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원하는 곳에 묻어라.”

울이 허공에서 꺼낸 삽을 던지며 말했다. 거두어달라는 아이의 청에 대한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허공에서 삽이 나온 것에 놀란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울의 변심을 우려했는지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아이는 깡마른 몸으로 힘겹게 시체를 끌었다. 목적지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는 곳인 것 같았다.

울은 어둑해진 하늘을 뒤로한 채 찹찹한 마음을 이끌고 이제는 낡을 대로 낡아진 집으로 들어가 차를 끓였다. 멀대 파우스트는 집의 낮은 천장 때문에 고개를 옆으로 구부리며 힘겹게 울을 따라 들어왔다.

“아니, 이렇게 한가하게 차나 끓이고 있어도 되는 거야? 그리고 집이 너무 작아. 어떻게 좀 크게 해줄 수 없어?”

“경찰들 오는 거 너도 보지 않았나? 지금 저쪽 세계는 조사 중일 거다. 조사받고 싶으면 너 혼자 가라. 그리고, 밖은 넓다. 넓은 곳을 좋아한다면 넌 바깥에서 자도 상관없을 것 같군.”

말을 마친 울이 옅은 녹색을 띠고 있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흠흠흠, 농담도.”

울이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파우스트를 쳐다봤다.

“뭐야, 진담이야? 어허! 위, 위험할 소리 하네? 나는 밖에서 자고 그런, 천한 흡혼귀가 아니야. 감기 걸린다고! 감기 걸리면 창조자의 영혼을 어떻게 찾아? 어? 창조자의 영혼은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몸 관리, 정신 관리 그런 관리가 필요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환경이 중요하단 거지, 내 말은.”

말을 마친 파우스트는 최대한 우아한 동작으로 차를 따른 후, 울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음~ 아무 맛도 안 느껴져.”

파우스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인간의 혀까지는 완벽하게 변신할 수 없나 봐. 나는 완벽한 변신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죽인 남자 놈의 영혼도 먹었나?”

“당연하지. 근데 그건 왜?”

파우스트는 울의 질문에 호기심을 느끼는 듯했다. 울이 질문한다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 녀석의 기억 속에 아이의 생활은 어땠지?”

“참나, 아까는 내보낸다면서 성질을 부리더니만―”

“그 화는 지금도 낼 수 있는데.”

“알았어, 알았어,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아무튼 간단히 말하자면 어릴 때부터 줄곧 맞으면서 산 거 같아. 그 아이 엄마도 그 아이를 피해 다녔고.”

울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엄마도 안 맞은 건 아니야. 네가 죽인 그 녀석, 엄마와 아이 둘 다 때렸으니까.”

파우스트는 울이 직접 머리통을 터트려버린 남자의 기억—아이와 관련된—을 빠짐없이 전달했다. 아이가 묵언으로 7년을 버틴 이야기며, 좋아하던 남자에게 맞은 이야기까지.

“확실히 지옥의 생활을 버텼군. 그리고 이건 만약을 대비해서 갖고 있어라.”

울이 종이로 보이는 무언가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건 뭐야?”

“이 나라에서 사용하는 신분증일 거다. 넌 네가 본 것을 환각으로 조작할 수 있다고 했었지?”

“그래, 이제 나는 너와 내 신분증을 만들 수 있지. 물론 환각이지만.”

파우스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파우스트의 손에는 울의 신분증이 들려있었다. 하지만 그건 조작이었다. 파우스트의 손에 신분증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울의 생각을 파우스트가 조작한 것이다.

“봤지? 흠흠흠. 근데 한두 명이면 모를까. 보는 눈이 많으면 능력을 사용하기 힘들어.”

“능력을 사용하는 것까지 내가 일일이 알려줘야 한다면 넌 그동안 인생을 헛살았다고 봐야겠지.”

“아, 아파라. 너의 말이 나의 가슴을···”

파우스트가 가슴에 손을 가져가며 장난을 쳤지만, 울은 어울려주지 않고 차를 마셨다.

시체를 다 묻었는지 아이가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건 파우스트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울이 우려낸 차를 알아서 찻잔에 따른 아이는 울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이가 원탁 테이블에 앉자 마침내 삼각형이 완성되었다.

