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아침. 다들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무리도 아닌가.’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비는 쏟아지고, 춥고, 몸을 녹일 수 있는 열은 작게 피어나는 모닥불이 끝. 세 사람의 표정이 전부 얼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침이에요. 다들 정신 좀 차려봐요.”

너무 팔팔해 보이면 안 되니까 나도 적당히 연기했다. 내가 먼저 몸을 떨면서 일어나자, 다음으로 태윤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헉… 헉… 그… 그드드으으으!”

저게 도대체 무슨 비명이람. 아저씨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풀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었다. 다른 두 사람은 아예 일어나지도 못했다.

“괜찮아요?”

“네, 네… 괘, 괜찮… 아요…”

괜찮다는 말과 달리 세연은 일어서는 것도 힘들어했다.

문제는 다른 쪽이었다.

준영은 아예 대답이 없었다. 거의 다 죽은 눈빛으로 멍하니 모닥불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버티지 못했나.’

아이 체력으로는 많이 힘들었을 밤이 분명했다. 자주 몸을 움직이라고 경고를 했지만, 준영이는 단 한 번도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새벽부터 몸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괜찮아?”

내 말에 준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못 했다. 입을 덜덜 떨며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는 게 전부였다.

그것을 본 순간 느꼈다. 기절하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하구나. 아니나 다를까, 곧 쓰러져가는 몸을 내가 받쳐주었다.

“태윤 아저씨는 어때요. 괜찮아요?”

“나는… 괜찮아.”

괜찮지 않다고 말하려다 다른 두 사람을 보고 말을 바꿨다.

“세연 씨는요. 정말 괜찮아요?”

세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힘겹게 말했다.

“가, 감기에 걸린 것 같아요…”

기침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몸은 계속 떨었다. 아무래도 기력이 다한 상태에서 무리하다보니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혼자 걸을 수 있겠어요?”

“…네. 아마도요…”

“그러면 됐어요.”

나는 의식을 잃은 준영이를 등에 업었다.

“읏차.”

준영이는 시체처럼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매고 있겠지. 가만히 놔두면 죽을 게 분명했다.

‘그럴 수는 없지.’

내 목적을 위해서 절대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제가 제일 팔팔한 것 같으니까 준영이를 업고 가죠.”

“…괜찮아?”

“원래 운동을 좀 했습니다. 준영이 정도야 뭐, 무거운 것도 아니죠.”

나는 세연을 보고 말했다.

“세연 씨도 솔직하게 말해봐요. 업어 줘요? 어제 했던 것 그대로 오늘도 식량을 찾는 게 우선. 그다음으로 쉴 곳을 찾을 겁니다. 온종일 걸을 수도 있어요. 체력이 안 될 것 같으면 지금 말해요.”

“…지금은, 걸을 수 있어요.”

그녀는 지금을 강조했다.

“그거면 돼요.”

내가 등에 준영이를 업은 걸 제외하면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시작됐다.

일행의 진형만 조금 바뀌었는데, 내가 준영이를 업고 있어서 태윤 아저씨가 앞장섰다.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뭐가 튀어나오면 바로 알려줄게.”

“네. 그거면 됩니다.”

그동안 내가 선두에 섰던 이유였다. 고블린 같은 괴물들이 나오면 바로 후퇴할 수 있게 알려주려고. 사실 난 어느 위치에 있던 확인이 가능하나, 앞에서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랬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벌써 이틀을 굶고, 추워서 독기가 서려 있는 걸까. 세연은 정말 뚫어져라 숲을 쳐다보았다.

“차, 찾았어요!”

어제와 같은 붉은 색의 흔적. 토안이었다. 내가 했던 것처럼 태윤 아저씨는 빗물이 흐르는 곳 반대로 올라갔다.

“아…”

그리고 어제와 똑같은 상황. 토안 나무 주변에는 온통 붉은 진흙이 퍼져 있었고, 나무에 맺힌 온전한 열매는 단 한 개가 전부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만약 나무에 토안이 한가득 있다면 쉽게 식량 문제가 해결된다. 즉,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였다.

아무리 튜토리얼 필드라고 해도, 그정도로 쉽게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원래 이쯤에서 생존 기술 보정을 받는 사람이 각성해줘야 하는데.’

