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3층짜리 건물 앞, 세라는 가냘픈 몸을 이끌고 사다리에 올라선 채 ‘하이에나 길드’라고 새겨진 큼지막한 글자 간판을 닦고 있었다. 글자 옆에는 여러 마리의 하이에나들이 드세게 주둥이를 벌리고,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길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상당히 지쳐 보였다. 3층 건물의 청소는 물론, 스무 명이 넘는 길드원들의 빨래까지 전부 그녀의 몫이었다. 눈 뜨자마자 일을 해야 그나마 날을 넘기지 않고 맡은 일을 다 끝낼 수 있었다. 그래서 세라는 자신의 형편없는 요리 솜씨에 늘 감사했다. 그것마저 잘했다면 그녀는 숨 쉴 시간마저 없었을 것이다.

“엄마, 아빠는 왜 항상 바빠요?”

길드 건물 앞 보도 쪽에서 천진난만한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네가 먹고 있는 맛있는 빵을 사주기 위해서 바쁜 거란다. 아빠께 항상 감사해야 해. 알았지?”

“그럼, 엄마한테는 안 감사해도 돼요?”

“뭐? 요 녀석이.”

모자의 대화가 안 그래도 자신의 인생을 불쌍하게 여기고 있는 세라의 마음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꼬르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도 고파왔다.

절묘하네. 밥 먹을 시간 이십 분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녀가 잠시 숨을 고르며 배고픔을 달래고 있을 때, 사다리 밑에서 길드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예. 한가하네? 똑바로 안 닦냐? 이따가 검사해서 더러우면 알지?”

재수도 좋지. 하필이면 잠깐 손이 멈췄을 때 그걸 보냐.

그녀는 여태까지 일했다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억울함을 억누르며 꾹꾹 참았다. 자신이 말을 뱉는 순간, 그건 저주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상황이 안 좋아지면 정말 감당할 수 없어.

억울한 마음은 저녁때면 사라지지만 맞아서 멍이 들면 꽤 오랫동안 아프다. 아프면 일을 할 수 없고, 그러면 또 맞을 것이다.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소리를 친 결과가 스르륵 그녀의 뇌리를 스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윽박지르던 길드원이 문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세라는 살짝 입술을 오므리는 것으로 분을 풀었다.

오늘은 좀 평소랑 다른 기분이야. 아침부터 까마귀 한 마리가 와서 지저귀더니.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냐. 그게 까마귀의 잘못은 아니지.

“괜히 저러시는 거야.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녀를 상념에서 끄집어냈다.

길드에서 유일하게 친절을 베푸는 딜런 미켓이었다. 그는 꽤 앳된 얼굴이었지만 스무 살이나 된 어엿한 성인이었고, 어릴 때부터 탐험가 일을 해온 터라, 이쪽에서는 나름대로 경력도 있는 베테랑이었다.

세라는 수줍은 눈길로 딜런을 바라봤다. 그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동시에 구름에 갇혀있던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그 빛을 빠짐없이 사방에 뿌려댔다.

세라는 빨개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햇빛이 드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왜 얼굴이 빨개졌냐고 물으면 뜨거운 햇빛 때문에 더워서 볼이 빨개진 것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도록.

“이따가 몰래 뒤편에 있는 벤치로 올 수 있어? 내가 다른 도시에 가서 맛있는 걸 가져왔거든. 아마 넌 먹어보지 못한 걸 거야. 게다가 아주 맛있어.”

딜런의 다정한 목소리는 언제나 세라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의 얼굴에 드리웠던 그늘은 어느새 사라지고 미소가 번졌다. 무언가를 받아서 기쁜 것보다도 자신을 생각해주는 딜런의 마음이, 그녀는 기뻤다. 저 문을 통해 들어가는 곳이 설령 지옥 같은 곳이어도 딜런이 그 안에 있다면 세라는 망설이지 않고 발을 내딛으리라.

