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형 몬스터 중 최약체라고 불리는 몬스터. 1미터가 조금 넘는 초등학생 키에 전체적으로 왜소한 체형을 갖췄다. 인간 기준에서 보자면 삐쩍 마른 몸에 흉측하게 생긴 얼굴, 푸른 피부와 흰 막이 없는 검은 눈이 특징이었다.

“괴물이 모두 다섯 마리네요. 제가 두 마리 정도 잡는다고 치면, 세 분이서 한 마리씩 잡으면 되겠네요.”

“당신, 미쳤어요?!”

젊은 여성이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저것 봐요! 괴물이라고요! 괴물! 우리보다 숫자도 많고, 무기도 들었다고요!”

“무기는 저희도 들었는데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쟤네가 막… 막… 팔다리가 길게 튀어나오거나, 갑자기 이상한 능력을 쓰면 우린 다 죽는다고요!”

“그… 그래, 젊은 친구. 저건 괴물이야. 젊은 친구도 여기 오기 전에 훈련을 받았겠지만, 그렇다고 저런 놈을 상대할 수는 없어.”

“무, 무서워요…”

“처음부터 지나치게 차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미친 거였어요?!”

흠. 반응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과한데.

“다들,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 많이 흥분하셨네요.”

내가 이런 말을 한 게 이상한가? 다들 날 보고, 심지어 남자아이까지 날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 저걸 봐요. 아무리 많이 쳐줘도 120센치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에요. 피부가 다르긴 하고, 칼을 들었지만, 저 삐쩍 마른 몸을 봐요. 괴물이라고는 해도 동네 꼬마보다 약할걸요?”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아요?!”

여자는 거기까지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그, 저기요. 우리 조금만 더 생각해봐요. 여기 있는 다른 분들도. 아직 걸을 체력이 남아 있죠?”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데를 찾아봐요. 괴물들이 없는 안전한 곳을…”

거기까지 들었을 때쯤, 나는 그녀를 밀쳤다. 쿵. 그녀가 나무에 부딪히자 나는 몸을 바짝 붙이고, 얼굴을 맞대며 말했다.

“잘 들어. 다음은 없어.”

“저, 저기. 갑자기 이게 무슨…”

내 말투가 갑작스럽게 변하자 그녀는 겁에 질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원래는 고분고분하게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서는 조금 더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린 저기를 점령하던가, 아니면 죽던가. 둘 중 하나야.”

“…네?”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무슨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고 하는 소리야?”

나는 다른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역시나 저 둘도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다.

“여기 기온이 낮아. 비가 차다고. 다들 계속 걷기만 하느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데, 이대로 가면 굶어 죽거나, 기력이 쇠해서 죽는 게 아니라 저체온증으로 죽어.”

이 말은 사실이었다. 이곳은 기온이 낮고, 온종일 비가 내려 체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지금은 아직 이른 밤이라 괜찮아 보여도, 곧 새벽이 되면 비와 함께 찬 바람이 불었다. 그 전에 몸을 따뜻하게 데우지 않으면 몸이 조금씩 둔해지고 추위를 느낀다. 그때부터는 대비한다고 해도 늦었다.

추위에 계속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힘이 약해지고, 움직이는 게 힘들고, 조금씩 체력이 고갈된다. 끝으로는 저체온증으로 사망. 여기 오는 대부분의 사람이 겪게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선택해. 저 괴물과 싸워서 휴식을 취하던지, 아니면 밖에서 얼어 죽던지. 나는 지금 최선의 판단을 내린 거야.”

내 말을 들으면서 조금씩 느끼고 있을 것이다. 몸의 열이 사라지고, 체온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걸.

“안 싸워도 돼.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죽고 싶으면, 떠나도 상관없어. 그러나 살고 싶으면, 맞서 싸워.”

나는 다른 두 사람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저는 싸웁니다. 살고 싶으니까요. 같이 싸울 거면 함께 하고, 아니면 떠나세요.”

어느 쪽을 선택하던 나는 상관없었다. 솔직히 말해 고블린 다섯 마리 정도는 나 혼자 상대해도 충분하니까. 다만 여기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일이 달라질 예정이었다.

잠시 후. 가장 먼저 결정을 내린 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저, 저는… 혀, 형 말을 따를게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그 녀석이 제일 먼저 나를 따르겠다고 말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전, 이, 이제 더 걷지도 못해요. 너무 춥고…”

‘선택지가 없었나.’

아이는 벌써부터 몸을 떨고 있었다. 천천히 걸었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어른 기준으로 걷다 보니 아이한테는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구만.”

“아저씨?”

