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정말 여기 맞아?”

앞서가던 에릭이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며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세라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째 반복했다.

“······.”

「도면대로라면 틀림없이 이 길이 맞습니다.」

곧바로 세라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에릭은 세라의 답변을 듣고 나서도 여전히 못미더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지금 기어가고 있는 좁고 낮은 공간은 공항 천장 어딘가의 배기구 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끔마다 한 번씩 스쳐가는 바닥에 달린 그물모양의 철제 환기구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미약한 빛을 제외하면 아무런 광원도 없는 이 좁고 어두컴컴한 공간에서는, 그들이 한 번 손바닥과 무릎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얇은 철판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공연히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에릭은 속으로 이렇게 하면서까지 굳이 지금 당장 비행기를 타러 가야하나 라는 회의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배기구 내부 청소를 안 했는지, 사방에 쌓여있는 먼지와 때때로 그의 얼굴에 걸려오는 질긴 거미줄이 그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불평 할 시간 있으면 조금이라도 나아가세요.」

“지금 얼마나 왔는데?”

“······.”

「50미터 정도 왔습니다.」

“그럼, 앞으로 남은 거리는?”

“······.”

「300미터 정도입니다.」

“···얼마 안 남은 거야, 그게?”

“······.”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그래, 긍정적이어서 참 좋겠다. 넌.”

“······.”

「에릭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딱히 안 해봤는데.”

“······.”

「그럼 그냥 생각이 없는 거겠죠.」

“······.”

세라의 필터 없는 독설에, 할 말을 잃은 에릭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당분간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은 채 수 분이 흘렀다.

한동안 둘의 손바닥과 무릎이 배기구 바닥면에 닿아 연주되는 공허한 울림만이 그 공간 안에 울려 퍼졌다.

그러다가 에릭의 눈앞에 빛이 새어 들어오는 그물모양 환기구가 다시 모습을 나타낼 즈음, 에릭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세라.”

“······.”

「무슨 일입니까.」

“지금 상황에서 딱히 중요한 말은 아닌데 말이야.”

“······.”

「그럼 하지 마십시오.」

“···아니···.”

세라가 가차 없이 에릭의 말을 끊어버리자, 에릭이 순간 멍해졌다가 곧 다시 말을 꺼냈다.

“우리가 타는 비행기, 조종은 누가 하냐고. 그거 물어보려 했어.”

“······.”

「공수부대 소속의 코드네임 IP – 733 로버트 레이어드 요원입니다.」

“···누군지 몰라.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

「에릭이 먼저 물어봤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

「이제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 할 시간은 없습니다. 빨리 앞으로 가기나 하세요.」

“···응.”

******

그렇게 한참을 기어가자 쭉 직선이었던 배기구가 끝이 나고, 전방에는 T자 모양의 갈림길이 어슴푸레 보여 왔다.

에릭이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고 후레쉬 기능을 실행시켜 그의 진행방향을 가로막은 정면의 벽을 비추자, 양 옆으로 길게 뻗어있는 환기통 벽면에는 직경 1미터가 조금 덜 되어 보이는 환기구들이 일정 간격 거리를 두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그 환기구들은 대부분이 작동을 멈춘 상태였고, 환기팬에 쌓여있는 시커먼 먼지들은 그것들이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작동되지 않아왔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에릭은 그것을 보면서 그들이 배기구 한 가운데를 지나오면서도 어째서 미약한 공기의 흐름조차도 감지할 수 없었는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그저 그의 추측에 불과했지만, 아마 이 배기구는 오래 전부터 가동을 중지해 왔을 것이다.

이곳으로 들어온 경로가 그들이 아까 전 잠시 몸을 숨겼던 아직 미완공된 플로어의 구석진 천장에 부자연스럽게 막혀있던 송풍구임을 감안하면, 이 환기통은 공항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면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어버린 시설일 가능성이 컸다.

물론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현재로써는 별로 달라질 것도 없긴 했지만.

사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제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였다.

에릭은 고개를 반쯤 돌려 그 해답을 쥐고 있을 세라를 향해 넌지시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눈치 챈 세라가 그 답을 제시해왔다.

“······.”

「중앙으로부터 좌측의 세 번째 환기구가, 저희가 가고자 하는 장소와 연결된 통로입니다.」

세라가 내놓은 답은 매우 간단하고도 명료했다.