육중한 문을 열자, 세라의 눈에 탐험가 길드처럼은 느껴지지 않는 풍경이 들어왔다. 오른쪽 한 편에는 맥주가 가득 담겨있는 둥그런 나무통이 쌓여있었고, 홀에는 언제든지 술을 마실 수 있는 테이블들이 자리했다. 이른 오후가 되면 이 넓은 내부는 담배 연기와 술집 여자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로 채워질 예정이었다. 창문이 없었다면 담배 연기에 질식해 길드원들은 벌써 땅에 묻혔을 것이다.

세라는 2층 내부 난간 벽에 부착된 길드 문장으로 시선을 던지며 홀에 들어섰다. 보기만 해도 무서운 것을 남자들은 왜 좋아하는지 세라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길드가 술집의 모습이 돼버린 건 모두 길드 마스터인 벤지 던 때문이었다. 길드원들이 술집에 드나들며 자신의 사업 계획을 떠벌리는 실수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덕분에 길드의 비밀은 새어나가지 않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듯, 길드는 길드답지 않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하이에나’ 길드가 유명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악명이긴 하나, 나름 유명하고 규모가 큰 길드였다. 다른 탐험가를 염탐하며 쫓아다니다가 그들에게 위기가 닥치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렸다. 다른 탐험가들이 가지고 있던 보물이나 장비들을 훔치는 것과 동시에 다른 탐험가들의 업적까지 빠짐없이 모두 훔쳤다. 그들은 그야말로 인정사정없이 남의 것을 빼앗는 하이에나였다.

세라는 능숙한 동작으로 홀을 가로지르며 밤새 쌓인 쓰레기들을 수거했다. 음흉한 눈빛이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길드원 중 한 명이 세라의 엉덩이를 툭 치며 “저기 누가 맥주 쏟았더라, 가서 닦아.”라고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몸을 만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는데 올해부터는 이상하게 한 명씩 자신의 몸을 건들거나 더듬기 시작했다.

수치심이 들면서 자신이 벌레보다 못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우울증은 그녀를 찾아왔다. 아마 딜런이 아니었다면 진작 목숨을 끊지 않았을까.

그녀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딜런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딜런은 황량한 사막에 존재하는 오아시스였다. 물론 만질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는 신기루였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거 하나쯤은 갖고 싶어 했으니 자신도 괜찮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세라가 대걸레를 들고 맥주를 닦기 위해 홀로 나왔을 때, 언제 출근했는지 길드 마스터인 벤지 던이 홀 중앙에 있는 기다란 일자 테이블 상석에 앉아 길드원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벤지 던은 오늘도 어김없이 몸에 꽉 끼는 가죽 재킷과 바지를 입은 채, 자신이 훈장처럼 여기는 민머리에 새긴 하이에나 문신을 두툼한 손으로 문질러댔다. 우람한 체격에 어울리는 큼지막한 근육들과 손바닥의 굳은살들은 그가 얼마나 몸을 단련했는지 짐작하게 했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세라는 서둘러 몸을 숙이며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벤지 던은 인사를 받는 시늉도 하지 않고 언제나처럼 이곳저곳에 침을 튀겨가며 자신과 자신이 세운 업적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세라는 질리도록 들은 이야기라 듣고 싶지 않았지만 넓은 홀에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그의 목청은 무지 컸다.

멍청해. 할 줄 아는 거라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야비하게 도둑질한 걸 자랑하는 일밖에 없잖아.

거대한 문이 손쉽게 스르르 열리며 작고 딴딴해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벤지 던의 동생 셰인 던이었다.

세라는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대걸레로 시선을 옮겼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식은땀이 났다. 그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서둘러 대걸레로 바닥에 쏟아진 맥주를 닦아냈다.

셰인 던의 귀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레슬링이라는 운동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게 귀의 모양과 무슨 상관인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아무튼 그의 귀가 살짝 징그러운 건 사실이었다. 그는 체격 또한 상당히 다부졌고, 형제였지만 벤지 던과는 전혀 닮지 않은 얼굴이었다. 벤지 던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아버지를 닮았고, 동생은 엄마를 닮았다고 했는데···

엄마가 미인이 아닌 게 확실해.

“형! 벤지 형!”

셰인 던의 쉰 목소리가 홀에 울려 퍼졌다. 담배를 많이 태워서 그런지, 아니면 목에 지병이 있는 건지 그의 목에서는 쇠를 갉아대는 것처럼 기분 나쁜 목소리가 났다.

