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인이시여! 당신은 이 도시를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낯선 남자가 울에게 다가오며 소리쳤다.

울은 자신의 손을 잡으려는 낯선 남자의 손길을 가볍게 피했다. 경계하는 울의 눈빛을 읽었는지 낯선 남자는 두 손을 휘저으며 울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오, 걱정을 마세요. 저는 이 도시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지요! 이 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경찰에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낯선 남자가 상체를 깊숙이 숙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 그러니까 제 말은 아무도 당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거죠. 하하하.”

울의 불편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세라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꼬질꼬질했던 세라의 모습이 깔끔하게 변한 탓에 낯선 남자는 세라의 얼굴을 요리조리 훑어본 뒤에야 그녀를 알아봤다.

“오, 세라구나! 너무 깔끔해져서 못 알아봤어. 감사는 우리가 해야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벤지한테 좀 시달렸니? 보호해준답시고 그놈이 받아간 돈이 얼만지 너도 대충은 알잖아. 하긴 네가 제일 고생이 많았지. 그 빌어먹을 놈이 허구한 날 너를 때렸으니. 아니지, 벤지가 아니라 셰인이 널 때렸었나? 아무튼, 그런 못된 놈이 죽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이 아니겠냐. 봐라, 사람들도 좋아하잖아.”

남자가 손으로 거리를 가리켰다.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와 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 사람은 손뼉을 쳤고, 몇몇 사람은 진심을 담은 미소를 보냈다.

“이제 상인 길드가 허리 좀 펼 수 있게 됐어. 하하하.”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빈자리는 금방 메워지기 마련이지.

울은 남자의 눈빛에서 순간적으로 어리어 나타난 그릇된 욕망을 느꼈다.

과연 저들의 웃음은 언제까지 유지될까. 분명 이 거리에는 다른 벤지 던이 다시 등장할 것이다. 생태계는 먹고 먹히는 잔인한 곳이니까.

수없이 많이 봐온 현상이었기에 울은 놀라지 않았다. 다만 그답지 않게 아주 잠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스스럼없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놓고 있는 남자를 서둘러 돌려보낸 세라는 길드 건물 앞에 있는 우편함부터 확인했다.

“있어요! 우편물이 왔어요!”

우편물을 들고 건물에 들어선 그녀는 묻지도 않고 바로 봉투를 뜯어 확인했다.

“승인이 났어요. 바로 떠날 준비하고 아르하에 있는 특전사령부 탐험대 관리과로 오라네요.”

“특전사령부 탐험대 관리과? 그게 뭐 하는 곳이야?”

파우스트가 물었다.

“특전사령부는 군대예요. 탐험대 관리과는 뭐, 방벽을 넘어가는 탐험가 길드를 통제하는 곳 아닐까요??”

“그럼 그곳으로 가야겠군.”

“그래야겠죠?”

“다시 돌아오니까 어때?”

파우스트가 물었다.

“음, 홀가분하다랄까, 솔직히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곳이긴 해요. 괴로웠고, 슬펐고, 죄책감이 들면서도 억울했으니까요. 근데 이제 안 올 곳이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행복해요. 행복을 모르고 살던 삶이었는데 다 울 님과 파우스트 덕분이죠.”

세라의 표정은 밝았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진심일 것이다.

“세라.”

그들의 대화를 끊은 건 건물 입구에서 들려오는 어떤 남자의 목소리였다.

“딜런?”

목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엉망진창의 몰골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술 냄새가 진동하는 몸뚱이를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세라야. 몰라, 몰라보겠어. 더 예뻐졌네, 마, 말도 잘하고.”

남자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의 눈빛은 발걸음은 만큼이나 올곧지 않았고, 휘청거렸다. 그리고 불안했다.

“어떻게···”

“어, 어떻게 살아남았냐고? 나는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니까.”

딜런이 세라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울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뭐, 뭐야?”

남자가 흐리멍덩한 눈으로 울을 쳐다봤다.

