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초원의 끄트머리에는 풍성한 나뭇잎을 자랑하고 있는 오래된 나무 두 그루와 작고 낡은 집 한 채가 있었다. 그 너머에는, 바다로 이어지는 굽어진 강과 나무들이 빼곡한 광활한 숲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산맥이 펼쳐졌다. 의도적으로 방치된 자연은 거칠면서 아름다웠다.

낡은 집 앞 벤치에 앉아있는 울은 언제나 그렇듯 무미건조한 표정이었다. 초원 쪽에서 산들산들한 바람이 불어와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피로 흥건했던 얼굴과 옷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한 상태였다.

결국 또 많은 생명의 목숨을 앗았다. 그들이 나쁜 성격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인생을 살았다 해도, 그건 자신이 판단할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벌을 내리겠다는 일념으로 아니, 죽이고 싶다는 욕망으로 살생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럴 때면 항상 창조자의 예언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는 아무것도 담지 않은 눈빛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며 땅을 적셨다. 이내 세상은 피로 물들어 붉어졌다. 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잠시 스쳤다. 그는 심호흡하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다시 손을 바라봤다. 손에 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은 여전히 푸르렀다.

드러내진 않았지만 사실 울은 굉장히 초조했다. 이 행성에 오기 전만 해도 창조자의 영혼을 금방 찾을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일이 이상하게 진행됐다. 물론 찾는 일은 전적으로 흡혼귀의 몫으로 미룰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보기 좋게 어그러졌다. 파우스트는 창조자의 영혼을 찾기는커녕 불청객만 데려왔다. 그래서 울은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삶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빨리 창조자의 영혼을 찾아야 해.

계획을 세우고 살아온 인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목표는 있었다. 창조자에게 복수하겠다는 목표만은 언제나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그는 흔들림 없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실수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이 세계가 전부 순수하게 네 마력으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울을 상심에서 건져 올린 건 파우스트였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초원을 뛰어다니던 파우스트가 벤치에 앉아있는 울에게 다가와 소리친 것이다.

“그런 멍청한 소리는 처음 듣는군. 내 마력은 유지하는 데에만 쓰인다. 이 풍경은 가져온 거야.”

울은 방금 피로 물든 환상에서 빠져나온 것치곤 꽤 차분했다.

“무어어~? 그게 더 대단한 거 아니야?! 자연을 어디서 어떻게 가져와?”

파우스트가 놀란 눈을 하고 울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설마, 파괴한 행성에서 가져온 거야? 아니 그럼, 여기는 도대체 얼마나 넓은 거야? 창조자의 세계도 이렇게까지 크진 않았는데.”

울은 감격에 겨워하는 파우스트를 바라만 보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런 울에게 적응했다는 듯 파우스트는 조용히 울의 옆에 앉아 뒤쪽에 있는 작은 집을 바라봤다. 파우스트는 앉은키도 컸다.

“우주를 벌벌 떨게 만드는 존재가 사는 집이라기엔 너무···”

울은 살기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파우스트를 바라봤다.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린 파우스트는 더는 캐묻지 않고 “그럴 수 있지. 작을 수 있지.”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울의 시선이 작은 집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아이에게로 옮겨갔다.

의지와는 상관없이―순전히 파우스트의 의지로―자신의 세계로 들어온 아이는 이미 싸늘해진 시체를 그저 몇 시간 째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래도 너한테 정이라는 게 조금은 있어서 다행이야. 네 덕분에 저 아이는 살았잖아. 엄마는 죽었지만.”

파우스트가 울에게 말했다. 말에서 뼈가 느껴졌지만, 울은 개의치 않았다.

“착각하지 마라. 다시 보낼 거다.”

울이 아이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대답했다.

“저 어린 것을 다시 보내겠다고?”

“누구보다 죽은 생명의 영혼을 좋아하는 네가, 살아있는 생명에게 애착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너희 종족은 세상사에 관여하지 않는 게 정상 아닌가? 아, 넌 다른 흡혼귀들과는 다르다 그랬나? 멍청한 흡혼귀와는 다르다고 말이야. 그런데 넌 지금 그 어떤 흡혼귀보다 더 멍청한 짓을 한 거야.”

“울, 나는 순수한 의도로―”

울의 보랏빛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이자,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흡혼귀라는 종족은 아무 이유 없이 아이를 구제할 정도로 세상사에 관여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죽은 생명이 많아야 배를 불릴 수 있었기에 산 생명보다는 죽은 것에 더 관심을 가졌다. 물론 제 입으로 자신은 다른 흡혼귀와는 다르다고 말했지만, 파우스트가 아이를 데려온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무엇이 파우스트를 변하게 했을까. 창조자일까. 그런데 창조자는 왜 파우스트를 데리고 있었을까.

울의 말이 서운했는지 끊임없이 떠들어대던 파우스트는 해가 지고 달이 떴는데도 조용했다. 덕분에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굽이치는 강물 소리가 주위를 지배했다.

하루가 다 지나도록 싸늘해진 시체만 바라보고 있던 아이는 심경에 변화가 왔는지 지친 몸을 일으켰다. 울은 여전히 벤치에 앉은 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얼굴을 치장했던 피는 굳어서 덕지덕지 붙어있었지만, 구타로 인해 생긴 상처는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마력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짧은 시간에 말끔하게 나은 자신의 몸이 이상했던지 아이는 몸을 더듬고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뻗어댔다.

“이제 괜찮냐?”

울과 함께 앉아있던 파우스트가 물었다.

그의 으스스한 목소리가 불편했는지 아이는 아주 잠깐 얼굴을 찡그렸다.

“······산 사람은 살아야죠. 그리고 이상하게 몸이 하나도 안 아파요.”

“조그마한 게 강하네. 몇 살이야?”

