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자의 영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행성의 풍경이 울의 눈빛에 담겼다. 광활하게 펼쳐진 황금빛 모래가 검푸른 밤하늘과 조화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했지만, 그 아름다운 자연마저도 울의 분노를 삭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창조자를 죽이고 복수에 성공한 줄 알았더니 자신이 죽인 것은 단순한 몸뚱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낡은 감정과 마주해야 했다. 자신에게 불어닥친 불행을 그저 바라만 봐야 했던 그 시절의 그 감정을 말이다.

복수에 성공했다는 착각에 빠져 계획대로 길었던 생을 마감했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왜 생각을 못 했던 거지? 분명 내가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창조자도 알았을 텐데. 그 자식이 그것에 대비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 게다가 내가 영혼을 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일부러 영혼을 떼어놓은 거야. 비겁한 자식.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던 울이 패배감과 분노에 휩싸여 미간을 좁혔다.

그 자식은 당연하다는 듯 비웃고 있겠지, 빌어먹을.

그때도 그랬을 것이고, 지금도 그럴 게 분명했다.

울은 옮기던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을 바라봤다. 자신의 감정을 반영하듯 길게 뻗은 은하수가 하늘에 난 흉터처럼 느껴졌다.

밤의 기운은 따뜻하지 않았고 입김이 나올 정도로 제법 쌀쌀했다. 낮 동안 공기를 뜨겁게 데웠을 모래들의 열정은 어둠이 내려앉자 쉽사리 식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왼손에는 기체로 이루어진 몸뚱이에 죽은 생명체의 영혼을 흡입하며 살아가는 흡혼귀가 붙들려 있었다. 눈과 코는 없이 커다란 입만 덩그러니 달린 흡혼귀는 투명한 몸뚱이 덕분에 아무에게나 보이는 존재가 아니었다. 물론 울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흡혼귀를 볼 수 있었다. 다행히도 흡혼귀가 엄연하게 살아있는 생명체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울이 손에 움켜쥐고 있던 흡혼귀를 놓아주며 물었다.

[방향은?]

성대가 없는 흡혼귀와의 대화는 텔레파시가 기본이었다. 온 우주를 휩쓸고 다녔던 울이 그런 기본적인 지식을 모를 리 없었다. 흡혼귀의 몸뚱이가 이상한 반응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울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흡혼귀는 나비처럼 중력을 거스르는 동작으로 허공을 날더니, 뭉글뭉글 연기를 피우며 서서히 생김새를 바꾸었다.

훤칠하게 큰 키와 창백한 피부 그리고 찢어진 눈매에 매부리코. 흡혼귀가 변신한 생김새는 울의 종족과 비슷했다. 언제 챙겼는지 정장과 중절모로 한껏 멋을 냈지만, 흡혼귀가 뿜어내는 음산한 기운은 지우지 못했다.

“후, 처음 시도해보는데······ 힘드네, 이거?”

흡혼귀의 으스스한 목소리는 인상과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허공에서 거울을 꺼내든 흡혼귀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꾸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변신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말을 하고 멋을 내려는 흡혼귀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울은 최대한 경계하며 흡혼귀를 바라봤다.

“이게, 이 행성에 사는 인간이라는 종족의 생김새야. 그러고 보니 너희 종족과 비슷하네?”

흡혼귀가 말했다.

“창조자의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그거나―”

흡혼귀는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울의 말을 저지했다.

“잠깐만, 서두르지 말라고.”

그는 주머니에서 꺼내든 행커치프를 정장 가슴 포켓에 집어넣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좋아, 일단 내 소개부터 해야겠어. 많이 놀랐지? 난 파우스트. 너도 알다시피 흡혼귀야. 변신은 처음 시도해봤는데, 어때? 어색하지 않지? 나는 오래전에 이 행성에 사는 영혼을 먹은 적 있거든.”

파우스트가 한 바퀴 휙 돌며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자랑했다. 으스스한 목소리로 명랑한 척하는 그에게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쓸데없는 행동으로 시간을 끌 생각이면 너부터 죽이겠다. 창조자의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만 말해라, 당장.”