“저, 저는 괜찮아요.”

세라의 낯빛은 금세 어두워져 있었다.

“뭐냐고.”

딜런이 주먹을 날렸지만, 울은 피했다. 그 탓에 딜런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괜찮아?”

세라는 딜런과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말했다.

너무 무섭게 변해버린 딜런에게 세라는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거 놔!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다 망했어!”

파우스트가 부축하며 일으키려 했지만, 딜런은 거칠게 그의 손길을 뿌리치며 스스로 일어섰다. 그는 여전히 휘청거리면서도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세라를 바라봤다.

“네가, 네가 셰인에게 따지지만 않았어도! 그,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나는 평소처럼 지낼 수 있었다고!”

“미, 미안해.”

세라가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며 나지막이 말했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면 다야? 빌어먹을!”

딜런이 세라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울이 빠르게 세라의 앞으로 서며 저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누군가가 딜런의 주먹을 막았다.

“어이, 젊은이 경찰 앞에서 사고를 치면 쓰나.”

셔츠와 조끼 그리고 프록코트에 트라우저를 입고 머리에는 디어 스토커를 쓰고 있는 남성이었다. 그의 얼굴을 본 울은 어느 행성에서 본 개가 떠올랐다.

도베르만. 그래, 얼굴은 길고 날카로운 것이 꼭 도베르만처럼 생겼군.

“이거 놔!”

낯선 남자가 저항하는 딜런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단 한 방에 딜런은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기절했다.

“휴, 거친 친구네요. ···아, 반갑습니다. 퍼시스 그레이브 경위입니다. 이 녀석은 이따가 제가 데려가죠.”

담배에 찌든 음성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했다.

자신을 퍼시스 그레이브라 소개한 남자는 자신의 경찰 배지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여기 길드 분들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경위님. 처음 뵙는데 새로 부임해서 오셨나 봐요?”

세라가 나섰다. 아무래도 까칠한 울의 성격을 걱정했으리라.

“나는 어른과 이야기를 나누러 왔으니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퍼시스 그레이브의 말투는 상당히 느렸고, 세상사 귀찮다는 듯 꽤 나른했다. 그가 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세라가 불안한 눈빛으로 울을 바라봤다.

“무슨 일인지, 저에게 말씀하십시오.”

울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차분했다. 거기에 기품까지 느껴졌다. 세라는 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작을 취했다.

“특권층입니까?”

퍼시스 그레이브가 날카로운 눈빛을 띠며 물었다.

“네. 뉴어픈 도시의 커스 가문입니다. 실례지만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 모르십니까? 며칠 전에 이 거리에서 살인 사건이 났는데, 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 건물의 주인도 살해당한 사람 중 한 명이고요. 한, 스무 명쯤 죽었을 겁니다. 탐험가라는 껍데기를 쓴 쓰레기들이었죠. 저는 잘 모르지만 여기 거리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그러더군요.”

퍼시스 그레이브가 안에 설치된 장식들을 쓱 둘러보다가 하이에나가 그려져 있는 길드 문장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래서 벤지 던과 그의 무리가 보이지 않았군요. 저도 마침 그들이 보이지 않아서 걱정하던 참이었습니다.”

“네, 그렇군요. 그래서 조사하고 있었는데, 마침 커스 님이 이쪽으로 들어오지 뭡니까. 그래서 협조 좀 부탁드리려고 이렇게 따라 들어온 겁니다. 일단 신분증 좀―”

“아, 파우스트. 내 신분증 보여드려.”

파우스트가 당황한 듯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사전에 협의가 이루어진 게 아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 나라의 신분증 보여줬잖아. 네 능력을 써.]

울이 파우스트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파우스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 있습니다, 경위님.”

파우스트가 손을 내밀었지만,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세라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희한하게도 퍼시스 그레이브는 보이지 않는 신분증을 확인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다시 파우스트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파우스트가 세라에게 다 괜찮다는 듯 한쪽 눈을 껌뻑였다.

