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식량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에게 내가 말했다.

“준영이도 문제지만, 이제는 단순히 몸을 녹인다고 기력이 회복되지 않아요. 온종일 걷느라 체력은 많이 쓰는데, 먹은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내 말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세연은 그러지 못했다.

“저는, 더, 더 이상 못하겠어요.”

세연의 입술이 파랬다. 하긴, 아침부터 감기로 계속 몸 상태가 안 좋았을 텐데. 지금까지 얌전히 걷고, 또 식량을 찾으러 돌아다닌 것만 해도 충분히 잘해주었다.

“그럼 남아서 준영이를 돌보면 되겠네요. 태윤 아저씨와 저만 식량을 찾으러 돌아다니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이 숲에서 여길 어떻게 다시…”

“가까운 곳만 둘러보고 올 거예요. 안심해요.”

힘도 없고, 기력도 다하고, 몸도 아프고. 세연은 입을 열 때마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나에게 계속 물어보았다.

“다, 다시 돌아오실…거죠?”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약자 두 명과 그나마 나은 두 명. 만약 우리가 갈라지면 약자에 속한 그녀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네. 반드시 돌아올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쉬고 있어요.”

세연이 걱정하지 않아도 나는 이 일행을 어떻게든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도적들의 보물창고에서 나오는 아이템 하나당 내 초기 자본이 늘어났다. 돈이라는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편리한데, 내가 굳이 세연과 준영을 놔두고 갈 이유는 없지 않은가.

“출발하죠.”

평소처럼 무작정 한 방향으로 걷지는 않았다. 한쪽으로 갔다가, 다시 조금 돌아왔다가. 또 다른 방향으로 갔다가. 이 짓을 세 번 반복했을 때쯤, 나는 운이 좋다는 식으로 말했다.

“저기, 매번 보던 나무가 하나 있네요.”

“오오!”

아저씨는 크게 기뻐했다. 이번에 발견한 토안 나무에는 열매가 무려 네 개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열매를 하나씩 먹었다. 남은 두 개를 챙겨 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 아저씨의 눈빛에서 숨길 수 없는 탐욕을 느꼈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아마 지금 배고파서 눈이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고작 열매 하나로는 만족하지 못하겠지.

나는 열매 하나를 더 건네면서 말했다.

“저희끼리 먹죠.”

“음? 그, 그럴 수는…”

자기 속내를 들켰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희 두 사람이 아니면 먹지도 못할 사람들입니다. 저희가 이걸 먹고, 조금 더 힘내서 찾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따를 수가 없겠지. 예상한 대로 아저씨는 주저하면서도 먹었다.

“그, 그래… 암, 그렇지. ‘우리’가 이끌어줘서 그나마 여기까지 온 거잖아.”

나쁜 짓을 혼자 하면 두렵다. 그러나 같이하면 자신감이 생기는 게 인간이었다. 지금 행동이 잘못된 걸 알면서도 아저씨는 만족하면서 먹었다.

그나저나 우리라니. 내가 전부 다 했지. 아저씨가 한 거라고는 고작 고블린 몇 마리 잡은 게 다잖아. 물론 이 말은 생각만 하고, 아저씨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늦게까지 돌아다니면서 토안 나무를 하나 더 찾았다.

이번에 나온 열매는 세 개. 나와 아저씨는 하나씩 먹고, 남은 한 개를 들고 돌아갔다.

“수고하셨어요.”

세연은 나와 아저씨를 보고 안도하는 표정을 보였다. 내가 말은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도망칠까 봐 바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운 좋게 나무를 하나 찾았어요. 열매가 두 개밖에 없긴 해도, 이거라도 먹으면 힘이 날 거예요.”

“그래. 우리는 오면서 하나를 나눠 먹었어.”

내가 먼저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자 아저씨도 뒤따라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세연은 우리의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나무를 확인했을 때, 나무에 맺힌 온전한 열매는 한두 개가 전부였으니까.

