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고? 그럼 제로 대륙으로 가는 방법을 알 수가 없잖아.”

파우스트가 오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반면 울은 미간을 좁혔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아니요. 그러니까 음, 제가 들은 바로는 트라브 어밴은 마법의 돌로 만든 석판에 제로 대륙으로 가는 방법을 새겨 넣었대요. 왕국에 팔기 위해서요.”

“우리한테는 다행이게도 그 트라므 어만은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네. 그럼 그 석판이란 건 지금 어디에 있어?”

파우스트가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파우스트, 그 사람 이름은 트라브 어밴이에요. 그리고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어요. 만나본 적이 없잖아요. 돈을 원했던 건 무슨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만. 그 인물에 대한 판단은 나중에 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지.”

울이 샛길로 빠지는 대화를 다시 끌고 왔다.

“엄~청 큰 배낭 가방에 석판을 넣고 다녔다는데요. 시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간 그 순간!”

세라는 입담 좋은 이야기꾼이라도 된 양 잠시 뜸을 들이며 궁금증을 극대화했다. 덕분에 정적이 흐르며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파우스트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고요를 깨고 낡은 집에 울려 퍼졌다.

“아, 빨리 말해줘! 궁금해!”

파우스트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이 순식간에 사라졌대요. 당연히 석판도 사라졌겠죠?”

“뭐야, 왜 갑자기 사라져?”

파우스트의 물음에 세라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허무한 결말에 맥이 풀린 파우스트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마도 시공간의 문을 열고 제로 대륙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떠한 힘이 작용한 게 아닐까요? 석판도 마법의 돌로 만든 거라고 하니까.”

“시공간의 문이 도대체 뭐길래, 물건까지 사라지게 하는 거야? 울, 시공간의 문이라고 알아?”

시공간의 문을 넘어 울의 세계로 들어온 파우스트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바보를 설득시킬 만큼 울은 착하지 않았기에 파우스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세라를 향해 되물었다.

“그래서 석판은 찾았나?”

“아니요.”

“근데 석판을 찾지도 못했다면서 제로 대륙의 경계선에서 문을 열어야 한다는 건 어떻게 안 거지?”

울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그리고 그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면—울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심문 현장인 줄 알았을 것이다.

“편지요. 친구들과 애인에게 보낸 편지에 그렇게 쓰여 있었대요. 재료를 모아 경계선에서 문을 열었다고.”

울의 미간은 여전히 좁혀져 있었다. 날아갈 수도 없고, 힘을 이용해서 갈 수도 없으니 꽤 난감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에 있었다.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다 죽이고 파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울, 난감하겠는데?”

울의 마음을 읽었는지 파우스트가 흥분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울의 수난을 즐기는 듯했다.

“마음 같아선 행성을 파괴해버리고 싶겠지? 하지만 너도 그런 방법으로는 창조자의 영혼을 파괴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못하는 거지, 안 그래? 아마 행성을 파괴해서 창조자의 영혼까지 죽일 수 있었다면 넌 진작 이 행성을 파괴했을걸? 이곳에 사는 무고한 생명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말이지. 뭐, 그러면 나야 더 좋지만. 흠흠흠.”

정곡을 찔린 울이 살기를 담아 파우스트를 쳐다봤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까의 복수를 했다는 듯 흡족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행성은 몰라도 너는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정하라고. 나는 너를 도우려는 거니까. 혹시 네가 너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행성을 파괴하면 창조자를 놓치는 꼴이 된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뿐이야.”

파우스트가 한껏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항복의 뜻으로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겁을 먹고 항복하는 사람치곤 만면에 웃음기가 가득했지만.

“근데 아까부터 두 분은 행성을 말씀하시던데, 도대체 행성이 뭐예요?”

“네가 사는 세계.”

파우스트가 세라의 이마를 검지로 콕 찌르며 말했다.

“네? 그러면 행성을 파괴한다는 말이 우리 세계를 파괴한다는 말이에요? 그럼 안 돼요! 그럼 모두 죽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 아저씨가 그렇게 강해요?”

세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가락으로 울을 가리켰다.

“뭐, 물론 전 주인과 그 무리를 순식간에 죽였을 때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세계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줄은―”

“쉿! 아가야, 조용히 하렴. 그러다가 너도 저 악마의 손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도 몰라.”

파우스트가 세라의 입을 과장되게 틀어막으며 울을 놀렸다. 울의 협박에는 이제 면역이 된 모양인지 그를 놀리면서도 두려운 기세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울이 자신을 쉽게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걸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맞다! 조각난 석판 중 하나는 왕국에서 보관 중이라고 했어요.”

세라가 파우스트의 손을 치우며 말을 이었다.

“어느 고고학자가 발견했다고 했어요. 그 사람은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라 왕실에 바로 넘겨줘야 했다면서 불쌍하다고 벤지 던이 떠들어대던 게 지금 생각나네요.”

“그 조각 하나 가지고 뭘 하겠어?”

파우스트가 물었다. 그는 울의 고뇌에 무게추를 하나 더 얹으려는 듯했다.

파우스트가 물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울의 수난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던 파우스트의 표정은 이제 그리 좋지 않았다. 울의 수난은 곧 자신의 수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리라.

“글쎄요. 그건 뭐, 왕실 과학부에서 알아내지 않을까요?”

“석판의 다른 조각들은 찾으러 가지 않는 건가?”