“잘 확인했습니다. 근데 뉴어픈은 여기서 정반대에 있는 도신데, 무슨 일로―”

“석판 조각을 찾으려고 합니다.”

울이 퍼시스 그레이브의 말을 가로챘다. 그가 두 번이나 자신의 말을 가로챈 게 불쾌했는지 퍼시스 그레이브는 인상을 찌푸렸다.

“흠, 트라브 어밴의 마법 석판을 말씀하시는군요. 그건 왕실, 그러니까 국가에서 관리할 텐데요.”

퍼시스 그레이브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익숙한 동작으로 불을 붙였다.

“그래서 내가 벤지 던을 찾아온 겁니다. 왕실에 미리 허가서를 신청해놓으라고 내가 지시를 내렸거든요.”

울이 세라가 들고 있는 서류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울의 눈을 따라가 서류를 확인한 퍼시스 그레이브는 굳이 내용까지 확인하려 들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퍼시스 그레이브가 바닥에 널브러진 딜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녀석은 제 부하를 시켜서 데려가도록 하죠. 그럼 이만.”

뒤돌아서서 걸어가던 퍼시스 그레이브가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돌아섰다. 퍼시스 그레이브는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 때문인지 눈을 아주 가늘게 뜨고 울을 바라봤다.

“아, 커스 님. 제가 깜빡하고 말씀을 안 드렸네요. 한 가지 알려드리자면 보랏빛 눈동자는 이 나라에 흔치 않습니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게다가 벤지 던이라는 인물을 따르던 무리가 벤지 던이 죽던 날 군중 속에도 있었다는 걸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 도시의 필요악이었거든요. 벤지 던의 악질로 피해를 보던 사람이 있었던 반면에 돈을 벌던 사람도 있었단 얘깁니다. 뭐, 어쨌든 조심하십시오. 저는 신분 안 가리고 한번 물면 놓지 않으니까요.”

퍼시스 그레이브가 시야에서 멀어지자, 세라가 울의 앞에 서며 물었다.

“이제 어떡하죠? 누군가 저 사람한테 솔직하게 얘기한 게 아닐까요?”

“그것보다 특전사령부는 어디에 있지?” 울이 물었다.

“그건 왕국의 심장, 아르하에 있죠. 그 도시가 인왕국의 수도예요.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 퍼시스 그레이브 경위가―”

“그곳으로 향한다.”

울이 세라의 말을 가로챘다.

“지금요? 어려운 건 아니지만 괜찮으시겠어요? 저 경위.”

“아직 증거는 없을 거야. 있었다면 울을 데려갔겠지.”

파우스트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경찰들은 마력을 추적해요. 마력은 지문처럼 사람마다 그 흔적이 다르거든요. 그걸 추적해서―”

“흠흠흠, 아마 죽었다가 깨어나도 누가 죽인 건지 못 알아낼걸? 울은 여기 사람이 아니잖아.”

파우스트가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그렇다면 안심이지만 뉴어픈에 커스 가문이 없다는 걸 알면···”

“내가 만든 환각으로 신분증을 확인한 이상 가문에 대해선 캐지 않을 거야. 설마 울이 경찰에게 잡혀가는 걸 걱정하는 건 아니지?”

“저는 그저···”

세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낯빛이었지만 그것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았다. 지금 울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 무엇을 해야 그에게 도움이 되는지 세라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아르하는 기차를 타고 가야 해요. 그게 제일 빠르니까요.”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세라는 밝은 목소리를 냈다.

“근데 기차 타본 적 있으세요? 저는 아직 한 번도 못 타봤어요.”

“기차? 오, 나도 얘기만 들어봤지. 아니, 보기도 봤구나. 실제로 봤지만 타보지는 않았지. 왜냐하면 내가 기차보다 빠를 수도 있거든. 아니지, 빠른가?” 파우스트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세라와 파우스트는 연신 입을 놀렸다. 울은 두 수다쟁이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