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은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길을 막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봤다. 구타를 당한 듯 얼굴은 피투성이였고, 낡아서 해어진 옷 틈으로 보이는 살갗엔 군데군데 멍이 들어있었다. 비켜서 가면 그만이었지만 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봤다. 어떠한 감정이 솟구쳤지만, 울은 그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라며 낯설게 행동하는 자신을 합리화했다.

그는 아이가 날아온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부서져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 연약한 아이를 던진 걸까? 그 어떠한 이유라도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울은 고민했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면 그는 아이의 인생에 끼어들게 되는 셈이었다.

그것은 옳은 것일까. 여태껏 살릴 수 있음에도 살리지 않은 생명이 얼마나 많았던가. 왜 지금이어야 할까.

아이를 피해갈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딴딴해 보이는 남자가 씩씩거리며 거리로 나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귀는 다른 인간들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많은 이들이 거리를 걸어 다녔지만 남자는 아랑곳없이 성질을 부렸다.

“어이, 죽은 건 아니지? 그 정도로 죽을 리가 없잖아.”

남자는 바로 코앞에 서 있는 울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보란 듯이 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옆에 서 있던 파우스트가 울에게 조심스레 속삭였다. 세상사에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흡혼귀의 습성이거늘, 이 흡혼귀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였다. 울은 석고상이라도 된 것처럼 굳은 표정으로 계속 남자를 응시했다. 말 그대로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남자는 가까이에 있었다.

이 버러지 같은 존재를 죽여야 할까.

몸을 일으킨 남자가 아이의 배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아이는 구타에 익숙한지 신음하지도 않고 고통을 견뎌냈다.

“울, 어떻게 좀 해봐.”

파우스트는 이제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독살스러운 외모 때문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독한 년.”

입으로 연신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남자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의 분노는 부츠로 아이의 얼굴을 짓밟았을 때, 절정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 알겠어? 네 잘나신 그 대가리보다 똥 묻은 내 부츠가 더 위대하다는 걸 이제 알겠지?”

남자는 아이의 얼굴을 지그시 밟고 있던 발로 다시 아이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줄곧 바닥으로 향해 있는 아이의 시선에는 한 줌의 희망도 담겨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울은 미간을 좁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비켜라.”

울이 나지막이 말했다.

“응?” 남자가 울을 바라봤다.

남자는 살기 그득한 울의 말투에 잠시 당황한 듯 보였다. 그리고 이내 아이를 향했던 그의 분노가 서서히 울에게로 옮겨오는 듯했다.

“어이, 나한테 말한 거냐?”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지. 내 앞을 막고 있는 그 더러운 몸뚱이를 당장 치우지 않으면―”

남자가 주먹을 뻗는 바람에 울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남자는 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너한테 살 기회는 충분히 주었다.”

남자의 주먹을 가볍게 피한 울이 말했다.

울은 남자에게 막을 틈도 주지 않고 빠른 동작으로 굵고 단단해 보이는 남자의 목을 잡았다. 그리고 너무도 손쉽게 남자를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목 근육이 탄탄하고 굵으면 맷집이 좋다는 설이 있던데.

울은 실험해보고 싶었다. 여태껏 그 실험을 버틴 생명체는 없었지만.

그는 이제부터 가장 어려운 일을 할 예정이었다. 아주 오래된 과거가 떠올라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런데도 자비를 베풀어 이 어리석은 생명체를 살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죽이지 않고 살려둔다니. 이토록 어려운 주문이 어디 있는가. 죽지 않을 정도의 고통만 준다는 건 사실 그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약간의 힘만 주어도 죽어버릴 테니까.

남자는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에서도 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뻗고 발길질을 해댔다. 물론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이 남자가 악바리라는 것만큼은 인정해줘야 했다.

“이 새끼가! 놔! 놓지 못해!”

아직은 버틸만한지 남자는 호기롭게 반항적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울의 손끝에서 마력이 방출되자 남자는 심하게 발버둥을 쳤다. 남자는 곧바로 울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악바리라고 한 건 취소해야겠군.

힘을 쓰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미미한 수준의 마력을 맛보는데도 이 나약한 인간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런 것들이 설치는 세상이란··· 우주에 나가면 먼지에 지나지 않을 존재들이지 않은가.