“알았어, 알았어. 진정해 친구.”

“난. 네 친구가. 아니다.”

단호하면서도 분노가 깃든 울의 목소리에 파우스트가 표정을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두 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표시하는 건 잊지 않았다.

파우스트는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눈썹 언저리에 두 손을 가져가며 과장된 동작으로 주변을 살폈다. 울은 자신의 마음과는 정반대로 느긋하고 차분한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느껴지기는 하는데 말이야. 그게··· 너무 옅어.”

더 이상의 탐색은 의미가 없다는 듯 파우스트가 손을 거두어드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방향만 말하라고.”

울이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파우스트를 바라봤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옅어서 방향을 특정할 수 없다니까?”

결과가 불만족스러웠던 울은 파우스트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동시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파우스트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자, 잠깐 진정을 하라고.”

울이 손을 뻗자, 파우스트의 목덜미는 자석이 달라붙듯 그의 손에 안착했다. 울이 손아귀에 힘을 줄수록 파우스트의 비명은 커졌다. 그는 인간으로 변신한 것을 금세 후회하는 눈치였다.

“당장, 찾아내.”

파우스트는 숨이 막혀 대답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목을 잡은 울의 손을 쳐댔다. 울이 힘을 풀고 나서야 그는 컥컥대며 대답했다.

“이, 이봐, 네가 창조자라면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게 해놨겠어? 목숨이 아니, 영혼이 걸린 일인데? 근처에 가야 그나마···”

영혼이 있는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듯 변명을 늘어놓았다.

진실일까, 거짓일까?

의심과 경계는 울이 평생 해온 것들이었다. 물론 창조자를 만나 그토록 염원했던 복수에 성공할 뻔했을 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분노와 흥분에 휩싸여 그 평생 해온 의심과 경계가 느슨해지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났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왜 죽은 자의 영혼을 먹고 사는 흡혼귀가 우주를 창조한 창조자와 함께였을까. 그리고 왜 파우스트라는 흡혼귀는 나에게 협조적일까.

수많은 의문이 빠르게 울의 뇌리를 스쳤지만 당장 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파우스트의 목을 손으로 죈 채 눈을 감았다. 울은 정신을 집중해 창조자의 영혼을 확인하려 했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기운이라면 백발백중으로 느낄 수 있는 그였지만, 영혼까지는 느낄 수 없었다.

한때는 영혼을 느낄 수 없다는 것에 감사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죽인 생명의 영혼을 보지 않아도 됐으니 그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였다. 영혼을 느낄 수 없는 자신이 울은 원망스러웠다.

울이 서늘한 눈빛으로 파우스트를 바라봤다.

“왜 내게 창조자의 영혼이 살아있다고 알려준 거지?”

“이, 이유가 중요해? 울, 결과만 보라고. 적어도 네가 창조자를 죽였다는 착각에 빠진 채로 멍청하게 자살하지는 않았잖아?”

울은 다시 파우스트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네 놈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차, 창조자에게 들은 걸 기억하고 있을 뿐이야. 너도 알다시피 창조자는 계속 너를 주시해왔으니까. 정말이야!”

안 그래도 창백했던 파우스트의 안색이 점점 더 백지장이 되어갔다.

“흡혼귀인 네가 왜 창조자의 세계에 있었는지, 또 무슨 꿍꿍인지 한 번, 천천히 밝혀볼까? 진실을 목숨과 바꾸면서까지 지킬 것 같지는 않은데?”

울이 놀고 있는 손으로 마력을 방출하며 말했다. 보랏빛 마력이 넘실대며 흡혼귀를 서서히 압박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괴물 같기도 했다.

“자, 잠깐, 잠깐만!”

“이제 진실을 말할 생각이 들었나?”

울이 방출한 마력은 여전히 파우스트를 협박하고 있었다.

“날 죽이면 창조자의 영혼을 찾을 수 없을 텐데? 너는 영혼을 볼 수 없으니까.”