“준영이는요?”

“아직 자고 있어요. 의식이 없긴 한데, 그래도 몸이 따뜻해져서 혈색은 좋아졌어요.”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준영이가 옷을 벗고 누워있는 게 보였다.

‘다행히 고비는 넘긴 모양이네.’

반나절 동안 따뜻한 곳에서 쉬었다. 체온이 어느 정도 올라갔으니 당장 죽을 위기는 벗어났다.

“세연이는 안 먹어?”

아저씨의 말에 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보다는 준영이가 더 힘든 것 같아서요. 준영이를 깨워서 먹여야겠어요.”

우와. 저건 진짜 호구인가. 자기도 지금 못 먹어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그 와중에 다른 사람부터 걱정하다니.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물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혼자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배를 불렸다. 살기 위해서 도덕적인 가치관을 내려놓았는데, 세연은 그러지 않았다.

자기가 못난 것에 대한 원망일까, 아니면 단순히 세연이 눈부셨던 걸까.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준영이보다 세연이가 먹는 게 나아. 솔직히 말해서, 우리끼리 살기도 힘든데 애까지…”

“지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도움이 안 되니까 죽게 내버려 두자고요?”

감정이 북받치는지 세연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돕고 살아야죠. 안 그래요?”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내 입장에서는 전혀 공감이 안 되는 말이나, 지금은 연기할 때였다.

“맞아요. 우리는 뭉쳐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말이죠.”

“…그래. 다들 미안하다. 내가 잠시 미쳤나 봐. 조금 전에 했던 말은 그냥 잊어버려.”

사과를 끝으로 태윤 아저씨는 모닥불 근처에 누웠다. 그 위태로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오늘 밤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 예상했다.

/////

셋째 날 새벽. 나는 멍한 표정으로 불침번을 섰다.

의식이 없는 준영이는 건너뛰고, 몸이 아픈 세연도 불침번을 서기가 힘들었다. 결국 나와 태윤 아저씨가 교대로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지난번처럼 아저씨가 먼저 서고, 그다음에 내가 섰다. 맞교대다 보니 체력적으로 무리가 심했고, 어쩌면 내일쯤 태윤 아저씨도 아파서 누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불침번을 안 할 수도 없는데 말이지.’

오늘 동굴을 점령했으니까 고블린이 안 쳐들어온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이곳에 처음 온 사람처럼 행동해야 했다. 괴물이 득실대는 숲에서 경계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별 생각 없이 고민하고 있을 때, 내 눈에 다시 밖으로 나오는 아저씨가 보였다.

‘흐음.’

아직 교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교대하려고 나온 건 아닐 테고. 대충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이 됐다.

“잠깐 대화가 가능할까?”

“네. 어려울 건 없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떠날 생각인가 보네.’

아마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여기 사람들을 버리고 떠나도 되는지, 그것이 옳은 일인지 등등. 뭐, 날 찾아온 것을 보면 결정을 내린 게 분명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니까.’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오셨네요. 더 주무셔도 되는데.”

“아, 교대하려고 나온 건 아니야. 그냥… 그…”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이 보였다. 잠시 후, 아저씨는 고민을 끝마쳤는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민아. 솔직히 말할게. 난… 저 둘을 데리고 다닐 자신이 없어.”

나는 가만히 아저씨의 말을 들었다.

“이 낯선 세계에서, 저 바깥에는 처음 보는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당장 먹을 것도 없고… 잠도 못 자고 두려움에 떨고 있어. 난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아.”

“저도 그렇습니다만.”

“그래. 누구나 다 그럴 거야. 나만 그런 게 아니지…”

적당히 맞장구를 치니까 아저씨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살고 싶어. 하지만 이대로는…”

“떠나셔도 돼요.”

“…어?”

“떠나셔도 됩니다. 원하신다면야.”