남자는 계속 가해지는 고통에 이내 눈알을 뒤집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리고는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몸의 핏줄들이 팽창했다. 수십 초의 시간 동안 빠르게 신체 변화를 겪은 남자는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에게서 생기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가 구타를 당할 땐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다는 듯 제 갈 길 가기 바빴던 인간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그 광경을 구경했다.

이 정도의 고통과 공포면 다시는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없겠지.

울이 남자의 목을 놓아주려던 순간, 2미터는 됨직한 키에 우람한 체격을 가진 민머리의 남자가 스무 명의 건장한 남성들과 함께 부서진 문을 통해 거리로 나왔다.

울은 민머리의 남자가 우두머리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리 중 그가 제일 강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를 따라 나온 스무 명 남짓의 남자들은 익숙한 동작으로 우두머리 뒤에 늘어섰다.

울의 손에 들려있는 남자를 본 우두머리는 뒤에 늘어서 있던 부하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부하는 득달같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어떤 여자를 끌고 나왔다.

우두머리는 부하가 끌고 나온 여자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잡았다. 우두머리 손에 붙들린 여자의 눈빛이 쓰러져있는 아이와 닮아 보였다. 희망을 엿볼 수 없는 죽은 자의 눈빛. 우연은 아닐 것이다. 울은 우연을 믿지 않았다.

우두머리는 굳은 표정이었지만 그 뒤에 늘어서 있는 부하들은 흉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길을 지나가는 인간 중 갓난아이들을 빼고는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 아는 눈치였다.

울의 신경이 잠시 우두머리에게로 향한 탓에 인생의 쓴맛을 맛보고 있던 딴딴한 남자의 머리가 터져버렸다. 힘 조절에 실패한 것이다. 기절해 있었고, 단번에 숨이 끊어졌으니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약한 놈들을 죽이지 않으려면 상당한 연습이 필요하겠군.

그 모습을 지켜본 우두머리의 그늘진 눈빛이 울에게 닿았다. 갖은 풍파를 겪은 것처럼 닳고 닳은 눈빛이었지만 울에게는 그저 애송이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감히 내 앞에서 내 동생을 죽이다니.”

걸걸한 목소리가 거리를 덮었다.

우두머리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단숨에 붙들고 있는 여자의 목에 칼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울에게 시선을 던졌다. 여자의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너무 원망하지는 말라고. 쓸모없는 동생이었지만 그래도 내 동생이었어. 피가 섞인 동생. 그러니 형으로서 복수는 해줘야지. 저 계집년 때문에 내 동생이 죽었으니, 저 계집년의 어미를 죽여야 내 동생이 편히 저승으로 가지 않겠나?”

우두머리가 말했다.

울은 천천히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의 눈은 피의 옷을 입은 여자에게 머물러 있었다. 역시나 삶에 아무런 기대도 없는 듯한 눈빛이었다. 울은 왜 아이에게 눈길을 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던 아이의 눈빛에서 실낱이지만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이내 아이의 시선은 생명의 기운이 꺼져버린 여자에게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울에게 옮겨왔다. 아이의 눈빛에 다시 희망이 실린 것처럼 보였다.

왜 이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며 희망을 품는 것인가. 그리고 왜 아주 먼 옛날의 자신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으로 울부짖는가.

“자식이 신분을 모르고 싸가지 없게 굴면 그건 어미 탓이지. 죽일 계획은 없었지만 뭐, 이미 죽였으니 어쩔 수 없고.”

우두머리가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고 있을 때, 파우스트는 재빠르고 기괴하게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영혼을 흡입했을 것이다. 이상한 귀를 가진 인간의 영혼일까, 칼에 찔려 죽은 인간의 영혼일까.

“자, 다음은 꼬맹이.”

우두머리가 말하는 꼬맹이가 울이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울은 더 기분이 상했다.

