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냄새가 척박한 땅을 가득 메웠다. 그 잔인함을 머금은 바람이 남자의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이다음을 생각한 적이 없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서 있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는 오랜 염원이었던 복수에 성공했음에도 기쁘지 않았다. 죽은 엄마와 아빠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남자는 피로 얼룩진 자신의 두 손을 멍하니 바라봤다. 손금들 사이로 빈틈없이 피가 배였다.

그가 얻은 것이라곤 그동안 죽인 많은 생명의 저주뿐이었다. 그 저주는 그가 숨을 쉬고 있는 한, 평생 그의 몸과 마음을 짓누를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까닭을 알 수 없는 허무감이 남자를 덮쳤다. 손을 바라보고 있던 공허한 눈빛은, 이내 바닥으로 옮겨갔다.

조금 전까지 생명체였을 사체(死體)가 훌뿌려져 있었다. 최후엔 이성을 잃고 모조리 죽이고 말았다.

지칠 대로 지친 그가 땅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남자가 해묵은 응어리를 토해냈다. 그제야 그를 뒤흔들던 혼돈과 허무가 사라지고, 가슴속 깊숙한 곳에 숨겨둔 진실한 감정이 드러났다.

그리움. 그래, 그것은 그리움이었다.

그의 선명한 보랏빛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딴딴했던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상했다. 마음을 굳힌 데는 억겁의 시간이 흘렀는데,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만으로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져내릴 수 있다니.

결국 그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이 기나긴 삶을 끝내고 그만 쉬고 싶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남자가 스스로 자신의 목을 그으려던 순간,

흡혼귀의 서늘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와 남자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창조자는 아직 ···살아있다. ···너는 창조자를 ···죽일 수 ···없다. 절대··· 절대···]

남자는 순간적으로 눈을 번뜩이며 바람과 함께 떠돌던 흡혼귀를 서둘러 붙잡았다. 자신을 움켜쥐고 있는 남자의 손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분노에, 흡혼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남자는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내며 물었다.

“창조자는, 어디로 도망쳤나?”