“어, 동생 왔냐? 갔던 일은 잘 해결했냐?”

“당연히 잘 됐지! 형, 석판 조각 탐험대, 신청했다며?”

“크하하! 벌써 소문을 들은 거냐? 이 자식, 정보력 한 번 빠르네. 아마 내일쯤 서류가 도착할 거다.”

“근데 석판 조각 탐험대는 아무 길드나 못하잖아. 우리가 대형 길드라고는 해도, 왕실이나 특전사령부 탐험대 관리과랑 연줄이 있어야 할 텐데?”

“크하하! 멍청한 동생아. 이 형이 믿는 구석도 없이 찔러봤겠냐? 다~ 매수를 해뒀지.”

“돈으로?” 셰인 던이 물었다.

“아무렴! 돈으로는 안 되는 게 없지.”

“잘됐네, 그럼 우리 제로 대륙으로 가는 거야?”

“제로 대륙은 무슨. 죽을 일 있냐?”

“그럼 왜 석판 조각 탐험대를 신청했어? 제로 대륙으로 갈 생각도 없으면서.”

“멍청한 동생아. ···잘 들어. 아직 어느 길드가 선정됐는지 모르겠지만, 석판 조각 경쟁에 뛰어들 정도면 분명 우리보다 규모가 큰 길드일 거야. 근데 우리는 그 위험하다는 외곽 대륙으로 가는 거라고. 난다 긴다 하는 녀석들도 외곽 대륙에서는 고꾸라지는 판에 대형 길드가 다 무슨 소용이냔 말이야.”

“그게 뭐?”

“이 멍청한 놈아! 그 자식들이 죽을 때를 노리는 거야! 외곽 대륙으로 나가서 돌아온 길드가 있었냐? 석판 조각을 찾지 못해도 우리는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좀 있어 보이는 길드 뒤를 졸졸 쫓아다니다가 놈들이 고꾸라지려고 할 때 딱!”

“그럼 형의 목적은···”

“당연히 석판 조각이 아니지, 이놈아. 그건 못 모아.”

“형! 진짜 천잰데? 우리 이러다가 진짜 부자 되겠어. 지금도 부자지만.”

그들의 멍청한 대화가 홀에 울렸지만 세라는 오로지 홀에서 벗어날 궁리뿐이었다.

“세라, 세라.”

딜런의 목소리가 후문 쪽에서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던 형제에게 쏠려있을 때, 자신이 가지고 온 선물을 주려는 모양이었다.

세라는 눈치를 살피며 살금살금 후문으로 향했다. 성공적으로 뒷문으로 나온 그녀는 벤치에 앉아 있는 딜런과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그러자 딜런이 다가와 앉으며 둘의 사이를 좁혔다. 그에게서 좋은 향기가 풍겼다.

“자, 엄청 달콤한 거야. 아마 피로가 싹~ 달아날걸?”

피로? 그녀에게 피로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쌓였던 피로는 그의 미소를 보고 이미 훨훨 날아갔으니까.

그가 건네준 검고 딱딱한 것을 입안에 넣었다. 딜런의 말대로 그것은 순식간에 입안에 녹아들며 달콤함을 퍼트렸다. 너무도 짙은 달콤함에 현실이 잊힐 정도였다.

“힘들지 않아?”

그녀는 고개만 끄덕였다. 자신이 말을 하면 딜런이 주는 달콤한 위안은 사라질 것이다.

“오늘도 역시 말을 안 하는구나. 뭐, 괜찮아. 언젠가는 말을 해주겠지. 그게, 나는 네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잖아. 그래서 궁금한 건 사실이야. 네 얼굴처럼 목소리도 예쁘겠지?”

딜런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세라는 흔들렸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까. 이 행복이 깨지는 건 싫어.

세라가 말을 건넬까 망설이던 그 순간, 그녀의 뒤통수에 화끈한 충격이 전해졌다. 얼마나 세게 뒤통수를 맞았는지 세라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이, 잘 지냈냐? 망할 계집년아.”

특유의 쉰 목소리가 그녀의 귓속에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