“네가 내 동생을 이렇게 만들어놨으니 너도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겠지? 내가 누군지 알고 네가 이런 짓을 벌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만. 일은 이미―”

우두머리는 주저리주저리 떠들었지만, 불행하게도 울은 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눈으로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인 울이 우두머리의 배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그의 배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일격이었다. 우두머리 배 속에 있던 장기들이 터지면서 사방으로 피를 흩뿌렸다. 우두머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생을 마감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울은 이미 사망한 우두머리의 머리를 들어 올린 다음 빠르게 마력을 방출시켰다. 순간적으로 폭발한 보랏빛 마력이 잔상을 뿌리며 주위로 뻗쳐나갔다. 우두머리의 머리는 펑 소리와 함께 터졌다. 피와 잔여물들이 사방으로 튀면서 울의 얼굴과 옷은 피로 물들었다. 그제야 만족스러웠는지 울의 표정이 예전처럼 무미건조해졌다. 파우스트가 꿀꺽하며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거리에는 아주 잠깐 정적이 찾아왔다.

우두머리는 죽었지만,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우두머리 뒤에 늘어서 있던 부하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겁을 먹고 도망간 자들도 더러 있었지만 남은 자들은 이판사판으로 울에게 덤벼들었다. 자신의 길드가 끝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덤비는 이유는 아마도 주변의 시선 때문일 것이다.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랐을 테니까. 곧 죽어도 쪽팔린 짓은 못하겠다는 거군.

게다가 여럿이서 덤비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착각도 그들의 돌진을 도왔을 것이다.

“이악!”

부하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떼로 달려들었다.

울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제일 먼저 다가온 남자를 맞이했다. 자신을 향해 사선으로 날아드는 칼을 가볍게 피한 뒤, 남자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어김없이 그의 마력에 의해 남자의 머리는 터졌다. 터트릴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단점이라면 자신에게까지 피가 튄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미 얼굴과 옷은 피로 물든 상황이었기에 울은 개의치 않았다.

갓 뿌려진 싱싱한 피 냄새가 곳곳에서 진동했다. 그 냄새가 울을 더 흥분시켰다. 고맙게도 그들은 울에게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이번엔 여러 명이 울을 에워싼 뒤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울은 빠르게 대응했다.

하는 수 없지. 한꺼번에 죽인다.

울은 손을 뻗었고, 남성들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공기들은 순식간에 돌변했다. 주문을 외우려는 순간, 문득 파우스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굳이 이런 약한 생명체를 상대하는데 주문까지 외울 필요는 없지.

울은 주문을 생략했다. 절대로 파우스트의 말을 의식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들의 생명을 유지해주던 고마운 산소들은 이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들의 얼굴과 몸을 난도질했다. 건장한 남자들이 하루살이의 인생처럼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순간이었다. 잔인한 광경에 어른들은 아이의 눈을 가림과 동시에 스스로 자신의 눈도 가렸다. 어떤 이들은 토악질했고,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테러의 현장이라도 본 듯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슬퍼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상점을 운영하는지 근무복을 입고 있는 인간들은 ‘벤지 던이 죽었다! 벤지 던이 죽었어!’라고 환호하며 그의 신체 조각들이 훌뿌려져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착각일지는 모르겠으나 구경꾼들은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듯 상반된 반응이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인간들과 해방의 기쁨으로 침을 내뱉는 인간들.

삑! 삑!

구경꾼들 너머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흠흠흠, 아쉽네. 경찰이 오고 있어.”

파우스트가 울에게 속삭였다. 이 나라의 체계에 대해선 이미 수다쟁이 파우스트가 떠들었기에 경찰이 무엇인지 울은 알고 있었다. 어느 행성이나 치안을 걱정하는 건 매한가지였기에 다른 행성에도 경찰은 존재했다. 고로 울도 경찰이라는 조직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을 부르는 명칭이 다를 뿐이었다.

파우스트는 이 상황이 즐거운 듯 보였다. 반면 분노에서 깨어난 울은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서둘러 찾았다. 많은 인파 덕분에 경찰의 눈에 띄지 않고 골목을 찾을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울은 서둘러 손가락으로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빠르게 허공에 균열이 생기며 성인 두 명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시공간이 열렸다.

무언이지만 동행을 약속했기에 울은 자신의 세계로 파우스트를 데려갈 심산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파우스트를 바라봤다.

“꾸물대지 말고 빨리―”

울은 파우스트가 아이와 아이의 엄마 시체를 안은 채 서 있는 모습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를 떠나보냈는데, 슬퍼할 시간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파우스트가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이 녀석은 정상적인 흡혼귀가 절대 아니야. 절대.

“어디로 간 거지!”

경찰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시간이 없다. 그래서 울은 미간을 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