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숲에서는 시간을 확인하는 게 힘들었다. 하루 종일 먹구름이 끼어 있어 밤낮 상관없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현재 시각은 알 수 있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러니까 먹구름이 아직 하늘을 덮지 않았을 때. 해가 거의 다 저물었었다. 그때부터 세 시간 이상 걷고, 전투를 포함한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면 약 네 시간이 걸렸으니 대충 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침이 되면 조금은 맑아졌던 거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그저 캄캄한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시야가 극도로 제한되겠지만,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았던 나는 익숙하기만 했다.

아마 많은 조가 지금 이 순간에도 비를 맞고 있을 것이다. 저주받은 환경을 욕하거나, 너무하다고 소리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처음 떨어지는 이 장소가 지나치게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튜토리얼 필드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말이지.’

이 숲, 나중에는 튜토리얼 필드라고 불리는 이곳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녔다.

첫째. 개인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둘째. 이곳에서 성장하는 모든 능력은 후에 분배된다.

셋째. 다른 기술을 습득할 수 없다.

우선,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여기서는 개인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지구와 케르피아의 가장 큰 차이를 하나 꼽자면, 모든 사람이 본인의 개인 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구의 여권, 운전면허증같은 신분증이 여기서는 개인 정보로 나타났다. 다만 이 숲에서는 개인 정보를 열람할 수 없다는 게 첫 번째 특징이었다.

두 번째는 첫 번째의 연장선인데, 개인 정보에는 내 신체 정보가 간략하게 나와 있었다. 내 개인 정보를 확인할 수 없으니 신체 정보도 확인이 불가능하고, 이곳에서 일주일간 생존한 정보를 토대로 내 신체 정보가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셋째. 이게 가장 핵심인데…

‘나는 전투와 관련된 기술을 배웠다. 생존과 관련된 기술이 없다는 얘기지.’

이곳에 오기 전 모든 사람은 두 가지 교육 중 하나를 받았다. 예외는 없었다. 전투와 생존. 둘 중 하나.

전투는 말 그대로 전투. 싸우는 법을 간략하게 배우고, 생존은 살아남는 법을 교육받았다.

이곳에서 혼자 살아남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생존 기술이 없으면 비를 피하거나 식량을 구하지 못해. 길을 못 찾으니까. 반대로 전투 기술이 없으면 고블린과 싸울 수 없어.’

나야 전생에서 워낙 뒹굴고 뒹굴다 보니 어디에 떨어져도 잘 살아남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그러지 못했다. 우리 조만 봐도 그렇다. 내가 없었으면 아마 처음 떨어진 장소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발만 구르다 뒤늦게 이동하고, 새벽까지 체력만 낭비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곳에 모인 다섯 명은 서로 다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최소 한 명씩은 있었다. 쉽게 말해 다섯 명 다 생존, 다섯 명 다 전투 교육을 받고 오지는 않는다는 얘기였다.

‘조금 전 전투를 생각해보면, 여자가 생존 교육을 받은 것 같은데.’

아저씨는 잘 싸웠으니까 넘어가고. 아이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무기를 잘 쥐었다.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기술’의 보정을 받은 것이다.

‘내일부터는 여자 쪽을 교육해야겠네.’

지금까지 여자가 너무 쓸모없었다. 원래라면 생존 교육을 받은 여자가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물론 그 부분을 내가 대신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내가 가만히 있었어도 못 했을걸.’

처음 떨어진 장소에서 생존 교육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맨정신을 유지하느냐. 이거 하나만으로 앞으로 살 수 있는지, 없는지가 80% 이상 결정 났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먼저 움직였던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나, 앞으로도 쭉 그럴 수는 없었다.

‘보물창고를 털기로 한 이상, 여자가 이끌어야 해.’

이곳의 히든 피스란 결국 교육의 최종 도전 과제니까.

전투의 끝은 미지의 생명체와 싸우는 것이고, 생존의 끝은 숨겨져 있는 안식처를 찾는 것.

참고로 처음부터 도적들의 보물창고를 노렸음에도 내가 전투를 선택한 건 만약을 위해서였다.

