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불길했던 오늘, 그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까마귀가 창틀에 나타난 것 때문이라며 엄한 곳을 탓해보지만 세라는 까마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돌아왔는데 인사도 안 하고 여기서 연애질을 하고 앉았네?”

셰인 던이 세라의 머리채를 잡고 살기를 잔뜩 품었다.

“몰래 연애질하니까, 더 가슴이 콩닥콩닥 뛰냐?”

그녀와 딜런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내려는 듯 그의 눈동자는 바삐 움직였다.

“뭐야, 초콜릿이잖아.”

딜런의 손에 들려있는 초콜릿을 본 셰인 던이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듯 조소를 날렸다.

“줘봐.”

셰인의 명령에도 딜런은 그대로 굳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쭈그려 앉아서 세라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셰인 던이 일어났다.

“···야, 줘보라고.”

셰인 던이 잡아먹을 듯 노려보자, 그제야 딜런은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아, 네.”

딜런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딜런, 너 설마 이 노예년 좋아하냐?”

딜런은 대꾸하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 같았다. 애초에 희번덕거리는 셰인 던의 눈을 보고도 겁을 먹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세라는 엉뚱한 곳으로 화가 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 엉뚱한 곳이 자신의 오아시스라면 더욱 참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가질 수 없는 신기루라 할지라도.

그렇다면 그녀가 할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제, 제발 그만 좀 해요! 도대체 언제까지, 언제까지 저를 괴롭힐 거예요! 아저씨가 무식한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세라는 그동안 쌓인 울화를 담아 소리쳤다. 몇 년 동안 다물었던 입을 연 기념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말을 하면 언제나 불화가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이 입을 열면 딜런을 구할 수 있었다. 오직, 오직 그 하나만 보고 침묵했던 몇 년의 시간을 버린 것이다.

“머, 머리에 든 게 없고, 무식하면 책이라도―”

셰인 던은 장황하게 윽박지르거나 협박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언제나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남자였다. 그가 다시 세라의 머리채를 확 움켜잡는 바람에 그녀의 외침은 중단되었다.

셰인 던이 있는 힘껏 그녀의 왼쪽 뺨을 내리쳤다. 오랜 시간 참고 참아왔던 울분은 단 몇십초 만에 막을 내렸다.

이상했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그 한 편엔 화가 껴 있었다. 자신의 잘난 척 때문에 이런 불운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화가 났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자신의 탓이 아니었다. 이건 모두 셰인 던이라는 악마의 탓이었다.

“사랑이 위대하긴 위대해. 이 독한년이 7년 만에 말을 하는 걸 보면.”

그의 눈알이 뒤집힌 것을 보니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7년이라는 기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날의 일이 그에겐 꽤 충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 대가는 알고 있겠지?”

세라의 얼굴을 뒤덮고도 남을 만큼 큼지막한 셰인 던의 손바닥이 그녀의 얼굴을 무차별적으로 가격했다. 세라의 얼굴은 금세 찢어지고 부어올랐지만, 셰인 던은 멈추지 않았다.

당돌하게 윽박지르던 세라는 이제 없었다.

얼굴을 뒤덮은 손바닥은 이내 주먹으로 변했고, 그가 신고 있던 부츠도 폭행의 도구가 되었다. 얼굴에서 시작된 구타는 전신으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아, 아, 이러면 재미없지.”

셰인 던은 세라의 머리채를 잡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축 처진 세라의 몸이 질질 바닥에 쓸렸다. 얼굴에서 흐르는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지며 현장을 더 잔혹하게 만들었다.

“야, 딜런! 빨리 튀어와.”

홀에 도착한 셰인 던이 손짓했다. 겁에 질린 딜런은 서둘러 뛰어왔다. 세라는 부은 눈으로 떨고 있는 딜런의 손을 힘겹게 올려다봤다. 자신과 엮이는 바람에 당하지 않아도 되는 걸 당하고 있는 딜런의 모습과 마주하니 미안한 감정이 솟구쳤다. 그 감정 덕분에 구타로 인한 고통은 아주 잠깐 멎었다.

