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과 세라가 돌아본 그 방향에는 검은색 복면을 머리에 뒤집어 쓴 한 남성이 어떤 여성의 목에 팔을 두르고, 반대편 손에 쥔 권총으로 여성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다들 꼼짝 마! 움직이면 이 여자뿐만 아니라 너희도 전부 죽여 버리겠다!”

“꺄아아악!”

남성이 인질로 잡은 여성의 머리에 총구를 꽉 누르자, 공포에 질린 여성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그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엉거주춤 뒤로 물러서며, 인질극을 벌이는 범인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반경 15미터 정도의 원이 형성되었다.

모두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된 것을 확인한 범인은 재차 외쳤다.

“이 공항 내 어딘가에 폭발력이 아주 큰 폭탄을 설치해 두었다! 지금 당장 멕시코로 갈 수 있는 비행기와 조종사를 준비해라! 안 그러면 폭탄을 터트리겠다!”

범인은 그렇게 외치며 품에서 기폭장치로 보이는 버튼 달린 리모컨 같은 것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단숨에 커졌다.

“(세라.)”

“······.”

「······.」

에릭이 사람들 틈에 끼어 낮은 목소리로 세라를 부르자, 세라는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군중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보통 인질극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요소가 존재한다.

인질.

범인.

목적.

그리고, 공범.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인질극과는 달리 계획적인 인질극에서는 범인이 단독범행을 자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혹시라도 처음에 나섰던 공범자가 제압당하는 등의 변수가 발생하는 것에 대비해 어떤 형태로든 한 명 이상의 공범이 혼란 틈에 숨어들어 대기하고 있는 것이 정석이다.

세라는 그 공범자를 찾아내기 위해 모습을 감춘 것이었다.

“책임자, 빨리 나와! 내가 말한 것들을 20분 안에 준비하지 못하더라도 폭탄을 터트리겠다!”

아무리 기다려도 상황에 진전이 없자 초조해진 범인은 리모컨을 다시 한 번 높이 치켜들고는 공항 어딘가에 있을 공항 책임자에게 통보했다.

시간이 갈수록 주위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커져만 갔다.

“저기···.”

그때, 사람들 틈으로부터 청회색 제복을 입은 나이 든 남자가 범인의 앞에 나타났다.

“제가 이 공항의 최고 책임자입니다만···.”

“뭐 이리 나타나는 게 늦어?! 내가 말한 것들의 준비는 이미 끝났겠지?”

“그게··· 아무리 그래도 20분 만에 말씀하신 것들을 전부 준비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뭐야? 당장 이 여자부터 죽여줄까!?”

– 철컥.

“꺄아아아악!”

범인이 총구를 재차 인질의 머리에 갖다 대자 여성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공항 최고 책임자라고 자처한 나이든 남자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 했다.

범인의 충혈 된 눈은 그가 지금 얼마나 극도의 흥분상태에 돌입해 있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에릭은 가만히 기회를 보며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

「에릭. 찾아냈습니다. 공범으로 보이는 것은 한 명뿐. 위치는 에릭이 서 있는 방향 기준으로 세 시 방향입니다. 그의 뒤를 잡았으니 언제라도 제압 가능합니다.」

마침내 세라로부터 온 통신이 그의 머릿골을 울렸다.

“오케이. 잘 했어, 세라.”

에릭이 귀에 꽂은 초소형 무전기에 대고 회신하자, 다시 세라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골을 울렸다.

“······.”

「어쩌시겠습니까? 이대로 대테러부대가 오는 것을 기다릴···.」

“바보야, 이 판국에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 여기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그 공범 녀석이나 잘 감시하고 있어.”

“······.”

「···에릭? 설마···!」

– 저벅저벅.

에릭은 세라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주위 모여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범인을 향해 나아갔다.

“어이, 폭탄 아저씨.”

“···응? 뭐야, 넌?!”

범인의 뒤편에서 나타난 에릭이 범인을 부르자, 범인은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 에릭에게 총구를 향했다.

그러자 에릭의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겁에 질려서는 홍해바다 갈라지듯 양 옆으로 좍 갈라섰다.

“나? 그냥 지나가던 시민인데.”

“지나가던··· 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자 범인은 머릿속에 혼란이 온 듯 했다.

하기는 그가 범행을 계획했을 때 예상했던 변수인 인질의 거친 저항이나 용감한 시민들의 제압시도와는 전혀 다른, 웬 수상한 소년 하나가 앞을 가로막고 섰으니 그로서는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소년은 딱히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귀찮음마저 느껴지는 나른한 표정을 지은 얼굴로 태평하게 서 있었으니, 도무지 소년의 행동 의도를 짐작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단순한 정신이상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것 치고는 소년의 눈동자는 너무도 또렷했다.

“······.”

「에릭, 대체 무슨 무모한 짓입니까?」

“뭐 해? 빨리 쏴 봐. 움직이면 다 죽여 버린다며.”

머릿골에 울리는 세라의 통신을 무시하며 에릭은 범인을 향해 한 발짝 내디뎠다.

– 저벅.

“오, 오지 마! 진짜로 쏜다!”

“쏴보라니까. 왜, 못 쏴? 아니면 혹시 그거 가짜 총이야?”

– 웅성웅성.

에릭의 말에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 가짜 총···?

– 진짜로···?

– 그럼 저거 다 연기야?

– 설마, 아까 총소리도 들렸었는데···.

“이익···!”

덜덜 떨리는 손으로 총을 쥔 채 에릭을 조준하며 위협하는 범인에도 아랑곳 않고 에릭은 범인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범인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당연히도 그가 들고 있는 검은색 권총은 가짜 총이 아니었다.

