술인데, 이것까지는 충분히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불이 꺼지지 않게 나뭇가지를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다들 불 쪽에 가까이 와요. 너무 붙지만 말고. 바람이 세니까 불이 꺼질 수도 있어요. 그걸 막기 위해 몸으로 바람을 막는 겁니다.”

한쪽은 수풀이 막고, 다른 한쪽은 급하게 만든 나뭇가지 뭉치로. 그 외에는 네 사람이 둘러싸서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 상태로 있으라고요?”

“네. 등이 추우면, 가끔 몸을 돌리면 되고요.”

세 사람의 안색이 파래졌다. 모닥불의 열은 미약했고, 찬 바람은 점점 더 세게 불었다. 오늘밤 여기서 얼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준영이가 입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혀, 형. 저, 저희… 사, 살 수 있나요?”

나는 준영이를 보았다. 빗물 때문인지, 아니면 눈물인지 얼굴이 온통 물에 젖어 있었다.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어. 이곳보다 더 추운 곳에서도 사람은 잘살았거든.”

적응만 한다면 말이지. 나는 뒷말을 빼고 말했다.

“다들 정신 차려요. 힘들다고 몸을 굳히지 말고. 계속 가만히 있으면,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날 정도로 몸이 굳을 겁니다.”

내 말에 세 사람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말할 힘도 다 써버린 것 같았다.

“어제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오늘부터가 진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숲에서 이런 생활에 적응해야 살 수 있어요.”

죽지는 않을 거다.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둘째 날 밤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끔찍한 기억을 주고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