홀에 있던 길드원들은 재미난 구경이라도 났다는 듯 몰려들었다.

“이제, 네가 때려봐.”

셰인 던이 딜런에게 말했다.

“네? 제가 어떻게···”

그가 딜런의 뺨을 후려쳤다.

“아니면 네가 대신 맞는다.”

“하지만―”

셰인 던이 또 때릴 것처럼 손을 번쩍 들어 올리자 겁을 먹은 딜런이 바로 두 손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하하. 이 새끼 쪼는 거 봐라.”

그 모습을 본 길드원들이 박장대소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장난을 치며 살갑게 대했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런 감정은 세라가 깜빡하고 닦지 않은 간판 위에 먼지보다 가볍고 더러웠다.

“이 새끼가, 이 더러운 노예년을 좋아한다네? 하하하. 이것만큼 흥미진진한 얘기가 어디 있냐, 안 그래?”

셰인 던의 광기 어린 목소리가 홀에 퍼졌다. 연설가라도 된 것처럼 두 팔을 벌린 채 길드원들 모두가 볼 수 있게 홀을 좌우로 훑었다. 그의 쇼맨십에 화답하듯 길드원들은 휘파람을 불고 손뼉을 쳤다.

“삼 초 센다. 삼 초가 지났는데도 내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이년 대신에 네가 그 죗값을 받게 될 거야. ···딜런, 잘 생각해. 네가 저 노예년을 감쌈으로써 포기하게 될 것들이 뭔지.”

좋아하는 딜런이 자신을 때리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셰인 던은 딜런을 괴롭히기 시작할 것이다.

“···삼, ···이” 셰인 던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퍽. 퍽. 퍽.

묵직한 소리가 홀을 메웠다. 무언가 쓰러져있던 세라의 배를 가격하기 시작했다. 그 탓에 세라는 다시 배를 감싸며 새우처럼 허리를 굽혔다. 망설임은 느껴지지 않는 발차기였다. 셰인 던의 두 발은 오롯이 바닥을 딛고 있으니, 아마 딜런일 것이다.

세라는 그 어떠한 비명도 내지르지 않았다. 셰인 던에게 맞았을 때는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세라의 부은 뺨을 타고 피와 섞여 흘러내렸다.

“그렇지! 계집년이라고 봐줄 필요가 없어. 어때, 때리니까? 속이 시원하지? 하하하!”

셰인 던이 딜런을 향해 웃었다.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 때리는 거야. 스트레스를 푸는 데 이 계집년만큼 좋은 것도 없다니까.”

딜런은 미친 사람처럼 세라를 차고 밟으며 폭주했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가끔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고통은 이제 없었다. 대신 가슴에 느껴지는 고통이 그녀의 심장을 찌르고 또 찔렀다.

그가 힘 앞에 굴복하는 건 어쩔 수 없으리라. 하지만 그녀의 눈물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년 봐라? 나한테 처맞을 때는 울지도 않더니만 딜런이 때리니까 우네? ···그만.”

셰인 던의 말에도 딜런은 멈추지 않았다. 딜런은 계속 발로 세라를 차고 밟았다. 딜런은 보기 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셰인 던이 처음으로 그녀를 때렸을 때의 표정과 비슷했다.

“그만하라고, 이 새끼야!”

셰인 던이 딜런을 밀치며 말을 덧붙였다.

“더 좋은 생각이 났어.”

“어이, 동생아. 적당히 해. 그년이 죽으면 노예를 또 사야 하니까.”

벤지 던이 말했다. 그는 아마 평온한 표정일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누가 죽어도 눈 하나 끔뻑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에이, 형! 죽이지는 않지. 내가 그 정도 기술은 있잖아.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때리는 거야. 오히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만. 하하하.”