“이봐, 아가씨. 나도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했는데, 저 청년의 말을 듣다 보니 점점 더 추워지고 있다는 걸 느꼈어. 저체온증으로 사람이 죽는지 안 죽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대로 가면 정말 쓰러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저씨는 나에게 물었다.

“저것들. 위험하지는… 않겠지?”

“모르겠습니다. 위험할지, 안 할지. 아까 말했듯이, 어차피 안 죽이면…”

“죽는다. 그 얘기는 알아들었어.”

두 사람은 무기를 들었다. 이제 한 명 남았다.

“어떻게 하실래요?”

그녀가 무엇을 선택할지 안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두려움이 가득한 눈. 일행에서 벗어나 혼자 나가는 건 죽어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를 예상한 나는 다시 친절하게 물었다.

“저는 말했습니다. 떠나도 된다고.”

“하, 할게요. 알겠다고요. 그러니까 자꾸… 그렇게 몰아붙이지 마세요.”

내가 두 눈을 계속해서 뻔히 쳐다보자, 그녀는 눈을 회피하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좋아요. 자, 다들 가능하면 몸을 낮추세요. 제 계획은 간단합니다. 먼저 기습으로 한 명 노리고 시작하는 거예요. 비도 많이 쏟아지고, 나무랑 수풀이 가림막이 되어 주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제가 기습에 성공하면 바로 다 같이 뛰어 들어가요. 간단하죠?”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서 더 고민한다고 해서 저 괴물 놈들이랑 편하게 싸울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바로 이동할게요.”

나는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움직였다.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조금 새어 나오기는 했지만, 빗소리가 더 큰 바람에 고블린들은 듣지 못했다.

‘우선 한 놈. 빠르게 처치한다.’

거리는 약 이십 미터.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블린 한 놈을 목표로 먼저 뛰쳐나갔다.

“케르륵?”

내가 튀어나온 것을 본 고블린은 허겁지겁 무기를 들었으나, 이미 늦었다.

“케륵!”

검이 고블린의 가슴에 박혔다. 심장을 정확히 관통했으니까 굳이 보지 않아도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즉사. 죽기 직전에 외친 단말마의 비명을 끝으로 고블린은 쓰러졌다.

“하나씩 상대해요!”

“아, 알았어!”

아저씨가 가장 먼저 내 옆에 붙었고, 뒤이어 두 사람도 앞으로 나왔다.

4대 4. 한 명씩 상대하면 딱 맞는 인원수. 나는 고블린 한 놈과 붙으면서 눈만 옆으로 돌렸다.

‘일단 아저씨는 나쁘지 않아 보이네.’

살기 위한 몸부림인지 망설임이 없었다. 고블린이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아저씨는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고블린의 몸을 벴다.

“케…켁!”

“으… 으아아…”

가슴에 사선으로 기다랗게 혈흔이 생긴 고블린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아저씨는 그 모습을 보고 뒷걸음질 쳤다.

아무래도 처음 생명체를 죽이다 보니 잠시 공황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다른 두 사람은… 뭐, 기대하지도 않았으니까.’

“꺄아악!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케르르륵!”

우선 여자 쪽. 무기를 휘두른 게 아니라 던지기라도 했는지 검이 저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것은 고블린 쪽도 마찬가지였다. 양쪽 모두 맨손으로 서로를 붙잡고 땅바닥을 뒹굴었다.

‘정말 형편없는 실력이네.’

반면 아이 쪽은 그나마 나았다.

“으으으…”

“케르…”

둘은 검을 맞대며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이것도 썩 좋은 자세는 아니었으나, 여자처럼 땅바닥을 뒹구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들의 싸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실 이 녀석들은 제대로 된 고블린이 아니었다.

‘아직 어린 고블린들이지.’

성체가 된 고블린은 대략 1미터 40, 크면 1미터 50센치까지 자랐다. 여전히 성인 남녀의 키에는 못 미치나, 그래도 성체가 되면 근육도 많이 붙고 조금은 세졌다.

‘물론 그래 봐야 고블린이지만.’

원래 고블린들은 근접전에 취약했다. 종족 자체가 근육이 잘 안 붙는 종족이라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대신 속도가 빨랐다. 대부분의 고블린들이 검보다 활을 선호하는 이유였다.

여기 있는 고블린들은 아직 어린 고블린이었고, 인간들을 처음 접해본 것이 분명했다. 우리 일행이 고블린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여기 있는 고블린들도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슬슬 끝내볼까.’