그 대답을 들은 에릭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수긍하고는, 세라가 말한 ‘중앙으로부터 좌측 세 번째 환기구’의 앞까지 기어간 후 멈추었다.

“흐음···.”

에릭은 환기구를 막고 있는 환풍기를 잠시 동안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각 변 1미터 정도의 정사각형 모양 틀 안에는 직경 0.8미터 정도의 둥근 환기구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의 표면에는 얇은 철 재질로 구성된 크기가 다른 동심원 세 개가, 원의 중심을 십자모양으로 가로지르는 너비 1센티미터 정도의 철 막대에 의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 너머로는 날개가 4개인 먼지 쌓인 팬이 미동 없이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에릭이 가장자리 쪽을 살펴보니 환풍기는 딱히 나사 같은 것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윽고 에릭이 손을 뻗어 환풍기의 위아래를 대각선으로 잡고 있는 힘껏 뒤로 잡아당기자, 두께 약 20센티미터 정도의 플라스틱제 환풍기 틀이 예상보다 쉽게 분리되었다.

– 덜컹!

떼어낸 환풍기를 옆으로 밀어놓고 그 내부를 스마트 폰 후레쉬로 비추어 본 에릭은 자기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워우.”

환기구 이음부로부터 곧바로 수직하강하고 있는 직사각형의 배기관 안쪽에는, 그 아래를 향해 후레쉬 불빛을 비췄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접근하는 모든 것들을 삼켜버릴 듯한 칠흑 같은 어둠에 압도된 에릭은, 몸을 슬그머니 뒤로 빼며 세라에게 시선을 향했다.

에릭이 들고 있는 스마트 폰 후레쉬에서 새어나온 빛이 세라의 얼굴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정말 여기 맞아?”

그가 벌써 네 번째 던지는 똑같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세라는 여전히 변함없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일 뿐이었다.

“······.”

「이 구멍은 공항 활주로의 지하창고로까지 곧장 이어지는 환기구입니다. 수직 낙하하는 부분이 중간에 몇 군데 있긴 하지만, 방향이 변화하는 부분은 대체적으로 그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설령 몇 군데 부딪힌다 하더라도 죽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 죽지는 않을 거라니···. 그게 무슨 무책임한 소리야. 내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그 도면 좀 다시 보여줘 봐.”

“······.”

「현재 저희가 있는 곳의 높이가 지상으로부터 약 50미터, 그리고 저희가 가려고 하는 지하창고의 높이가 지상으로부터 20미터 아래의 지점이므로 총합 약 70미터정도를 낙하하게 됩니다. 시간은 대략 50초에서 1분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내 말 듣고 있어, 세라?”

에릭의 요구를 가볍게 무시한 채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며 형식적인 어투로 읊어오는 세라에게 에릭이 태클을 걸었지만, 세라는 들은 체도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

「초입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은 낙하높이가 그리 큰 부분이 없습니다, 다만, 중간에 시설 노후로 인한 파손이 발생했을 경우는 계산 외입니다만···.」

세라가 말꼬리를 흐리자, 에릭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끼어들었다.

“그것 봐. 만약에 중간에 취약한 부분이라도 있어서 부서지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그러니, 지금이라도 다른 길 찾아보는 게···.”

“······.”

「아까 전엔 총알도 피한 인간이 왜 겨우 이 정도로 죽는 소리입니까.」

“아니, 그건 그거고···. 아무리 그래도···.”

말끝을 흐린 에릭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환기구 구멍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이밀어 스마트 폰 후레쉬로 그 안을 비춰보고는 재차 통감했다.

결과에 대한 확실성 유무(有無)의 차이.

그는 총알을 피할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이 시커먼 암흑 속에 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미리 결과를 예측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컸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생각해봐도 저 아래를 향해 뛰어드는 것은 상식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말 그대로 정신 나간 짓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고, 또한 상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그러한 조직에 속해있었다.

어찌됐건 간에 이곳을 통과하라는 명령이 내려온 이상, 그는 그 명령을 따라야만 했다.

“···세라.”

에릭은 마지막 발버둥이라도 치는 심정으로 세라의 이름을 불렀다.

“······.”

「무슨 일이십니까.」

“정말로 가야 해?”

“······.”

「······.」

그저 말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응시하는 세라.

비록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명확했다.

“···알겠어. 갈게. 간다고.”

