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조가 추적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나는 조금 바빠졌다.

‘너무 빨리 추적하면 안 돼.’

타이밍이 중요했다. 너무 빠르면 도적들의 보물창고를 가기도 전에 다른 일행을 정리해야 하고, 너무 늦으면 내가 다른 일행을 정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시간은… 우리 조가 보물창고에 도착하고 난 뒤. 우리가 먼저 보물을 먹고 난 다음, 나 혼자 남아서 다른 조를 습격. 그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한다. 이게 베스트야.’

지금까지는 무작정 흔적을 남겼지만, 앞으로는 조금 신중하게 흔적을 남길 생각이었다.

먼저 흔적이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우리 조와 달리 체력이 많은 남자들이니까 조금 돌아간다 해도 속도가 비슷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거리를 유지해야 해. 내일쯤에는 무조건 다 같이 움직여야겠다.’

나는 토안 나무를 하나 찾고, 일행이 있는 동굴로 돌아갔다.

“다행히 하나 찾았네요. 여기 있어요.”

“…수고하셨어요.”

세연에게 건네준 토안은 두 개. 하나는 세연, 다른 하나는 준영의 것이었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해.’

토안은 영양분이 많은 과일이었다. 크기가 크지 않고, 포만감을 채워주지 않아 허기는 가시지 않지만, 한 개만으로도 일일 섭취 영양분을 다 채울 수 있었다. 그래서 케르피아에서는 토안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불렸다.

“성민 씨도 드셨어요?”

“네. 운 좋게 세 개가 있더라고요. 하나는 제가 먹고, 두 개는 가져온 거예요.”

나는 아직까지 자고 있는 준영이를 보고 말했다.

“일어난 적이 있나요?”

“오후에 잠깐 일어나서 열매를 먹었어요. 열은 다 내렸는데, 아직 많이 힘든가 봐요. 성민 씨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버티다, 얼마 안 가 다시 자더라고요.”

“차라리 잘됐네요. 내일부터 다시 돌아다닐 거니까 지금은 푹 쉬는 게 좋죠.”

나는 세연을 보고 말했다.

“세연 씨도 오늘은 그만 쉬어요. 내일 아침부터 걸으려면 체력을 아껴둬야죠.”

“불침번을 서야 하지 않을까요?”

“저 혼자 서면 돼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지금까지 고생했는데, 또 고생한다고요? 제가 대신 설 테니까 빨리 자리에 누워요.”

“새벽에 괴물이 올지도 모르니 하는 소리에요.”

괴물이라는 말에 세연은 잠시 멈칫했다.

“세연 씨를 못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돌아오면서 근처에 괴물 몇 마리가 있는 걸 봤어요. 여기로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보고 편히 잠들 수는 없어요.”

“그런 거라면 저도 함께 있을게요. 같이 상대하면…”

“불편해서 그래요.”

나는 세연의 말을 끊었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지금 여기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괴물이 다섯 마리 이상만 달려들어도 전 저 혼자 살기 벅차요. 막을 방법은 하나. 입구를 틀어막는 거죠. 다행히 동굴 입구가 좁으니까 거기서 싸우면 충분히 막을 수 있어요.”

조그마한 동굴인 만큼 그런 장점이 있었다.

“세연 씨가 불침번을 서면 저한테 너무 늦게 알려줄 것 같고, 그렇다고 같이 싸우자니 오히려 방해만 돼요. 오늘은 그만 푹 자고, 내일부터 열심히 도와주세요.”

“…그런 얘기를 듣고 어떻게 잠을 자요?”

말은 그렇게 해도 그녀는 피곤한 표정이었다.

“계속 바깥을 주시하고 있었죠? 다 알아요. 벌써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인데. 저를 믿고, 오늘은 그냥 푹 쉬세요.”

동굴에 있는 건 아픈 자신과 어린아이 한 명. 세연은 혹시라도 내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 뜬눈으로 밖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았다.

“정 잠이 안 온다면, 자장가라도 불러드려요?”

“…어린애 취급하지 마요.”

“저보다 어린 건 맞잖아요? 그럼 애죠.”

“우리 네 살밖에 차이 안 나거든요?”

“네 살이면 많네요. 요즘 대학생들은 네 살 차이면 다 아저씨라고 하던데.”

“…도대체 누가 그래요.”

“그럼 오빠라고 불러줘요.”

세연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요. 그건 또 너무한 요구인가?”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럼?”

“…으휴. 아무것도 아니에요. 성민 ‘오빠’.”

“훨씬 어려진 기분이네요.”

우리 둘 다 작게 웃었다. 거기까지 말했을 때쯤, 그녀는 내가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 고마워요.”

