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스스한 달빛이 모래 언덕을 넘어, 그들을 향해 오는 형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등장 한 번 요란한 생명체들은 커다란 집게다리와 딱딱해 보이는 등껍질을 가지고 있었다. 후복부와 이어진 침은 독을 뚝뚝 떨어뜨렸다. 문제는 크기였다. 그것들은 20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우와! 저게 뭐야!”

파우스트가 호들갑을 떨었다.

“전갈이라는 걸 거다, 아마도.”

“아마도라니?”

“내가 다른 행성에서 본 전갈은 저렇게 크지 않았거든. 스무 마리쯤 되겠군.”

울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것들과 일백 미터쯤 가까워졌을 때 그 크기는 더 실감이 되었다.

“악! 울, 우린 만나자마자 이별하게 생겼어.”

파우스트가 호들갑을 떨며 울의 뒤로 숨었다. 울은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슉. 슉. 슉.

허공을 가르는 굉음과 함께 많은 독침이 한꺼번에 날아왔다. 불행하게도 독침이 너저분하게 날아드는 바람에 파우스트는 울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저만치 떨어져야 했다.

울이 거대한 전갈들의 독침을 피하면서 파우스트에게 물었다.

“창조자는 어떻게 나의 위치를 파악했지?”

울의 말투는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를, 나를 좀! 보호해달라고! 악!”

울과 달리 힘겹게 독침을 피하고 있는 파우스트가 소리쳤다. 언뜻 그의 뻣뻣한 무릎에서 두둑 소리가 난 것 같았다.

“내가 자신에게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다는 걸 창조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묻고 있는 거다.”

“아, 당연히 네가 마력을 쓸 때마다 느낀 거지! ···악! 흡혼귀 살려!”

거대한 전갈의 집게발이 파우스트의 코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추었다. 조금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면 파우스트의 얼굴은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여태까지 그걸 몰랐단 말이야?”

서둘러 울의 뒤로 숨은 파우스트가 십 년 감수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독침이 둘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이어서 거대한 집게발이 울의 몸통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그럼 지금 내가 마력을 쓰면 창조자가 느낄 수 있나?”

울이 거대한 전갈의 집게발을 손으로 짚고 넘으면서 물었다. 덕분에 뒤에 매달려있던 파우스트도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야 했다.

“지금 그게 중요해? 죽게 생겼는데! 일단 마력이든 뭐든 써서 빨리 이 녀석들을 죽여봐! 내가 죽으면 창조자의 영혼도 못 찾는다고!”

파우스트의 외침에 울이 미간을 좁혔다. 맞는 말이었다. 일단은 이 거대하고 징그러운 녀석들부터 처리해야 했다.

울이 손을 뻗어 마력을 방출시켰다. 제일 간단한 마법이었다. 화려하게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예민한 창조자의 레이더망에 걸리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살기를 들이미는 어리석은 자여, 너희를 감싸고 있는 공기는 칼날이 되어 그 죗값을 물으리라.”

울의 주문이 끝나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모래 먼지가 일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해? 다 죽은 건가?”

뒤편에서 파우스트가 쿨럭이는 기침 소리를 내며 물었지만, 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하여튼, 설명 좀 해주면 팔다리가 잘리냐?”

파우스트가 울에게는 들리지 않게끔 아주 나지막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울은 생각보다 귀가 밝았다.

넌, 그 입을 다물면 팔다리가 잘리나 보군.

모래 먼지가 걷히면서 무언가에 베인 것처럼 깔끔하게 잘려있는 거대한 전갈들이 후끈한 공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몸 안에 있던 뜨거운 액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차가운 공기를 잠시나마 데웠다.

“네가 누군지, 내가 잠깐 잊고 있었네.”

호들갑 떨었던 게 미안했는지 파우스트가 사과를 건넸다.

“근데 그 다급한 상황에서 주문은 왜 외우는 거야? 시간만 많이 걸리게?”

“주문을 외우면서 마력을 더 짙게 만드는 거다. 물론, 주문을 외우지 않고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럼 그 다급한 상황에서는 그냥 생략할 수 있었던 거 아니야?”

파우스트가 울의 말을 가로채며 정곡을 찔렀다. 울은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파우스트의 말대로 사실, 주문을 외울 필요는 없었다. 그건 그저 습관이었다.

“아니, 그리고 너처럼 강하면 굳이 안 외워도 되는 거 아닌가?”

“너처럼 방심하다간 목숨이 백 개라도 모자라겠군. 명심해라. 네 목숨은 여러 개가 아니라는 걸.”

“네, 어련하시겠습니까.” 파우스트가 말했다.

울과 파우스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울은 서두르고 싶었다. 둘의 걸음 속도는 그 어떠한 생명체보다 빨랐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걷는 도중에도 거대한 생명체들이 살기를 띠며 둘에게 덤벼들었다. 모두 아는 생물들의 생김새를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건 전부 거대했다는 것이다.

둘은 그것들을 피해 편하게 날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건 위험한 행동이었다.

“계속 걸어가자, 날아가는 건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아.”

파우스트가 말했다.

“완전한 멍청이는 아닌가 보군.”

편리한 것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울은 아주 긴 삶을 통해 배웠다.

확실한 정보 없이는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가야 해.

꼬박 열흘을 걸어 지긋지긋한 모래를 벗어나자, 도시처럼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일단 저기부터 넘어야겠는데?”

파우스트가 말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엄청난 높이로 쌓아진 방벽이 끝을 모르고 쭉 펼쳐졌다. 게다가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는 문 앞에는 창과 검 그리고 총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딱딱한 표정으로 무리를 지어 서 있었다.

