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이건 보물창고로 가는 단서 같아요. 세연 씨 생각은 어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 숲에는 정말 별의별 게 다 있나 보네요.”

세연은 보물창고라는 말에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안 좋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굳이 이걸 찾으러 돌아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아니, 이년이 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보물창고라잖아요. 한 번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굳이 보물을 가지고 싶지도 않고… 무엇보다 여기 쓰여있는 대로라면 호수 근처에 있다는 소리인데, 저희는 지금까지 돌아다니면서 호수를 본 적도 없잖아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호수를 찾으면 되죠.”

“저는 조금 걱정돼요. 저희가 무슨 수로 이 문자를 읽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 곳이니까 그건 넘어갈게요. 아무튼 제가 걱정하는 건, 이 문자가 괴물의 언어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에요.”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머리가 조금 돌아가네.’

편하게 꼬실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거기까지 생각했을 줄은 몰랐다.

“이게 만약 그 괴물들의 보물창고가 있는 위치라고 한다면… 저희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해요. 제 생각은 그래요.”

다른 양피지를 보여주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건 보여줄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우연히’ 보물창고로 가는 길을 찾은 거지, 의도적으로 찾은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걸 어떡한담?’

나는 잠깐 고민하고 말했다.

“확실히 그 말도 일리가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어떤 점이요?”

“마지막 줄을 다시 읽어봐요.”

-거기로 도망치면 살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도망치면 살 수 있다. 저는 이 말에서 이건 사람이 썼다고 생각해요.”

“괴물들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다. 그 뜻인가요?”

“네. 지금 저희가 이 숲에서 버틴 지 벌써 5일째에요. 그동안 숲을 셀 수도 없이 많이 돌아다녔는데, 푸른 괴물 빼고는 본 적이 없잖아요. 제가 추측하건대, 원래 살던 사람이 괴물들한테 습격받아서 죽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래서 도망치면 살 수 있다고 쓴 것이다 라고 말을 덧붙였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녀석들이 한 말을 떠올려봐요. 케르륵, 케륵. 이런 이상한 말밖에 하지 않았잖아요. 아주 기본적인 의사소통밖에 하지 않는 모양인데, 이렇게 구체적인 문장을 쓸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해요.”

“거기다 한 가지 더. 제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여기 나와 있는 장소는 말이 보물창고지, 보물창고의 개념보다 아마 단순한 창고가 아닐까 싶어요. 도망치면 살 수 있다. 먹을 것 하나 없는 이곳에서 살 수 있는 곳이면, 아마 음식이 있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 일행은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먹을 거로 꼬시면 넘어올 수밖에 없었다.

“사람도 그렇지만, 그 괴물들도 뭔가 먹어야 살 것 아니에요. 인간의 창고든, 괴물의 창고든 솔직히 말해서 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뭐가 됐든 그곳 창고에 먹을 게 쌓여있을 테니까요. 저는 그걸 노리고 싶어요.”

역시나 식량이라는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은 호수를 찾아보죠. 뭐, 사실 이 숲에서 원하는 게 있다고 바로 나오지는 않겠지만. 호수가 나오면 그때 다시 한 번 생각해봐요.”

“…확실히 그렇네요. 호수를 못 찾으면 마는 거고, 찾으면 그때 가서 한 번 더 고민해보죠.”

세연은 우리 일행이 호수를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그편이 마음 편하기도 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있는 한 그럴 일은 없었다.

그날 오후. 우리 일행은 호수를 찾았다.

“…정말 호수를 찾았네요.”

“네. 아무래도 저희가 운이 좋은 모양이네요.”

내 말에 세연은 또다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정말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여기서만큼은 내 능력을 어느 정도 드러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 숲에서 호수를 발견한 조는 꽤 흔했으니까. 우리 조도 그 많은 조 중에 한 조가 됐을 뿐. 이상하지는 않았다.

“종이에 쓰여 있는 단서는 푸른 돌. 이건 뭐, 그냥 사방에 널린 돌을 말하는 것 같네요.”

호수가 있는 지역에는 나무가 별로 없었다. 호수 주변에 전부 돌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구에서 보던 돌과는 사뭇 달랐는데,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하늘색 돌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기도 좀 그렇고. 한 번 찾아봐요.”

“으휴… 네. 돌아가는 것도 힘들 것 같고, 한 번 찾아보죠.”

여기까지 오느라 체력을 많이 쓰기도 했고, 또 보물창고를 찾으면서 다른 먹을 걸 찾아도 되니 나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세연도 그걸 이해했기에 쉽게 수락했다.

호수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돌면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크기였다. 문제는 그런 호수가 다섯 개나 있다는 거지만, 흔적을 찾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호수 근처의 나무라고 적혀 있는데, 다섯 개의 호수가 만나는 중앙 쪽에는 나무가 없어요. 크게 한 바퀴 돌면서 확인하죠.”

걷고, 또 걸었다. 중간에 토안 나무도 하나 발견해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그 뒤로 다시 천천히 걷다가 마침내 세 개의 나무가 뭉쳐져 있는 곳을 발견했다.

“이걸 말하는 것 같네요.”

“네.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눈에 딱 들어와서 다행이네요.”

숲에 있는 나무가 대부분 그렇듯이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이 그렇게 넓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이 양피지를 보고 세 개의 나무가 단순히 좀 더 가까이 붙은 거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다. 그렇게 되면 찾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눈에 확 띄는 나무였다.