결국 에릭은 선언하듯 내뱉고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의 한쪽 발을 환기구 구멍에 들이밀었다.

“······.”

「금방 뒤따라가겠습니다.」

“그런 불길한 말투 쓰지 마. 그럼 마치 내가 죽으러 가는 것 같잖아.”

– 터엉.

들이민 그의 신발 바닥이 환기구 벽에 닿자, 환기통 내부에 공허하고도 웅장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직후 에릭의 손엔 식은땀이 배어나왔다.

“···후우···.”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나머지 한 발을 마저 환기통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 그의 손을 이용해 바닥을 밀어 살짝 걸터앉아있는 엉덩이를 조금 빗겨나가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눈앞에 펼쳐진 깊디깊은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는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들고 있던 스마트 폰 후레쉬를 끄고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그의 조금 떨어진 뒤쪽에서 평소와 전혀 다를 것 없는 무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세라에게 잠시 시선을 향했다가, 이윽고 마음을 다잡은 듯, 이를 꽉 물고 정면을 응시했다.

그 다음 순간, 그는 손으로 바닥을 밀쳤다.

너무 강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약하지도 않게.

그러자 그의 몸의 반작용으로 살짝 밀려나며,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수직으로.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곧장.

– 슈와아악!

“······!”

어두워서 주위가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짧은 시간 단위로 시시각각 가속이 붙는 것을 에릭은 온몸으로 느꼈다.

실제로는 몇 초 남짓한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에게는 그 짧은 순간이 몇 십 배는 더 길게 느껴졌다.

엄청난 속도감에 압도된 에릭이 본능적으로 두 팔과 두 다리를 허우적대며 직사각형의 환기통 벽에 제동을 걸려 시도했지만, 헛수고였다.

오랫동안 작동되지 않은 환기통 내벽에 낀 먼지들은, 그 표면의 마찰력을 한없이 0에 가깝게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낙하했을까.

에릭이 슬슬 자유낙하 가속도의 한계치까지 이르렀다고 그 스스로 느끼는 순간.

– 터엉!

그는 갑자기 아래쪽으로부터 무언가에 부딪히며 전신에 큰 충격을 받았다.

골을 울리는 강력한 충격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던 에릭은 곧 그가 진행하던 방향의 벡터가 대각선 하단으로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방금까지 수직낙하를 하고 있던 그는, 이제 마치 미끄럼틀이라도 타듯이 비스듬한 사면을 따라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는 그 순간만큼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제동을 방해했던 환기통 내부의 먼지들에게 감사했다.

만약 지금 미끄러지고 있는 사면에 먼지가 한 톨도 없었다면, 바닥면에 접촉해 쓸리고 있는 그의 옷은 아마 마찰에 의해 전부 구멍이 뚫려버렸을 것이다.

평소 신경 쓰지도 않던 하찮은 먼지들에게 감사해 보기는 이번이 또 처음이었다.

– 덜컹. 덜컹.

진행 방향이 바뀐 뒤에도 그는 한참을 더 미끄러졌다.

조금 진행이 안정되자, 그의 머릿속엔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세라는 어떻게 됐으려나.’

어쩌면, 그녀는 아직 출발도 안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일부러 에릭을 골탕 먹이려고 그를 혼자 이 암흑 속에 밀어 넣었을 리는 없었다.

아마 그녀도 곧 그의 뒤를 따라올 터.

그래도 다행히 에릭이 아직까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그의 뒤를 따라오는 세라 또한 그가 진행한 곳까지는 무사히 살아서 내려온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그의 아래쪽에서 계속 이어지던 사면이 갑자기 끊겼다.

“!!”

매우 짧은 찰나였지만, 에릭은 반사적으로 팔다리를 전부 앞으로 끌어당겨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그 직후.

– 콰앙!

그의 정면에서 나타난 철로 된 벽면이 그의 웅크린 팔다리를 강하게 때렸다.

그리고 그가 받은 충격을 미처 다 소화해내기도 전에, 그의 몸은 다시 수직낙하하기 시작했다.

– 슈와아악!

초반에 그가 낙하할 때 느꼈던 아찔함을 다시 한 번 체험하게 해주는 별로 달갑지 않은 중력의 초대에, 에릭은 온몸의 피가 전부 머리로 쏠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젠 이 느낌이 너무도 싫었다.

그저 어서 이 끔찍한 지옥의 슬라이드가 끝나길 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