“국경이군.”

울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저들은 경비병들이겠네.”

“안으로 들어가는 생명체들이 없는 걸 보아하니, 밖으로 나오는 생명체들도 없는 것 같군.”

“음, 내 환각 능력으로 해결해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하나, 둘···”

파우스트가 경비병들의 수를 세어보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스물, 보는 눈이 너무 많긴 한데. 한 번 돌파해볼까?”

“어쩔 생각이지? 확실히 자신 있는 건가?”

울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경비병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음, 저들은 우리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하겠지? 네가 시선만 분산시켜 주면 내가 대장처럼 보이는 녀석한테 환각을 걸어서 신분증이나 출입증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면 돼.”

파우스트는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지만 경비병들과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히 입을 닫았다.

“멈추고 신분증을 제시해주십시오.”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병사가 울과 파우스트를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파우스트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신뢰는 있었기에 울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무미건조했다.

하지만.

“아차차! 울, 어쩌지? 난 내가 보고 만진 것만 환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데 여기 신분증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네? 난 그걸 본 적이 없어. 하, 하하.”

파우스트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게다가 그는 병사들을 어떻게 속이려고 했는지 그 방법까지 자세히 말해버렸다. 파우스트의 말을 들은 병사들의 표정이 일제히 바뀌었다.

창을 든 병사들은 찌르기 자세로 전환했고, 방벽 위에 있는 병사들은 총을 견착시키며 울과 파우스트를 조준했다.

“어디서 왔고, 목적이 뭔지 말해라.”

검을 든 병사가 검을 꺼내며 말했다.

“하하하. 어쩌지?”

파우스트가 울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그 와중에도 파우스트는 항복의 뜻을 전하기 위해 병사를 향해 두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출입 허가 명부에 저렇게 생긴 사람들은 없습니다, 상사님.”

손에 창을 쥐고 있던 병사가 무언가가 빼곡하게 적힌 서류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두 손 모두 들어, 어서!”

병사가 소리쳤다.

짤막하게 한숨을 쉰 울이 미간을 좁히며 빠르게 파우스트의 몸에 손을 가져가 댔다.

“뭐, 뭘 하려고?!”

파우스트가 당황해 외쳤다.

병사들의 모습이 기괴하게 늘어나며 이내 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이었다.

“뭐야?”

파우스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여기는 우리가 아까 걸었던―”

“너 때문에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했군. 방벽을 넘어간다.”

울이 단박에 파우스트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는 앞으로 내달렸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아무리 높은 벽이라도 넘는 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니, 설명을 좀 해달라고.”

“순간 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저놈들이 수색을 시작하기 전에 서둘러야 해.”

울은 전경이 흐릿해질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 물론 파우스트는 울의 뒤에 매달려있었다.

“울, 순간 이동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아?”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방벽 앞에 도착한 뒤 파우스트가 물었다.

“가본 곳만 가능하지.”

울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굉장한 경험이었어. 속이 조금 메스껍긴 하지만.”

파우스트가 벽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결계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하는 행동 같았다. 그러자 벽에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좀 하는데? 마법으로 친 결계야.”

파우스트가 급하게 손을 떼면서 말했다.

“상관없다.”

울이 손을 대자 놀랍게도 그들이 지나갈 자리만 결계가 사라졌다. 파우스트는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역시.”

파우스트의 감탄을 뒤로하고 울은 비행 마법으로 간단하게 높은 방벽을 넘었다.

“가, 같이 가!”

방벽을 넘어 도시에 들어서니 잘 포장된 도로가 울과 파우스트를 맞이했다. 넉 대의 마차가 동시에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은 도로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잘 포장된 보도와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이 길게 쭉 뻗어 있었다. 도로만 봐도 문명이 꽤 발전한 나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건물들이 즐비해 있으니 식당이나 술집 하나는 있겠지.

“울, 이제 어쩔 생각이야?”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파우스트가 물었다. 변신한 그의 키가 2미터는 되었기에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울에게 말을 걸려면 파우스트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 행성에도 술집이나 음식점은 있겠지.”

“오, 나도 그 생각했는데. 어느 행성에 있는 종족이든 정신을 알딸딸하게 만들어주는 술을 마다하지는 않지. 게다가 취해서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니 정보를 캐내기도 쉽고 말이야.”

파우스트의 수다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근데 울, 넌 이 행성의 생명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너와도 대화를 나누는데 못할 건 뭐지? 넌 내가 흡혼귀의 언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야? 넌 어떻게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지?”

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근데 울, 그거 알아? 이곳에 사는 생명체들은 자기들을 인간이라고 불러. 며칠 전에 내가 말했잖아. 이 행성에 사는 영혼을 먹었다고. 그 영혼도 인간이었어. 근데 말이야···”

파우스트는 자신이 먹은 영혼이 어떠한 삶을 살다가 죽었는지까지 아주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그야말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생명이 붐비는 이곳에서 파우스트를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울은 그가 계속 나불대도록 놔둘 수밖에 없었다.

“···아! 내가 말했었나? 나는 영혼을 먹으면 그 영혼이 가지고 있던 정보까지 흡수할 수 있지. 물론 그 영혼이 기억하고 있는 것만 말이야. 근데 또 그걸 전부 흡수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세상에 완벽이란 건 없잖아, 안 그래? 근데 말이야, 그거 알아? 내가 저번에―”

“좀 닥쳐.”

울이 참지 못하고 파우스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찌나 살기가 가득했던지 파우스트가 “히익!”하고 소리까지 내질렀다.

울이 파우스트와의 동행을 후회하고 있던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아이가 날아와 울의 앞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