세 개의 나무는 마치 하나인 것처럼 괴상하게 엉켜 있었다. 꽃이라면 모를까, 나무가 이런 식으로 성장할 수도 있구나 싶어 깜짝 놀랐다.

“X자 모양. 찾았어요.”

준영이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확인했다. X. 칼로 새긴 것 같은 표시가 나무 아래쪽에 조그맣게 새겨져 있었다.

“잘했어.”

나는 준영이를 한 번 칭찬해주고, 나무에서부터 정면으로 크게 일곱 걸음을 걸었다.

“일단 제대로 도착한 건 맞는 것 같아요. 여기를 한 번 파보죠.”

“…정말로 보물창고가 있을까요?”

두 사람은 회의적이었다. 확실히, 겉으로만 봐서는 정말 흙밖에 없었다.

“눈에 띄면 오히려 더 이상하죠. 보물창고인데. 아마 깊숙한 곳에 입구가 있겠죠.”

“장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삽이라던가. 맨손으로 이걸 팔 수는 없잖아요.”

“맨손으로도 쉽게 팔 수 있어요. 비가 내리고 있잖아요. 흙이 그렇게 단단하지 않아요. 이곳 한쪽만 파면 되니까 맨손으로도 충분히 가능해요.”

평상시라면 맨손으로 흙을 파는 게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비가 억수로 내리고 있는 중. 흙을 파도 금방 다시 메꿔진다는 게 문제지만, 발을 땅에 대고 한쪽만 계속 파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1미터 조금 넘게 팠을 때. 손끝에서 무언가 딱딱한 게 느껴졌다.

“뭔가 있어요.”

내가 그 주변의 흙을 싹 다 걷어 올리자 사람 한 명은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마한 나무문이 보였다.

“일단 열어보고, 안의 상황을 확인한 다음 내려갈지 말지 결정해요.”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가장 먼저 어두운 통로가 보였다. 사다리가 하나 걸려 있는 것을 보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것 같았고, 한참 밑에 희미하게 빛나는 불빛이 하나 보였다.

“사다리가 생각보다 긴 모양이네요. 불빛이 저기 아래에서 보여요.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는 게 쉽지 않겠네요.”

내 말에 두 사람은 살짝 겁을 먹었다.

“역시 안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기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다르게 생각해봐요. 저기 안에는 비도 오지 않고, 불빛을 보니 불도 있어요. 혹시라도 그 종이가 사람이 썼다면, 여긴 괴물한테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에요.”

두 사람은 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까지 춥고, 괴물들한테 공격받을까 봐 뜬눈으로 지낸 사람들이었다. 남은 시간 편하게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작은 기대를 가졌다.

“언제였죠? 우리가 동굴을 찾지 못해 숲에서 잔 적이 있잖아요. 이틀째였던가? 그 상황이 또 일어날 수도 있어요. 동굴이란 게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고, 원한다고 해서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요.”

숲에서 잤을 때라는 말에 준영이 거의 발작을 일으켰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때 준영은 정말 죽다 살아났으니까.

“정 불안하면 저 혼자 먼저 내려가 볼까요?”

“네?! 아니요. 그러지 말아요. 그냥 제발, 다 같이 다녀요.”

이번에는 세연이 발작을 일으켰다. 이쪽도 이틀 전부터 계속 날 뜬눈으로 기다렸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럼 여기서 결정하죠. 마침 딱 세 명이니까 무효 없이 투표로 뽑으면 되겠네요. 저는 내려가는 것에 찬성.”

다음으로 내가 준영을 보자, 준영은 망설이면서 말했다.

“그, 저는 잘 모, 모르겠지만… 저기 밑에서 쉴 수 있으면, 쉬고 싶어요…”

“준영이는 찬성. 세연 씨는요?”

“…이미 두 사람 다 찬성이잖아요. 내려가요.”

다들 내려가려는 찰나, 나는 일행을 멈춰 세웠다.

“잠시만요.”

“…또 무슨 일이 있나요?”

“아, 그런 건 아니고. 뭐 하나 확인만 하고 들어가요.”

“확인이요?”

“네. 저 안은 보시다시피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가 쉽지 않잖아요. 저 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요. 제가 이 주변을 잠시 정찰하고 올게요. 혹시라도 괴물이 이 근처에 있다가 저희를 보고 내려오면, 그땐 정말로 답이 없잖아요.”

내 말에 두 사람은 그제야 허겁지겁 주변을 살펴보았다. 물론 이 주위에 고블린은 없었다. 있었으면 내가 진작에 정리했을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요. 주변만 잠깐 둘러보고 올게요.”

“네.”

몸이 아픈 두 사람은 여기까지 걷는 것도 많이 힘들어했다. 나는 두 사람이 쉴 수 있게 배려해주는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흔적을 만들었다.

‘혹시라도 그 멍청이들이 여길 쫓아오지 않으면 안 되니까.’

보물창고의 위치가 적힌 양피지를 적당한 장소에 묻었다. 너무 깊숙이 묻지는 않고, 보면 눈에 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우리 조의 흔적을 쫓아오면 여기까지는 올 수 있을 테고, 여기서 이 종이를 보고 보물창고에 들어오면 된다.

‘꼭 그래야만 해.’

아직 오지 않은 다른 조를 생각하면서 나는 보물창고 입구로 돌아갔다.

“자, 이제 들어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