울이 물었다.

“다른 조각들은 외곽 대륙에 있을 거라고 추정은 하고 있는데, 그게 쉽지 않나 봐요.”

“왜? 혹시 너희 나라는 약해?”

파우스트가 끼어들었다.

“그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세라는 반박할 말이 없다는 듯 입만 삐죽 내밀었다.

“왜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들어야겠다.”

울의 재촉에 세라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힘의 한계죠. ···뭐, 파우스트의 말대로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이 약하기 때문이에요. 왕국은 ‘불신의 땅’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거든요. 매번 군인들이 나가기는 하는 것 같은데 거의 전멸이래요. 살아 돌아온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아, 불신의 땅은 외곽 대륙 일부 지역의 명칭이에요. 다른 지역들도 있긴 한데 그건 일단 중요한 게 아니니까 생략할게요. 아무튼 외곽 대륙에는 거대 괴물들이 살아요. 엄청나게 큰 괴물이죠. 일반 생물에 열 배에서 백배까지 커진 괴물들인데 외곽 대륙이 무서운 이유는 다 그 거대 괴물들 때문이죠.”

“꼬마, 너 정말 많은 걸 알고 있구나. 요거, 정체가 수상한데?”

파우스트가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외곽 대륙하고 가장 가까운 우리 도시는 탐험가의 도시예요. 저 아저씨가 죽인 제 전 주인, 벤지 던은 탐험가 길드의 마스터였고요. 어느 정도 힘 있는 탐험가였어요. 벤지 던은 3등급의 탐험가였는데, 노예로 있으면서 어깨너머로 주워들은 것도 있고, 책도 좀 읽고 해서 알게 된 것들이에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봐.”

울이 끼어들었다.

“네? 제가요?”

“네가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그랬죠. 알고 있어요.”

세라가 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석판 조사는 개인이 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 전 주인도··· 아! 제 전 주인이 왕실에 신청한 서류가 지금쯤이면 길드에 왔을 거예요. 안 그래도 그걸 눈 빠지게 기다렸거든요.”

“지금은 못 간다.”

울의 목소리에서 옅은 실망감이 느껴졌다.

“그렇겠네요. 지금쯤 경찰들이 와서 난리일 테니까요. 경찰이 뭔지는······ 알죠? 아 그리고 아저씨.”

세라는 얼마 남지 않은 차를 마저 들이켰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거죠? 아저씨가 왔다는 걸 그, 그 창조자라는 사람? 아무튼, 들키면 안 되는 거잖아요.”

울은 대답 대신 세라를 빤히 바라봤다. 그것을 대답으로 받아들인 세라가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반말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튀는 행동을 하면 안 되잖아요. 아저씨는 꽤 젊어 보여서 반말하고 건방지게 굴고 그러면―”

“흠흠흠!” 파우스트가 기괴하면서도 크게 웃는 바람에 세라의 말이 중단되었다. 원탁을 치며 과장되게 웃는 파우스트를 따라 세라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웬일로 울은 파우스트에게 살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지그시 눈을 감고 남은 차를 마저 마셨다. 그리고 파우스트와 세라는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승낙으로 알게요. 그리고 저를 거두어주시기로 했으니까 저도 호칭을 주인님이라고 할게요. 괜찮으시죠?”

주도권은 완전히 세라에게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세라는 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일어서면서 빈 찻잔을 거둬들였다. 그녀의 행동은 몸에 밴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울 님이라고 불러.”

주인님이라니. 그게 무슨 낯부끄러운 말인가.

“알겠어요. 언제 떠나실 거예요?”

“울은 경찰들이 잠잠해지면 가겠다고 하더라고.”

파우스트가 말했다.

“경찰들도 그렇게 오래 조사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마을 사람들이 벤지 던을 꽤 싫어했거든요. 한 이삼일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골칫덩어리가 사라졌으니까 도시 사람들 모두가 좋아할 거예요.”

세라가 말했다.

갑자기 파우스트가 울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 눈빛이 울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울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여기서 세 명이 지내기엔 집이 너무 작지 않아?”

파우스트의 말에 울은 망설이지 않고 세라를 가리켰다.

“침대는 너. 나는 소파.” 울이 바닥으로 시선을 던지며 “너는 바닥”이라고 말했다.

“응? 잠깐만, 뭐라고?”

파우스트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세라는 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표정이었다.

“아!” 파우스트가 소리쳤다.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파우스트의 투정 어린 목소리는 낡은 집 창문을 뚫고 밖으로 나오다가 공중에서 힘을 잃고 금세 사라졌다.

하늘의 색은 빠르게 바뀌었다. 울은 여럿이 있으니 시간이 더욱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쉼 없이 부는 바람처럼 하루하루가 여운을 남기지 않고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틀이라는 시간을 자신의 세계에서 보낸 울은 짜증이 솟구쳐 있는 상태였다. 그와는 달리 파우스트와 세라는 달라진 삶에 빠르게 적응한 듯 보였다. 애초부터 적응 단계가 필요 없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세라는 자처해서 빨래했고, 형편없는 요리 솜씨를 뽐내려고 했다. 파우스트는 유유자적하며 숲을 가기도 하고, 강에서 물고기도 잡으려고 했다. 물론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었다.

울 일행이 도시에 도착했을 땐, 거리는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많은 이들이 거리를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 사내가 접근하기 전까지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