“고맙긴요.”

“그냥,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한번 웃으면서 말했다.

“고맙다는 인사는 여기서 나갈 때 듣는 거로 하죠. 아직 삼 일이나 남았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때까지 고맙다는 인사는 하지 말아요.”

“오빠가 아니었으면, 저랑 준영이는 벌써 죽었겠죠. 그것만으로도 벌써 감사한걸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겨서, 저희를 못 구해주신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을게요.”

그럴 일은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두 사람을 살릴 테니까.

나는 세연이 잠들 때까지 그녀의 옆을 지켜줬다. 어떻게든 깨어있으려고 떠들던 세연은 얼마 못 가 잠들었고, 나는 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한 뒤 밖으로 나왔다.

모두가 잠든 시간. 나는 앞으로의 일을 대비해 소모품 몇 개를 제작할 생각이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내 일행과 쫓아오는 일행이 부득이하게 만날 수도 있었다. 그때를 대비해서 준비해야 할 게 있었다.

먼저 동굴 앞에 있는 진흙을 퍼서 옮겼다. 그것을 동굴 안에 있는 돌 한쪽에 얇게 바르고,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약 한 시간 후. 마른 흙을 모아서 잘게 부쉈다. 흙을 모래같이 만든 것이다.

다음으로 나무 장작 하나를 검으로 잘랐다. 손잡이를 만들고, 끝에는 둥글게 파서 흙을 담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다음 빗물에 적셔 축축하게 만들고, 물이 어느 정도 스며들었을 때쯤 안에 있는 물기만 지우고 흙을 담았다. 마지막으로 불에 구우면 완성.

‘이렇게 만들어서 쓰는 것도 오랜만이네.’

지금 내가 만들려고 하는 건 흙탄이었다. 과거에는 길드에서 소모품을 무한정 퍼주었기 때문에 직접 만들 필요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게 안되니 이렇게 직접 만들어서 쓰는 수밖에 없었다.

재료가 좋지 않아 품질은 별로지만, 여기서는 꽤 쓸만할 것이다.

‘15개 정도면 충분하겠지.’

겉 부분만 불에 구운 흙탄을 15개 만들기로 했다.

하나, 둘 차례대로 굽기 시작하다 마지막 하나만 남았을 때. 숲속에서 다른 소리가 들렸다.

‘이런. 더 늦게 올 줄 알았는데.’

동굴을 점령하고 하루 넘게 있었다. 즉, 오늘은 고블린이 쳐들어올 거라는 얘기였다. 예상한 일인 만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원체 몸이 작고, 숲에 산다는 특성상 고블린이 내는 소리는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고블린을 잡는 게 쉬운 거지, 처음 고블린의 기습을 방어하는 건 굉장히 어려웠다. 너무 조용하니까. 물론 나한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나는 작업하던 도구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애들아. 형이 오늘 기분이 좋거든. 지금 그대로 돌아가면, 살려는 줄게.”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고블린들이 내 말을 이해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만에 하나라도 놈들이 순순히 물러난다면, 나는 뒤쫓지 않을 생각이었다.

“케르륵!”

“그럼 그렇지.”

내가 정확히 수풀 속에 숨어든 고블린들을 보고 있어서일까. 놈들은 더 이상 숨지 않고 달려 들었다.

‘열다섯 마리.’

나는 가장 먼저 뒤를 확인했다. 혹시나 두 사람이 깼을까 싶어 걱정했으나, 두 사람의 숨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깊이 잠든 것 같았다.

‘다행이네.’

다른 사람이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소극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 혼자밖에 없는 상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고블린들 사이로 들어갔다.

“케르륵?”

내가 돌진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지 놈들이 당황해서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무리도 아니었다. 자기들은 열다섯 마리나 됐고, 나는 혼자였으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도망치는 게 맞았다.

‘귀찮거든.’

길게 끌 필요도 없었다. 나는 적진 한가운데로 뛰쳐 들어가 검을 회피했다.

순식간에 고블린들한테 둘러싸였으나, 나는 태연하게 몸을 회전 시켜 검들을 피했다.

‘어깨. 손목. 가슴. 허벅지. 머리.’

검이 날아오는 것을 보지도 않았다. 그저 예측했다. 고블린이 휘두르려는 동작, 검의 경로를 미리 읽고 회피했다.

그 후 나는 검을 버렸다.

‘지금.’

고블린들이 검을 휘두르는 손을 내가 잡았다. 그리고 쭉 잡아당겼다. 내 힘을 저항하지 못한 고블린의 손은 나한테 빨려 들어갔고, 내가 회피하는 순간 다른 고블린을 향해 찔렀다.