물론 처음 발사한 한 발은 공포탄이었지만, 그 한 발을 제외한 나머지 12발의 총알은 9mm 실탄을 채워 넣은, 13발 들이 베레타92라는 진짜 권총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그가 들고 있는 권총이 가짜라는 쪽으로 선동당해 버린 모양이었다.

사실 그의 손에 들린 베레타92는 누구도 죽이지 않고 위협만 가할 목적으로 입수한 권총이었지만, 만약 지금 눈앞의 저 소년을 쏘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에게 불리한 사태가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지금 순간에도 천천히 거리를 좁히고 있는 금발머리 소년에 대해서는 둘째치고라도, 만약 그가 사실은 누굴 쏠 용기도 없는 그저 겁쟁이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주위 사람들에게 박혀버린다면 지금 그가 벌이고 있는 이 인질극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그의 머릿속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원했던 상황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본보기는 필요했다.

그러려면 우선 그가 한다면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주위에 보여주어야 했다.

– 끼리릭.

그는 손가락에 걸리는 방아쇠의 저항이 점점 강해짐을 느꼈다.

앞으로 수 밀리미터만 더 당긴다면 분명 총알은 발사될 것이고, 눈앞의 불쌍한 소년은 이 사건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이것은 이 멍청한 소년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죽어도 마땅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지만, 이 소년은 조금 예외였다.

이 소년은 그저 너무도 운이 없을 뿐이었다.

재수가 나빴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하필이면 이 시간, 이 때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저주해야만 했다.

‘그래. 난 분명히 경고를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고를 무시한 저 녀석이 잘못한 거야.’

속으로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고는, 범인은 마침내 방아쇠를 끝까지.

당겼다.

– 타앙!

방아쇠가 끝까지 당겨지자,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총알이 발사됨과 동시에, 반동으로 들어 올려 진 그의 손에 들린 권총에서는 희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 범인과 그에게 잡혀있던 인질 여성을 포함한 주위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 쨍강!

발사된 총알이 공항 유리벽을 박살냈다.

유리벽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부서졌고, 깨진 유리조각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런데,

그 외에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라면, 아니 적어도 범인의 예상대로라면, 벌써 총알에 맞고 쓰러졌어야 할 금발머리 소년이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총알이 지나간 궤적에서 미세한 차이로 빗겨선 채로,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뭣···!”

총을 발사한 장본인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의 뇌는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시각이 받아들인 정보는 명확했다.

소년은 총알을 피한 것이다.

그것도 말도 안 될 정도로 간단하게.

그러나 그는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일에 감탄하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갑자기 소년이 도약을 시작해 그를 향해 엄청난 스피드로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팍팍팍팍!

“윽···!”

당황한 범인은 총을 고쳐 잡고 달려오는 소년을 조준하려 했지만, 이미 소년은 그의 한 발자국 앞의 거리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소년이 팔을 한 번 휘두르자,

– 파악!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들려있던 권총은 허공을 날아 바닥에 뒹굴었다.

– 탁. 타닥. 탁.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젠 거의 패닉에 빠진 범인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 정신 나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 달칵.

“···어?”

그러나 기폭 스위치를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자, 범인의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분명 바로 위층 화장실에 설치해 두었던 폭탄이 터져야 정상인데, 폭발은커녕 리모컨 작동음 조차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이런 상황까지 되었음에도 그의 동업자는 미리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나타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이봐. 폭탄아저씨.”

“히이이익!”

범인의 바로 앞에서 태연한 얼굴로 말해오는 에릭의 얼굴을 보며, 범인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기겁했다.

“총을 쏠 때는 말야, 눈을 감지 말고 끝까지 목표물을 쳐다본 채로 방아쇠를 당기는 거야.”

“뭐, 뭐라는 거야, 이 정신 나간 애송이가!!”

범인은 이제 괴물이라도 본 듯한 창백해진 얼굴로 침을 튀기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 이젠 평생 총 쏠 일은 없겠지만.”

– 퍽!

“커헉···!”

그리고 에릭이 범인의 옆에서 손날로 그의 뒷덜미를 가격하자, 범인은 짧은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붕괴되었다.

그 바람에 범인에게서 해방된 인질여성은 울음을 터트리며 근처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서 있던 그녀의 가족들에게 달려가 안겼다.

“엄마···!”

“그래, 이제 괜찮다···.”

여성의 어머니는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울음을 달래주었다.

“······.”

그 장면을 잠시 지켜보던 에릭은 이내 시선을 떨어뜨리며 아까 전 세라가 말했던 공범이 있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쿵!

그 직후 누군가가 팔이 뒤로 꺾인 채 바닥에 엎드려졌다.

바닥에 엎어진 사람 위로는 세라가 그의 꺾인 팔을 무릎으로 누르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주위 사람들 또한 몇 걸음 물러서며 졸지에 그녀 또한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거기다 그녀의 엄청난 미모 때문인지, 주위에서는 작은 탄성까지도 터져 나왔다.

“나이스, 세라.”

“······.”

「이따가 저 좀 봅시다, 에릭.」

“······.”

무리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를 치켜드는 에릭에게 세라가 차가운 눈빛을 보내자, 에릭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 삐이이익!

“경찰입니다! 순순히 협조하세요!”

그때,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디선가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더니 그제야 등장한 경찰이 권총을 겨누며 그들 앞에 나타났다.

“······.”

「하아···.」

그 순간 들려온 세라의 깊은 한숨소리가 에릭의 머리에 깊이 사무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