“열일곱 살이요. 그리고 난 작지 않아요. 괴물 아저씨가 유난히 큰 거죠.”

아이가 파우스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이제 삶의 끈을 놓아버린 듯한 눈빛과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무슨 결심이 섰는지 눈동자에 살려는 의지가 짙게 배어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뭐? 괴물? 아니 어딜 봐서 내가―”

“할 거 다 했으면 이제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울이 파우스트의 말을 가로챘다. 그는 미리 만들어 놓은 시공간의 문을 검지로 가리켰다. 울이 그렇게 말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파우스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저를 거두어 주세요.”

아이는 그것이 가장 최적의 선택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울은 죽음을 뿌리는 존재였다. 그런 험난한 길에 아이까지 데려갈 수는 없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울이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저는 이제 주인도 없는 노예가 되었어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살아가야 해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건 네 사정이다.”

울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아저씨가 내 인생에 멋대로 끼어든 거잖아요! 난 죽을 생각이었어요.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고요!”

내가 아니었다면 죽었을 생명 주제에, 그게 할 말인가.

시체를 바라보면서도 울지 않았던 아이의 목소리에 울분이 섞여 있었다.

아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더러운 놈들의 칼에 죽던 운명의 장난으로 살아남아 복수를 하던 그건 아이가 짊어질 운명이었다. 엉망진창이었던 아이를 두고 비껴갈까 고민했던 이유도 다 그것 때문이지 않은가. 울은 아이의 인생에 끼어든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울은 눈을 뜨고 아이를 바라봤다.

“너를 거둔다고 해도 나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는데.”

울의 말에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서둘러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아이의 눈빛이 다시 초롱초롱 빛났다.

“아저씨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용케 사람이 아닌 걸 알아보는군.

울은 자신을 단박에 알아본 아이에게 약간 놀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울이 물었다.

“사람이 아닌데 인왕국에 있다는 건 여행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어서 왔다는 거겠죠. 제가 관찰한 결과, 아저씨는 이 나라를 여행하기 위해 온 건 아닐 거예요. 여행 온 것치곤 표정이 너무 딱딱하고 슬프니까. 그렇다면 필요한 게 있어서 이 나라에 왔다는 거겠죠. 이 나라에 대해 모르면 원하는 걸 갖거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어려운 면이 있지 않을까요?”

울이 반박하는 말을 하지 않자, 아이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 나라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을 하든 훨씬 수월할 거예요.”

제법 똑똑한 녀석이군.

“네가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저는 비록 노예지만 주인 몰래 책을 많이 읽었어요. 도서관에 아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책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저기 있는 괴물 아저씨보다는 도움이 됐을 테지만요.”

울은 아이가 파우스트를 경계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정작 본인은 불만인 것 같았지만.

“이봐, 꼬마. 왜 자꾸 나한테 괴물이라고 하지? 응? 쟤한테는 괴물이라고 안 하잖아.”

파우스트가 손가락으로 울을 가리켰다. 그는 서운하다는 듯 인상을 쓰며 바로 반응했다. 그리고는 다시 거울을 꺼내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엄청난 크기의 거울이 파우스트의 품에서 나오자 아이는 놀란 눈을 하고 파우스트를 바라봤다. 그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거울을 보고 있던 파우스트는 아이를 향해 한쪽 눈을 깜빡였다.

“흡혼귀에 대해 아나?”

울이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흡혼귀가 뭔지 모르지만, 저 괴물 아저씨가 아까 이상하게 변한 건 봤어요. 순간적으로 입이 커지는걸요. 그건 사람의 입이 아니었어요. 괴물의 입처럼 보였어요···”

영혼을 흡입하는 걸 본 거군.

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파우스트를 바라봤다.

“걱정 마. 이 꼬마의 엄마 영혼은 안 먹었으니까. 내가 그 정도로 막, 싸구려로 인생을 살고 그러지는 않는다고.”

파우스트가 찔릴 게 없다는 듯 가슴을 펴고 울에게 말했다.

이것 또한 의외로군.

“네? 영혼을 먹어요?”

아이가 놀란 눈을 하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반면 파우스트는 “영혼을 먹는 자신을 더럽게 보는 건 실례야, 이건 숭고한 일이라고.”라는 말로 태연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사실, 아이의 제안은 솔깃했다. 영혼을 찾기 위해 파우스트가 필요했고, 이 세계에 대해 모르니 정보가 있는 아이가 필요했다. 게다가 파우스트와는 달리 아이는 매우 똑똑해 보였다. 오랜 시간 혼자 지냈기에 당연히 혼자가 편했지만, 이들과 함께하면 창조자의 영혼을 잡는데 시간이 훨씬 단축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것을 모를 만큼 울은 멍청하지 않았다. 따라서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울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지, 아이를 위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주 위험한 곳으로 갈 거다. 그래서 네 인생이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다. 너에게 꿈이 없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네 마음속에 작게나마 희망이란 게 있다면 넌 이 세계로 발을 디뎌선 안 된다. 쉽게 말해 어중간한 마음은 네 인생을 아니, 그걸 넘어서 너의 생명을 앗아갈 거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실, 죽으려고 했어요. 이미 최악의 인생을 살았으니까. ···근데 아저씨가 구세주처럼 나타난 거예요. 내가 삶의 끈을 놓으려는 순간에 아저씨가 나타난 거예요. 그리고 아저씨는 다른 사람들처럼 무시하고 갈 수 있었지만, 저를 도와줬죠.”

“그건―”

“제 희망의 시작과 끝은 아저씨에게 있어요. 그래서 그곳이 어디든 저는, 따라가고 싶어요.”

아이가 울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단호한 표정이었다.

울은 시선을 옮겼다. 덧없는 세월을 채우지 못하고 죽어버린 시체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