몸을 회전하면서 나는 이 동작을 정확히 6번 더 했다.

“케륵?”

고블린들이 뭉쳐서 나를 공격한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고블린들은 서로를 향해 찌르고 쓰러졌다.

유일하게 남은 한 마리를 보고, 나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발로 띄웠다.

“아, 이왕이면 짝수로 오지. 손이 더 가잖아.”

“케르륵!”

마지막 한 놈이 겁에 질려서 도망쳤다. 이거 어쩌나. 마음 같아서는 살려주고 싶었다.

“이미 늦었어, 인마. 그러게 진작 튀었어야지.”

나는 검을 던져 정확히 녀석의 심장을 꿰뚫었다. 즉사. 손쉽게 고블린들을 정리한 나는 시체를 한곳에 모아두었다.

‘이것으로 나를 더욱더 의지하겠지.’

동굴에 다시 들어가서 흙탄을 챙겼다. 쓸 수 있는 흙탄은 총 14개. 마지막 한 개는 만드는 도중 고블린이 와서 망가졌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도구는 처분하고, 흙탄은 고블린의 옷을 찢어서 담았다. 비를 맞기 때문에 조금 젖겠지만, 충격만 가하지 않으면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지루한 불침번 시간인가.’

가만히 기다리는 건 과거에서도 많이 해봤던 일인 만큼 쉬웠다. 나는 적당히 시간을 때웠다.

다음 날 아침. 간밤에 편하게 잤던 두 사람은 바깥에 열다섯 마리나 되는 시체를 보고 기겁했다.

“간밤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괴물이 쳐들어왔고, 제가 막았습니다. 그뿐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어서 그런 것일까. 세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제가 조금은 도와드릴 수 있는데…”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나는 의식을 되찾은 준영이를 보고 말했다.

“준영아. 몸은 이제 괜찮아?”

“네. 거, 거의 다 나았어요. 형 덕분이에요.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오늘부터 다시 힘들거야. 각오는 됐지?”

“여, 열심히 할게요.”

“그거면 됐어.”

다들 상태가 많이 양호해졌다고 생각했다. 몸 상태는 여전히 안 좋겠지만, 이틀을 쉬었으니까 기력이 어느 정도 회복됐을 것이다. 우리는 동굴 밖으로 나왔다.

‘흔적은 새벽에 적당히 흘렸으니 됐고. 이제 보물창고가 있는 곳으로 가볼까.’

적당히 걸었을 때쯤, 나는 손에 양피지를 쥐고 말했다.

“어?”

마치 무언가를 찾았을 때 터트리는 당혹감. 내가 주저앉아서 땅을 파헤치자 두 사람은 나한테 다가와서 물었다.

“왜 그래요? 뭐 찾았어요?”

“네. 뭔가 튀어나온 게 있어서 한번 파봤는데… 이런 게 나오네요.”

흙색과 비슷해서 다행이었다. 흙과 같이 들어 올리자 두 사람은 당연히 땅에서 주운 거라 생각했다.

“이게 뭐죠? 종이? 신기하게도 물에 젖지 않네요?”

마나로 보존된 양피지라서 그렇다. 일반 양피지나 종이는 쉽게 훼손될 수 있어서 케르피아에서는 이렇게 마나를 사용해 형태를 유지했다.

“괴물이 나오는 세상에서 물에 젖지 않는 종이쯤이야. 그냥 그러려니 하네요.”

“…그것도 그렇네요.”

내 말에 세연은 이해하고 넘어갔다.

“한국어는 아닌 것 같아요. 문자가 이상한데, 신기하게도 전부 다 읽혀요.”

여기 쓰인 언어는 케르피아 공용어였다. 지구 사람, 그러니까 케르피아에서 이방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케르피아 공용어를 이해하고 넘어갔다. 여기서 말하는 이해란 원래 자기가 썼던 언어 그대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물론 공용어가 아닌 고대어나 천족, 마족어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언어는 어지간하면 찾기 힘들었다. 케르피아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언어는 전부 공용어로 되어 있으니까.

“저도 그렇네요. 처음 보는 문자인데, 신기하게도 전부 다 이해가 돼요.”

나는 이 종이를 처음 본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내용도 상당히 재미있어 보이네요.”

-대장이 받아 적으라고 말했다. 네 번째 호수, 푸른 돌이 많은 곳. 세 개의 나무가 뭉쳐 있는 곳. 왼쪽 나무에 X자 표시. 정면으로 일곱 걸음. 그 밑에 보물창고가 있다고 한다. 거기로 도망치면 살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들어 올린 양피지는 딱 한 개. 보물창고의 위치를 알려주는 양피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