‘어차피 처음에 주는 기술은 보정이 낮아. 내가 유추해서 단서를 찾는 게 낫지.’

전투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나는 만약을 대비했다. 불가피한 상황이 들이닥쳐 혼자 남았을 때. 또는 원치 않게 다른 조라던가, 괴물을 만났을 때. 기술로 보정 받는 전투가 조금 더 효율이 높았다.

조금씩 찬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고블린의 시체를 정리했다.

‘흔적이 빨리 지워지는 건 좋네.’

비도 계속 내리고, 먹구름도 잔뜩 끼어있고. 사방이 숲이라 온갖 단점밖에 존재하지 않아 보여도, 분명 좋은 점도 있었다.

먼저 빗물. 고블린의 피가 빗물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전투가 있었던 땅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진흙이 가득 퍼졌다. 즉, 시체만 깔끔하게 없애면 여기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지울 수 있었다.

나는 시체를 나무 옆 한쪽에 대충 모아두었다. 땅을 파서 숨기고 싶지만, 비가 이렇게 쏟아지면 파는 게 쉽지 않았다. 또 어차피 24시간 내내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 이어질 테니 대충 가려놔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나.’

사실 불침번은 핑계였다. 나는 오늘 밤에 ‘절대로’ 몬스터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굳이 밖으로 나온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빗소리에 파묻혀 안 새어나갈 거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듣고 있었다. 괜히 암살자가 된 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없을 때 나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겠지.’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는 나름 괜찮았다. 나는 멍하니 숲을 바라보면서 귀만 동굴 쪽으로 기울였다.

/////

“…”

성민이 떠나고 난 뒤.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는 혼자 옷을 벗고 있었고, 다른 두 사람은 축축한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그들도 마음 같아서는 벗고 싶지만, 눈치가 보여 함부로 벗지 못했다.

“누나. 괘, 괜찮아요…?”

“…응?”

“아, 아까부터 몸을 떨고 있길래요…”

남자아이의 말에 여자는 말없이 긍정했다.

‘추워.’

모닥불이 있었다. 바로 가까이에. 그런데도 추웠다. 몸의 체온이 조금도 오르지 않고 있어서였다. 이유는 딱 하나. 축축하고 차가운 옷이 아직도 몸에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힐끔. 그녀는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아저씨는 모닥불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얼굴 쪽이 창백했다.

‘저 아저씨도 많이 춥겠구나.’

아저씨는 의도적으로 여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예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괜한 오해를 살까 봐 한 행동이었다. 성별이 같으면 몰라도, 성인 남녀가 한 방 안에서 옷을 벗고 있는 건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으으…’

수치심과 생존.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사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여자는 먼저 옷을 벗었다.

“엇…”

“이쪽, 가능하면… 보지 말아 주실래요?”

“아, 음. 그래…”

아저씨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여자는 한숨을 내쉬고 옷을 마저 벗었다. 안에 있던 얇은 속옷이 드러났고, 당연히 그 속옷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지만, 이것만큼은 죽어도 벗지 못했다.

“아저씨도 벗어요. 계속 그러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마, 맞아요, 아저씨.”

“그, 그럴까나…”

아저씨가 옷을 벗자 뱃살이 출렁하고 드러나는 게 보였다. 물론 그 장면은 아이만 보고, 여자는 그쪽으로 아예 눈도 돌리지 않았다.

서로 옷을 벗고, 어색한 침묵이 얼마나 지났을까.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아까는 고마웠어요, 아저씨. 도와주셔서…”

“아…”

괴물을 대신 처리해준 것. 그것에 대한 감사를 전하자 아저씨는 괜찮다고 말했다.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뭐. 감사랄 것까지야… 사실 감사는 밖에 있는 젊은 청년이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밖에 있는 청년. 지나치게 냉정하고, 차분해 보이던 남자. 그를 떠올린 여자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밖에 있는 남자 있잖아요. 조금… 이상한 것 같지 않아요?”

여자는 입구 쪽을 경계하며 물었다.