내가 듣기로 대부분의 조는 이, 삼 일째 되는 날 생존 교육을 받은 사람이 각성했다. 더 이상 못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깨닫고,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숲을 파헤치는 것이다.

각성에 성공하는 건 운이 좋은 케이스다. 여기서 각성이란 기술 레벨이 올랐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여기서는 기술 레벨을 올릴 수 없으니까. 다만 어떤 식으로 보정 받는지를 눈치챈 것을 말했다.

지금 세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붉은빛을 띄는 열매. 크기는 성인 남성 주먹 정도에 신맛이 강하고, 냄새가 심한 것. 이렇게 알고 있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서 보면 그 흔적이 훨씬 더 자세하게 빛났다.

지금까지는 눈에 보이던 모든 흔적이 단순히 눈에 더 띄는 게 전부였다면, 붉은색 한정으로 빛을 뿜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보정이었다.

‘아무래도 세연은 꽝인 것 같네.’

이렇게 되면 여기서부터 여러 가지 길로 나뉘었다.

다 같이 굶으면서 힘겹게 찾는 부류. 믿을 만한 사람끼리 갈려져서 찾는 부류.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는 부류지.’

제일 악질.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을 먹는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정도까지 싸이코는 없었다. ‘싸이코’라고 불리던 그 빌어먹을 ‘강 한’ 녀석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우리 조는 사이좋게 음식을 나눠 먹었지만, 다른 조는 이렇게 나눠 먹지 않았을 것이다. 힘이 강한 자, 체격이 좋은 자들이 우선적으로 먹고, 나머지는 못 먹었을 게 분명했다.

그다음은 뻔했다. 누가 먼저 공격하는지는 나도 몰랐다. 매번 달랐으니까. 강한 자들이 그 조금도 나눠주기 싫어서 죽인 적도 있고, 반대로 약한 자들이 무기로 강한 자를 죽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조는 정말로 평화롭기 짝이 없었다.

준영은 말할 것도 없고, 세연도 벌써 체력적으로 한계였다. 이 조를 나가거나 누구를 죽이는 일 따위 하지도 못할 거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저씨가 조금 걱정되긴 하는데.’

그것도 딱히 상관없었다. 나한테 들이대면 적당히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서 끌고 갈 것이고. 떠난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었다.

“저는 안 먹겠습니다. 두 사람이 나눠 먹어요.”

나는 여전히 의식이 없는 준영을 힐끔 보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준영이가 의식이 없어요. 억지로 깨워서 그거 한 입 먹이는 것보다, 그냥 깨우지 않는 편이 더 나아요.”

“그래.”

“…진짜 안 먹어도 괜찮아요?”

“네. 아직까지는 뭐, 괜찮아요.”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 정도까지 한계에 다다르면 원래 사람의 본성이 튀어나왔다. 이기심. 자기만 먹고 싶어 하는 이기심을 드러낼 수도 있는데, 이 사람들은 나를 배려해주었다.

‘그러니까 오래 못 사는 거지.’

내가 보기엔 다 바보들이었다. 철저하게 자신의 것을 챙기고, 자기만 잘살면 되지 뭐하러 남을 도와준단 말인가?

‘뭐, 상관없어.’

정말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한테는 도적들의 보물창고에 도착했을 때, 가능하면 많은 인원이 들어오면 끝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전부였으니까.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게 좀 예상외인데.’

아까부터 준영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감기를 넘어서 저체온증 현상이 많이 심화된 것 같았다. 아이라는 걸 감안해도 숨소리가 너무 미약했다.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죽겠어. 어쩔 수 없나.’

준영의 상태를 한눈에 꿰뚫어 본 나는 식량을 패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쉴 곳을 찾지 않으면, 준영이가 먼저 죽을 게 분명했다.

“잠시만요.”

내가 멈추자 앞서 나가던 두 사람도 동시에 자리에서 멈췄다.

“방금 못 들었어요?”

“네? 뭐가요?”

“난 못 들었는데.”

당연히 못 들었겠지. 내가 지어낸 말이거든.

“저기서 무슨 소리가 들렸어요. 한 번 가봐요.”

그때부터 다시 내가 앞장서서 걸었다. 걸으면서 나는 고블린의 흔적을 빠르게 찾아다녔다.