내가 이렇게 쉽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아저씨는 얼빠진 소리를 냈다.

“제가 여기 꼭 있으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그런 강요를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도 누군가를 책임질 수 없는 몸이니까요. 그래도 이왕이면 다 같이 함께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뭉쳐 다녔던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고, 혼자가 편했다. 히든 피스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귀찮은 작업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

내 말에 아저씨는 한참 동안 말없이 바깥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여전히 비가 쏟아져 내렸고, 사방이 숲으로 둘러싼 이곳은 그저 으스스하기만 했다.

‘혼자 나가기는 두렵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했다는 것은 이미 각오를 다졌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더더욱 말리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있는 사람은 이쪽에서도 사양이니까.

“…성민아. 너도 같이 갈래?”

나는 다시 아저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려운 감정, 이기적인 감정, 애원하는 것 같으면서도 막막한. 그런 모든 게 혼합된 복잡한 표정이었다.

“이제 겨우 삼 일 지났어. 벌써 체력은 바닥이고, 이 상태면 그 괴물 놈들이랑 싸워도 이길 자신이 없어. 쟤네는… 어쩔 수 없는 거야. 죽을 수밖에 없어. 아까 싸우는 것만 해도 그래. 우리가 일곱 마리를 잡을 때, 세연이는 한 마리밖에 잡지 못했잖아.”

“제가 네 마리를 잡았죠. 아, 동굴에 있었던 놈까지 하면 여섯 마리인가. 아저씨는 세 마리를 잡았죠.”

“그래. 맞아. 그러니까 우리 둘이 합치면, 더 쉽게 여기서 생존할 수 있어. 저 둘은 솔직히 말해서… 짐 덩이에 불과해.”

아저씨가 손을 내밀었다.

“나와 함께 떠나자.”

그 말에 나는 순간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했다.

‘아저씨가 엄청난 미인이었으면 혹했을지도?’

상황이 별로 심각하지 않다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후.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데. 너무 위기감이 없어서 그런지 쓸데없는 생각만 들었다.

“죄송합니다. 약자를 지켜줘야 하는 게, 저는 인간으로서 도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말에 아저씨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공감하지 못하겠지. 춥고, 못 먹고, 죽을 것 같은 사람에게 도덕적인 관념을 들이 밀어봐야 의미가 없었다.

“알아요. 무슨 말을 할지. 이대로 가면 다 죽겠죠. 그럴 바에는 건강한 사람끼리 떨어져서 산다. 그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지구에서는 유명한 책의 내용이라고 하는데, 나는 케르피아에서 다른 사람을 통해 내용만 조금 전해 들었다.

-바다에서 일어난 일이야. 배가 난파당하고, 사람들이 탈출하면서 어느 한 구명보트에 네 사람이 올라탔어. 식량은 없고, 망망대해에 네 사람이 떨어진 거지. 이들은 약 한 달 후, 다른 배에서 이들을 찾아 구출됐어.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식인. 그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세 명이 살아남았어. 한 사람을 먹어서. 그 사실을 가지고 책에서는 이렇게 묻더라.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죄를 물을 수 있을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인데. 이 물음에는 찬반이 나누어져 있어. 가만히 있었으면 네 사람이 죽는데 세 사람이라도 살아서 다행이다. 도덕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지 않으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해.

-반대로 식인이라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한 말도 있어. 어떠한 경우라도 살인은 용서할 수 없는 죄라고. 둘 중 뭐가 옳고 그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웃었다.

‘나라면 다 죽이고, 나 혼자 구명보트를 탔다고 말할 텐데.’

정말 바보들밖에 없었다. 증거를 왜 남기나. 싹 다 바다에 버리고, 혼자 살아남아서 ‘처음부터’ 나 혼자 타고 있었다고 하면 되지.

마음 약한 사람들은 손해만 본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

나는 다시 한번 더 말했다.

“저는 안 갑니다. 하지만 떠나신다고 해도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