참고로 나는 눈앞의 고블린을 적당히 요리 중이었다. 놈이 공격하면 막고. 다시 공격하면 또 막고. 어린 고블린 따위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급소를 쳐서 죽일 수 있지만, 나도 저 아저씨처럼 처음 살생해본 티를 내야 하기 때문에 ‘막기 급급한’ 행동을 연기했다.

‘이쯤에서… 당황해서 죽인 거로 해야겠다.’

“흐읍!”

비명 아닌 비명을 내질렀다. 다른 사람이 보면 마치 두려움을 떨쳐내고, 각오를 다진 것처럼 보이게 말이다.

그 후 고블린의 검을 쳐내고, 나는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서 어쩌다가 맞춘다. 이 정도 연기면 충분하겠지.’

두 번까지는 헛방. 세 번째에서 내 검이 고블린의 목을 벴다. 너무 깔끔하게 베면 이상하니까 어깨에 걸쳐 옆으로 벴고, 목과 가슴을 관통당한 고블린은 즉시 절명했다.

“후… 아저씨! 여자 쪽으로 붙어요!”

“어? 어?”

“뭐해요! 아직 남았잖아요!”

나는 아이 쪽으로 달려가 여전히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고블린을 냅다 걷어찼다.

“우왁!”

“케륵!”

둘은 동시에 쓰러졌다. 고블린은 내가 걷어차서고, 아이는 너무 힘을 주다 앞으로 넘어져 버린 것이다.

쑤욱!

나는 바닥에 쓰러진 고블린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고블린은 잠시 발작을 일으켰으나, 얼마 안 가 입에서 피를 쏟아내고 죽었다.

‘저쪽도 끝났네.’

여자 쪽은 한참을 서로 붙어서 때리고, 할퀴고, 잡아당겼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아저씨는 내가 한 것처럼 고블린을 냅다 걷어찼다.

“케르륵!”

무기도 없고, 쓰러져 있는 고블린을 처리하는 건 쉬웠다. 아저씨는 가볍게 검을 찔러넣었다. 그것으로 끝. 마지막 고블린의 죽음으로 전투가 끝났다.

“다, 다들 괜찮아…?”

“헉… 헉…”

“흑…”

세 사람 다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나마 괜찮은 사람은 아저씨 하나였고, 남자아이와 여자는 바닥을 뒹굴어서인지 옷과 얼굴이 전부 진흙으로 뒤덮였다.

“모두 고생하셨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부터 목적은 이곳이었으니까.

“이 정도면 비바람을 피하기에는 충분하겠네요.”

바깥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외쳤는데도 사람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전투의 후유증이 컸던 모양이다.

동굴은 깊지도, 크지도 않았다. 대신 입구와 안쪽의 길이 꺾여 있어 비바람을 피하기에는 좋았다.

‘거기다 안쪽의 불빛이 새어 나오지도 않겠고.’

고블린들은 여기서 하룻밤 잘 생각이었는지 모닥불과 함께 나무 장작이 조금 쌓여 있었다.

‘운이 좋은걸.’

동굴에 모닥불이 있을 확률은 반반이었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만, 조금 귀찮았다.

“안쪽으로 들어와요. 마침 모닥불이 하나 있네요.”

바깥에서 멍하니 서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휴…”

“따뜻하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건만, 다들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앞으로의 여정이 쉽지는 않을 텐데.

새벽이 오기 전에 몇 가지 일을 더 할 생각이었던 나는 계획을 접었다. 너무 몰아붙여도 문제니까. 오늘은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잠시 후. 다들 어느 정도 숨을 고른 듯하자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시간도 늦었고, 피곤하기도 하고. 오늘은 여기서 자는 거로 하죠.”

나는 아직까지 벌벌 떨고 있는 아이의 몸을 붙잡고 옷을 벗겼다.

“가만있어봐.”

“엇, 네…?”

“꺅! 뭐 하는 짓이에요?!”

이 상황에서도 부끄러운 걸까. 모두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축축한 옷을 그대로 입고 싶어요? 바닥이 전부 돌이니까 벗어서 대충 널어놔요. 불 근처에다가. 이런 옷 입고는 자기도 힘들어요.”

거기까지 말한 나는 다시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어, 어디 가는 거예요?”

“불침번이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입구는 경계해야죠.”

떠나기 전, 나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알아서들 순서 정하세요. 다 정했으면 저한테도 알려주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옷을 말린다고 알몸으로 나오면 안 됩니다.”

인간의 살색 피부는 눈에 띄기 쉬우니까. 이 말을 하려다 말았다. 거기까지 멍청하지는 않겠지. 나는 바깥으로 나오며 생각했다.

‘그럭저럭… 당분간 데리고 다닐 만은 하겠네.’

전투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도망치지 않고 싸운 것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기서 만족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