‘오케이. 찾았다.’

오 분도 안 돼서 흔적을 쫓자,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 하나가 보였다.

“숨어요.”

내 말에 뒤따르던 두 사람도 재빠르게 몸을 숙였다.

“괴물들이네요. 숫자는 여덟. 안에 더 있을 수도 있고요.”

“여덟이라…”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요?”

걱정스러워하는 두 사람이 뭐라 더 말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지난번에도 이런 말을 한 것 같은데, 저희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준영이를 봐요. 상태가 많이 심각해요. 지금 당장 쉬게 놔둬야 합니다. 더 이상 비를 맞고 있을 수는 없어요.”

“음…”

“이건 사람 한 명 살리는 일이에요.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기를 점령해야 합니다.”

내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여덟 마리. 확실히 많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한 번 싸워보니까, 솔직히 말해서 별거 없었죠?”

“그렇기는 했어.”

“…그랬어요?”

세연은 공감하지 못했지만, 태윤 아저씨는 공감했다.

“보기보다 약했어. 내가 밀치니까 쉽게 넘어가더라.”

“네.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인간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정말 아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에요. 아이가 무기를 들었다고 해서 겁먹고 도망만 다닐 수는 없잖아요?”

나는 준영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전투를 준비했다.

“제가 앞장서서 달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저한테 시선이 몰릴 때, 그때를 노려주세요.”

“알았어.”

“알겠어요.”

그래도 한 번 해봤던 일이라 그런 걸까. 두 사람은 예전과 달리 빠르게 마음을 다잡았다.

전투는 예상했던 대로 쉬웠다. 지난번과 같이 내가 기습으로 한 녀석 먼저 죽이고 들어갔다. 남은 숫자는 일곱. 나한테 시선이 몰릴 때, 수풀에서 태윤 아저씨가 튀어나와 다른 한 놈을 벴다. 여섯. 세연은… 비슷하게 뛰쳐나오기는 했는데, 지난번과 똑같이 한 녀석과 뒹굴었다. 알아서 죽이겠지. 다섯.

세 녀석이 나에게 붙고, 두 녀석이 태윤 아저씨한테 붙었다.

“침착하게. 여유를 가지고 휘둘러요!”

“아, 알았어!”

“케르륵!”

나는 한 녀석의 검을 쳐내면서 뒤로 물러났다. 두 녀석의 어설픈 검이 내가 있었던 자리를 베고 지나갔다.

중심을 잃은 녀석에게 그대로 검을 찔러넣었다. 넷. 검에 찔려서 죽은 녀석을 밀쳐내자 다른 녀석이 그걸 맞고 쓰러졌다. 일대일 상황. 나는 가볍게 검을 튕기고, 크게 베어냈다. 셋. 마지막으로 동족의 시체에 파묻혀 쓰러져 있던 놈을 찌르자 내 쪽은 상황이 끝났다. 둘.

태윤 아저씨도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그래도 한번 싸워봐서인지 조금 자신 있어 보였다. 먼저 한 녀석의 공격을 흘리고 다른 한 녀석과 싸웠다. 힘에서 밀린 고블린은 쉽게 쓰러져서 죽었고, 남아 있는 녀석도 태윤 아저씨가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끝.

“다, 다들 끝났어요?”

세연도 죽이긴 했나 보다. 아까 한참 동안 구른 걸 봤는데 용케도 찌른 모양이었다. 그녀는 머리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동굴 안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태윤 아저씨는 준영이를 업고 와주세요.”

“알았어.”

동굴 안에는 모닥불과 함께 고블린 두 녀석이 대기하고 있었다. 총 열 마리인가. 나는 가볍게 두 녀석을 베고, 양손에 시체를 들고 나왔다.

“헉!”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니요. 그, 시체를 왜…”

“안에 냅둘 수는 없잖아요. 바깥에다 버리는 거예요.”

나는 시체를 한곳에 모아놓고, 두 사람은 준영을 돌보았다.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긴 해도, 어떻게든 몸을 따뜻하게 해주려고 별짓을 다할 것이다.

‘아직 끝난 건 아닌데 말이지.’

해가 지지 않았다. 이제 겨우 오후였다. 잘 곳을 마련했으니 지금부터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나는 안에 있던 두 사람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