말을 마친 셰인 던이 세라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굵은 팔의 근육이 힘을 다하기 위해 잔뜩 성을 내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그녀는 공중을 날았다. 얼마나 날았을까. 묵직한 느낌이 등에 느껴지며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물수제비뜨기의 돌이 수면을 스치며 튕겨 오르듯 세라는 몇 번을 바닥에 튕기더니 이내 거리에 쓰러졌다.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녀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확인하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 갈 길을 나아갔다.

부은 눈으로 바라본 하늘은 좁게만 느껴졌다. 참 짧은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 셰인 던의 말처럼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계획은 성공한 셈이었다.

셰인 던이 처음부터 그녀를 괴롭힌 건 아니었다. 물론 말이 험악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거의 무시하는 수준이었기에 지금과 비교하자면 상냥한 편에 속했다. 그랬던 셰인 던이 악마로 변한 건 7년 전의 사건이 발단이었다. 그 당시 세라는 한창 책에 빠져있었다. 지금도 책에 빠진 건 마찬가지였지만. 글자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고,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조금씩 머릿속에 지식을 넣은 세라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뽐내고 싶었다. 열 살의 아이였으니 어련했을까.

화근은 길드 마스터인 벤지 던과 그의 동생 셰인 던의 멍청한 대화를 듣게 되면서 생겼다.

“우리가 제로 대륙으로 가면 최초가 되는 거지.”

셰인 던이 벤지 던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제로 대륙에 숨겨진 보물이 엄청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할 때, 열정적으로 제로 대륙에 가려고 했었다.

“아니에요! 제로 대륙은 이미 트라브 어밴이 발을 디뎠어요.”

세라가 끼어들었다. 너무도 갑작스러웠기에 곁에 있던 그녀의 엄마, 머들이 말릴 틈은 없었다. 아마 머들이 말렸더라면 몸은 고단할지언정 모녀는 지금보다 덜 괴로운 생활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말을 마친 세라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발행된 신문까지 들어 보였다. 1000년 11월 29일 자의 신문이었다.

“여기에 보면 트라브 어밴이―”

찰싹.

셰인 던에게 뺨을 맞은 세라는 옆으로 푹하고 쓰러졌다. 어린아이가 버티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 볼은 어디에 데인 듯 화끈거렸고, 많은 사람 앞에서 맞았다는 생각에 마음은 창피했다. 셰인 던과 길드원의 조직적인 괴롭힘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괴롭힘이 세라에게만 한정된 건 아니었다. 세라의 엄마까지도 그녀 탓에 같이 괴롭힘을 당했다. 그렇게 엄마와도 멀어졌다. 아니, 엄마는 멀어져 갔다. 세라는 늘 그 자리였으니까.

불현듯 스친 과거에서 돌아온 세라는 희망을 놓아버렸다.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그 상황에 아는 척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셰인 던에 대한 원망은 여전히 남았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엔, 자신의 잘난 척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는 죄책감이 그녀의 마음에 뿌리를 내렸다. 전부 끝났다. 실낱같던 희망도 사라졌고, 첫사랑도 끝이 났다. 이제 그녀는 살고 싶지 않았다.

부은 눈으로 바라본 마지막 하늘은 좁게만 느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문득 구세주는 밑바닥에서 처절하게 뒹굴다 숨이 끊어질 때쯤 나타난다는 어느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언젠가 너에게도 구세주가 나타날 거여. 어떻게 아는지, 네가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때 떡하니 네 앞에 나타날 거여. 참말이라니께.”

사람들은 노인에게 미쳤다고 말했다. 그때 당시 세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뭇잎을 기는 벌레보다 못한 생을 그만 마감하겠노라 다짐한 순간, 세라의 시야에 차갑지만 아름다운, 보랏빛의 눈동자가 들어왔다.

구세주가 있다면 저런 영롱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