“우리의 일행이 됐으니 이제 알아야겠지? 자, 넌 이름이 뭐야?”

파우스트가 고상한 척 차를 홀짝거리며 물었다. 그러고는 울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이 일행이라는 말을 꺼내서 혹여나 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다행히 울은 무미건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 세라 위즈라고 해요.”

“난 파우스트라고 해. 만나서 반갑다. 세라라고 불러도 되지?”

“아, 네.”

세라는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파우스트를 바라봤다. 아무렴, 그렇게 생긴 생물은 처음 보는 것이 분명했다.

“세라, 너는 노예야?”

파우스트가 자신보다 한참 작은 세라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네.”

“왜?”

왜라는 질문은 처음이었는지 세라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태어나보니 노예라던데요.”

“그렇구나. 어쩐지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지.”

“제 눈빛이 어떤데요?”

세라는 조금은 반항기가 섞인 말투로 물었다.

“아주 강렬해. 노예들이 보통 그렇잖아. 주인이 막 괴롭히는데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어, 그걸 뭐라더라··· 잡, 잡초! 그래 맞아, 잡초.”

울과 세라가 동시에 파우스트를 바라봤다.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을 알아차렸는지 파우스트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아니, 나쁜 뜻이 아니라. 내 말의 뜻은 그러니까, 굳건하다는 거지. 아닌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응? 말 좀 해봐.”

파우스트의 말에 세라는 마치 불편한 과거와 마주한 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니지만, 노예들의 대우가 좋은 건 아니죠. 괴물 아저씨도 노예였어요?”

세라가 물었다. 말을 마친 그녀가 차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아니. 아니지. 얘기가 왜 그렇게 흐르지? 나는 노예가 아니었지. 지금도 아니고. 그리고 난 괴물도 아니―”

“이곳에서 제일 위험한 곳이 어디지?”

울이 또 파우스트의 말을 가로채며 물었다. 파우스트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울과 세라를 번갈아 바라봤다.

“저기요, 내 말을―”

“음, 제로 대륙일 거예요. 아저씨는 왜 이 나라에 왔어요? 사람이 아니면 무슨 종족이에요?”

세라도 파우스트의 말을 가로채며 물었다. 그녀의 당돌한 질문에 울은 살짝 당황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창조자의 영혼을 찾아 파괴할 거다. 그게 내 목적이지.”

“창조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어요! 어떤 할아버지가 거리에서 구세주와 창조자에 대해 계속 중얼거리는 걸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 할아버지는 창조자는 하늘에 살고 우리를 보살펴주는 존재라고 했어요. 또 구세주는 사람들 틈에 섞여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존재라고 했죠. 물론 사람들은 우리를 보살피는 건 국왕 전하와 군인들이라며 할아버지에게 손가락질했지만요.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꿋꿋했죠. 근데··· 창조자는 진짜로 있었군요!”

“흠흠흠.” 세라의 말에 파우스트가 특유의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뭐, 존재하긴 하지. 하늘에 사는 것도 아니고, 너희를 보살펴주는 것도 아니지만. 흠흠흠.”

“그건 됐고, 제로 대륙에 관해서 들어보도록 하지.”

“음, 설명하자면 복잡한데요. 제로 대륙은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위대한 탐험가를 빼고는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에요. 아, 제 말은, 인왕국을 말하는 거예요. 다른 나라는 잘 몰라요. 저는 다른 나라에 가본 적도 없는걸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저는 가게 된다면―”

세라의 말에 파우스트가 엄지와 중지를 이용해 손가락을 튕겼다. 파우스트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삼천포로 빠졌을 것이 분명했다.

“울, 인왕국은 지금 우리가 있는 나라를 말하는 거야. 알아두라고.”

파우스트가 세라의 말을 가로챘다.

울은 파우스트를 한 번 힐긋거리고는 다시 세라에게 시선을 던졌다.

“어째서 그 탐험가만 간 거지? 제일 강한 인간이었나?” 울이 물었다.