파우스트의 도발에 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울이 예상했던 전개는 분명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네가 자살을 하지 않았다는 것과 너를 도울 수 있는 존재가 여기.”

파우스트가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 있다는 거지. 게다가 난 영혼을 먹고 사는 흡혼귀니까 당연히 영혼을 찾을 수 있고 볼 수도 있잖아? 이렇게 훌륭한 파트너를 네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렇다면 날 죽여도 돼. 하지만 너도 알 거야. 흡혼귀는 세상사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단 걸. 그런 종족이 퍽도 널 도와주겠다.”

파우스트는 확실하게 승기를 잡겠다는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젠장.

울은 하는 수 없이 파우스트의 목을 놓아줬다.

“워워, 그 마력도 좀 거둬줄래?”

파우스트의 말에 울은 순순히 마력을 거두었다. 그리고 사막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만약 이 행성에 창조자의 영혼이 없으면 그때 나를―”

“그때는 가차 없이 너를 죽여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울이 파우스트의 말을 끊으며 선언했다. 선언임과 동시에 동행의 승낙이었다. 파우스트가 무슨 꿍꿍인지 울은 알지 못했지만 능글맞은 파우스트의 말이 사실이길 바라면서 동행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 행성에 창조자의 영혼이 없다면 그때는 파우스트를 죽이고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다시 창조자의 영혼을 찾아 나서면 돼.

복수를 완성할 방법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울은 궁금했다.

“넌 왜 나를 도우려고 하지? 나는 너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 텐데. 나를 도운다고 해서 너한테 이득이 되는 것도 아니고.”

“네가 죽이는 생명체의 영혼을 받아먹기 위한 것이라면 그건 거짓말일 거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이 죽어 나가는 우주 속에 있으면, 영혼은 솔직히 흘러넘치거든. 언제든 배불리 먹을 수 있지. ···나는, 나는 단지 궁금해. 세상을 조금 더 배우고 싶어. 정처 없이 떠돌며 무의미하게 영혼만 먹으며 사는, 그런 흡혼귀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아. 그건 바보 같은 삶이잖아. 나는 바보가 되기 싫어. 그리고 나는 외로운 것도 너무 싫어해.”

울은 파우스트가 왜 창조자와 함께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렇게 파우스트를 경계했는지도.

“나는 그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을 뿐이야. 물론 외롭지 않게.”

파우스트의 말에는 의지가 실려있었다. 그리고 슬픔도 함께 느껴졌다.

“내 살생으로 영혼을 먹겠다는 그런 희망은 일찌감치 버려라. 필요하지 않은 살생은 앞으로 하지 않을 거니까.”

“결국 복수에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생명을 죽이겠다는 거잖아? 흠흠흠.”

파우스트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하다. 복수에 걸림돌이 된다면 누가 됐든 죽일 거다.”

울은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파우스트가 영혼을 찾지 못하는 바람에 정보를 통해 창조자의 영혼과 가까워져야 했다.

완성되지 않은 창조자의 영혼은 분명, 안전한 곳에 있겠지. 그렇다면 이 행성에서 아무도 접근하지 않은 미지의 장소를 찾아야 해. 그곳에 창조자의 영혼이 있을 것이다.

부드러운 모래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의 발걸음에 순순히 바스러졌다.

“울, 어디로 가는데?”

파우스트의 음성은 들떠있는 것처럼 톤이 높았다.

“생명체가 많은 도시로 간다.”

울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파우스트가 자연스레 울의 옆에 서며 함께 걸었다.

“역시, 추적은 전문이구나? 그건 그렇고.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훨씬 낫지, 안 그래? 혼자는 심심하고 외롭잖아. 나는 그게 그렇게 싫더라고. 그래서 나는 네가 어떻게 그 긴 세월 동안 혼자 지낼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니까?”

동행에 대한 확답을 듣고 싶은 듯 파우스트가 물었지만, 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묵묵히 걸음을 옮길 때, 울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래?” 파우스트가 물었다.

“뭔가 온다.”

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래로 덮인 땅이 쿵쿵대며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