‘듣지 못하겠지? 저렇게 시끄러운데…’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었다. 동굴 안까지 들려오는 빗소리가 자신의 목소리를 차단해 줄 거라 생각하고, 여자는 아저씨한테 다시 물었다.

“너무 차분하잖아요. 여기 오기 전에 그… 이상한 교육 하나만 받고, 느닷없이 이 숲으로 떨어졌잖아요. 보통은 저희처럼 정신이 없는 게 정상 아닌가요?”

“뭐, 그렇지…”

“뭔가 알고 있는 게 아닐까요?”

아저씨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마다 조금씩 성향이 다르니까. 원래 차분한 사람이겠지, 뭐.”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능숙하던데요.”

“아까 싸우는 모습을 봤어. 보려고 한 건 아닌데, 한 녀석을 잡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보고만 있었지.”

살생. 살아있는 생명을 직접 죽인 일은 처음이라 아저씨는 크게 당황했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청년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 청년만 보게 되더라고. 만난 지 하루도 안 됐는데 말이지. 그때 딱 눈에 띈 거야.”

어색하게 검을 쥐고, 짧게 기합을 넣으면서 검을 휘두르던 모습.

“그걸 보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처음에는 차분한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아, 저 사람은 뭔가 잘 알고 있구나. 다르구나 싶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야. 우리처럼 그저 두려운 거였어.”

두려움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간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용기 있는 청년이지. 결단력도 있어 보이고. 아, 물론 아는 것도 많아 보이고. 이상한 사람 같지는 않아.”

“…끄응.”

“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이는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그 형은 절 구해준 걸요… 이, 이상하지 않아요.”

구해주었다. 두 사람은 그 말에 공감했다.

“그러게요. 후유. 그냥… 그냥, 너무 갑작스럽게 많은 일이 생겨서 제가 지금 정신이 없나 봐요…”

“아니야, 아니야.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나도 솔직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런 것 치고는 나름 차분하신 거 같은데요?”

“가능하면 그러고 싶은 거지.”

아저씨는 피곤해서 자꾸만 눈을 껌뻑이는 아이를 보고 말했다.

‘아.’

여자는 아저씨의 말을 이해했다.

“어른인 우리가 당황하면 안 되니까.”

“…그렇네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아저씨가 손사래를 쳤다.

“아가씨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괜찮아.”

좋은 사람이구나. 여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분위기가 느슨해지면서 몸이 조금씩 녹아들자 졸음이 찾아왔다. 벌써 비몽사몽인 아이는 제외하고, 두 사람은 졸음을 깨기 위해 계속 말을 나누었다.

“어, 생각해 보니까 우리 아직 통성명도 나누지 않았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지금이라도 할까?”

아저씨가 자기소개를 하려는 순간, 여자가 말렸다.

“이왕이면 다 같이 모였을 때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자기소개를 두 번씩이나 할 이유는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럼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할까?”

“무슨 소리예요. 지금 바로 해요. 밖에 있는 남자를 부르죠.”

여자의 말에 아저씨는 살짝 회의적이었다.

“음… 아마 안 오지 않을까. 불침번을 선다고 그랬는데. 뭔가 뚝 부러지고, 철저한 사람 같아 보여서 말이야.”

“그 사람도 지금 옷 다 젖어 있을 거 아니에요. 모닥불 앞에 있는 우리도 이제 막 따뜻해졌는데, 밖에 있으면 얼마나 춥겠어요?”

여자는 말을 이었다.

“밖에서 누가 쳐들어와서 죽거나, 얼어 죽거나 죽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렇다면, 이왕이면 죽기 전에 다 같이 따뜻하게 보내는 게 낫죠.”

아저씨는 그 말에 공감했다.

“그건 그래.”

“좋아요. 그럼 부를게요.”

여자는 벌떡 일어섰다가 바로 앉았다. 자신이 지금 속옷 차림이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갑자기 일어난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란 아저씨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속옷만 입고 있는 여자의 몸을 보고 다시 한번 얼굴을 붉혔다.

“…죄송한데요, 대신 불러주실 수 있나요?”

“그, 그래. 내가 갈게.”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