“그 탐험가가 강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제로 대륙으로 가기 위해서는 제로 대륙의 경계선에서 문을 만든 다음, 그 문을 통해 제로 대륙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들었어요. 문을 열려면 당연히 재료들이 필요하고요. 재료를 모으는 것도 만만치 않겠죠? 게다가 또 다른 문제가 있어요.”

울의 미간이 점점 좁혀졌다. 울의 표정을 봤는지 세라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제로 대륙을 감싸고 있는 ‘미지의 바다’와 또 그 바다를 고리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외곽 대륙’이 있는데요. 그 바다와 대륙에는 거대 괴물들이 출몰한대요. 엄~청 큰 거대 괴물이요.” 세라는 굳이 두 팔을 벌려 거대 괴물의 크기를 표현하려고 애썼다.

“오, 그럼 그때 사막에 나타난―”

“여기는 비행 마법이 없나?”

울이 파우스트의 말을 가로채며 물었다.

“있죠, 흔하지는 않지만. 하지만 비행 마법으로는 ‘제로 대륙’까지 갈 수 없댔어요. 갈 수 있었다면 위대한 탐험가는 ‘위대한’이라는 칭호를 얻지 못했을 거예요. 비행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었을 테니까요. 비행 마법으로 ‘제로 대륙’ 경계선에 들어서면 임의의 장소로 갑자기 순간 이동을 한대요. 마치 제로 대륙이 ‘이봐, 올바른 방법으로 오지 않으면 넌 영원히 여기에 올 수 없을 거야’라고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죠. 혹시 알아요? 운이 나빠서 다른 종족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로 이동할지. 아, 왜 운이 나쁘냐면, 잠시만요.”

세라는 말을 많이 해서 목이 말랐는지 하던 이야기를 중단하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종족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고 들었거든요. 물론 비행 마법으로 ‘미지의 바다’까지 가는 것도 ‘외곽 대륙’에 출몰하고 있는 거대한 새들을 피할 수 있어야 가능하겠지만요.”

“오, 날아다니는 새! 사막에서―”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제로 대륙으로 가려면 문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모은 다음, 제로 대륙 경계선으로 가서 재료를 이용해 문을 만들고, 그 문으로 들어가면 짜잔! 제로 대륙이 눈 앞에 펼쳐진다는 거죠. 뭔가 신비스럽지 않아요? 제로 대륙의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파라다이스가 펼쳐질 것 같지 않아요?”

파우스트가 끼어들었지만, 그의 말은 세라의 말에 의해서 금방 묻히고 말았다. 파우스트는 세라가 말하는 내내 대놓고 심통 난 표정을 지었다.

입을 떼기 시작한 세라는 끊임없이 자신이 아는 것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에 질세라 파우스트도 같이 떠들어댔다.

“오, 꼬마. 파라다이스가 뭐야?”

“파라다이스는 말이죠. 불행은 없고 오직 행복만―”

울은 마법을 써 주변을 고요하게 만든 다음 눈을 감았다. 덕분에 수다쟁이들의 대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대충 윤곽은 나왔지만,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었다.

이야기꾼이 둘이라니. 운이 안 좋은 건 나인 것 같은데.

“창조자 영혼이 안 느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네. 그치, 울?”

파우스트가 눈을 감고 있는 울을 흔들며 물었다.

“어디에 있는지 확실해 졌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인 거지.”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온 울이 파우스트를 한 번 쏘아본 뒤 대답했다.

“혹시 그 제로 대륙에 창조자의 영혼 말고 다른 어마어마한 게 숨겨져 있는 거 아니야?”

파우스트가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건 가봐야 알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래서 그 문을 열 수 있는 재료는 뭐지?”

창조자 외엔 관심이 없는 울이 세라를 향해 물었다. 그의 물음에 세라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 문을 열었던 위대한 탐험가, 트라브 어밴만이 알고 있겠죠.”

“그자는 어디 있지?” 울이 물었다.

좋아. 그자만 찾으면 되겠군.

울은 다시 희망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위대한 탐험가 트라브 어밴은 이십 년 전에 죽었어요.”

파우스트는 놀란 눈을 했고, 울은 미간을 좁혔다. 반면 분위기를 읽지 못한 아이는 평온하게 차를 홀짝거렸다.

아, 그냥 다 파괴해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